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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Dec 05. 2019

회장님 만난 얘기

작년에 점쟁이가 나한테 그랬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랑 동업하는 운이 있고, 상류사회, 리그전에 뛰어드는 기점에 있다더니 그 점쟁이 참 용하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창업한 회사에서 많은 자유를 보장 받으며 일하고 있고, 부자들 및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오늘은 아침에 Alvin이 문자가 왔다. 


"나 YCH 오피스에 가는데 너 올래? 11시야."


난 그냥 평범한 로컬 회사 중 하나겠거니 하고, 편하게 알겠다고 하고 아무 준비 없이 집을 나섰다. 심지어 4분 늦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왠걸 으리으리한 빌딩이었다. 


알고보니 YCH는 싱가폴에서 가장 큰 로지스틱 재벌이었더라는 것. 그리고 오늘은 싱가폴에서 가장 큰 물류회사의 회장님과 가족들을 만나는 날이었던 것이다. 회장님 오피스는 내가 본 오피스 중 가장 엑스트라바간자했다. 

회장님, 일할 맛 나시겠어요...


그동안 많은 오피스를 다니며 피치를 했지만, 코드로 스크린에 연결안하고 굳이나 아이패드로 다운을 받아서 애플 티비로 연결해서 스크린을 보여주기를 강요(?)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회장님은 fancy한 기술을 좋아하시는 듯했다. 나에게 애플이 없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코리안은 삼성입니다"하고 대답을 드렸다. 


물류산업에 조인한지 한달 반이 되었지만, 아직 물류의 물도 모르는 나는 닥치고 열심히 대화를 들었다. 회장님은 진짜 달변가였다. 말을 어찌나 내 취향으로 재밌게 잘하시는지, 새로운 내용이 뚝뚝 떨어졌다. 


그간 큰 기업에 있으면서 난 정말 스마트한 기업의 리더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사람들은 숫자가 머릿속에서 훅훅 돌아가는 소리가 느껴질만큼 날카롭다. 크게 분석의 프레임워크를 파악하고, 디테일까지 잡아낸다. 큰 회사에는 그런 리더들이 많았다.


그런데 40년전 노동자들을 건설 현장으로 실어나르는 용달차로 시작해 5,500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싱가폴에서 제일크고 동남아에서 끝발 날리는 물류회사 (가족회사) 기업의 회장님은 큰 기업의 리더들과 풍기는 분위기나 보는 시각이 달랐다. 물류산업의 특성인지 아니면 이 대화가 기업 내부 대화가 아니고 서로 다른 기업의 대표 대 대표의 대화인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보는 관점이나 일을 결정하는 방식이 상장회사의 리더들과는 정말 달랐다. 


어떻게 표현할지 잘 모르겠지만, 회장님은 비즈니스 플랜을 말하는게 아니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분명 우리는 비즈니스 플랜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베트남에 꽤나 큰 배팅을 했다. 2025년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연결되어 물류가 육지로 자유롭게 다니게 한다는 정부의 추진이 있었고, 이 회사는 그에 맞춰서 육로, 해상, 하늘까지 모두 잇는 물류의 중심적인 지역에 아주 큰 물류단지를 짓고 있었다. 근데 회장님의 말에는 숫자가 하나도 안나왔다. 나라간의 이해관계, 흐름에 대한 예측, 이 모든 것이 이야기처럼 흘렀지 매니징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 회장님은 업계에서 워낙 비저너리한 리더로 이름이 나있었기에, 회장님의 생각은 항상 너무 앞서가서 생각하고 직원들이 그걸 따라오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고 했다. 암튼 상장기업의 리더와 개인 기업의 오너가 주는 다른 느낌이 신선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가 좀 더 좋다. 무협지 같아서. 재밌잖아, 인생이.  


회장님의 스토리가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혹시 인터뷰를 딸 수 있겠느냐고 요청드렸는데 흔쾌히 오케이하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위챗 연락처를 받았는데, 나중에 Alvin이 넌 진짜 기술좋다며 혀를 찼다. 


내가 이 회사에 어떤 부분을 기여할 수 있을지는 계속 찾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Alvin은 나를 wow factor라고 부른다. 첫만남에서 내 인상이 그에게 굉장히 강렬했고, 도대체 이 회사가 나에게 뭘 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회사에 꼭 필요한 무언가를 가지고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때문에 나를 꼭 데려오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내가 자기 제안을 받아들일거라고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 줄 수 있는 최선이었지만, 연봉도 내가 받던 것 보다 낮았고, Fancy한 회사와 인더스트리에 있던애가 인기 없는 logsitic, 그 중에서도 트럭이라는 먹이사슬의 가장 밑단으로 올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아직도 산업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내가 정말 물류를 정말 잘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것은 회의감 만땅이다. 그런데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몇가지들이 분명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내가 이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지난 8년간 싱가폴에 살면서 fancy한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나는 좀 더 싱가폴이란 나라의 코어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Journey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나면 보일 듯 하다. 


회장님과 대화하는 Alvin은 회장님과 분위기가 굉장히 비슷했다. 이 사람들은 분석만이 아니고 gut, 본능과 직감으로 움직인다. 이놈은 될놈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서 다행이다. 


암튼 그 점쟁이가 용한 점쟁이가 맞긴 맞다. 그런데 상류사회에 진입하는 것 같긴한데 월급은 더 낮아졌으니, 우리 잘벌어서 얼른 내 월급도 올랐으면 좋겠다.

Alvin덕분에 나는 싱가폴의 최고 권력자를 뵙는 영광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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