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e in wonderland Jan 04. 2020

왜 '지금'​ 가장 전통적인 산업으로 가야하는가?

혁신의 온도차

사람을 관찰하고, 통찰과 이야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그 누가봐도 B2C 산업에 짱박을 것 같은 내가 빌어먹을 컨테이너 운송산업으로 왔을 때, 나를 사로잡았던 두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1: 창업자 Alvin은 왜 Haulio를 만들게 되었는가?


Alvin은 나름 금수저 집의 자식이다. 아버지가 꽤 규모있는 물류회사를 운영했고, 그래서 Alvin을 호주로 유학도 보낼 수 있었다. 호주에서 금융을 공부한 Alvin은 졸업 후 돈 잘버는 뱅커를 꿈꿨다. 가업이지만 물류회사는 물려받고 싶은 회사는 아니었다. 중소의 물류회사는 힘들었고 쪼들렸다. 그런데 아버지의 "잠깐만 회사에서 나를 도와달라"는 꼬임에 빠져 싱가폴로 돌아왔다가 아버지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6년 동안 코가 꿰여버린 것이다.


고집불통의 아버지와, 그와 별반 다르지 않는 아들은 사사껀껀히 부딪혔다. 아버지의 회사는 3PL도 하고 창고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물건을 고객에게 제때 배송하지 못하는 큰 이유가 계속 트럭에서 오는 것을 느끼고 Alvin은 경쟁력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자사 트럭을 소유해서 운영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트럭부서를 맡는 것은 아버지와 껀껀히 싸움을 피할 좋은 기회였다. 자기가 트럭사업을 맡을테니, 독립적인 경영을 맡겨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트럭사업을 시작하고 오지게도 마진이 작았고, 손이 많이 가는 사업이란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일하면서도 Alvin은 고객들에게 사과하기에 바빴다. 고객들은 당장 내일 30개의 컨테이너를 옮겨야한다고 말했고, Alvin의 트럭은 다 예약이 차서 여유분이 없었다. 그 일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못한다고 말해도 고객들은 "나는 모르니 니가 어떻게든 옮겨라"로 맞섰다. 어린 사업가는 이 산업이 별다른 서비스의 차이없이 낮은 단가로 싸워야하는 경쟁적인 산업임과 동시에, 내가 가진 한정적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쟁자들과 협력을 해야한다는 독특한 업의 생리를 배워나갔다. 다른 트럭회사의 사장님들과 친구를 먹고, 급하게 트럭을 땡겨써야 할 때는 10개의 다른 트럭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지원을 요청했다.


트럭 한대로 시작한 Alvin의 트럭사업은 무럭무럭 성장해서 15대의 프라임 무버를 소유했다. 똑똑하고 요령좋으며 배짱있는 Alvin은 터프한 산업에서 가장 어린 트럭 사장님으로 업계의 유명인사였다. 그런데 동시에 Alvin은 이 시점 지칠때로 지친 상태였다. 종이와 펜, 현금과 전화기, 화이트보드와 마그넷으로 하는 스케쥴 조정, 최선의 오퍼레이션에도 여전히 50% 비효율성을 내재했다.


 이 시점이었다. Alvin이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서 일하던 Sebastian을 친구의 소개로 만난 것은. 다른 회사에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주는 외주개발회사에서 일하던 Sebastian은 내륙 운송 산업의 구시대적 운영방식에 경악했다. 그에게 이런 미친 비효율성은 노다지였고, Alvin을 만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Container truck 산업을 디지털화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Alvin은 그 자리에서 말했다고 한다.


"그거 안돼. 절대 안돼. 이 산업에서 그게 될리가 없어."


거절하고 집에 왔는데, 잠이 안왔다. 머리로는 이게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벌렁벌렁해서 이틀을 잠을 못자고 결국 Sebastian에게 연락해서 같이 회사를 만들자고 한 제안을 수락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Haulio였다. 왜 Haulio냐면, 참 얘네가 이름도 깜찍하게 잘 지었다.


Haul이라는 단어의 뜻은 기본적으로 '끌다'라는 뜻이고, '운송'이라는 명사로 쓰인다. 이게 옛날에 말이 마차를 끌던때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운송은 말이 마차를 끌던때에서 나온 단어인 것이다. 컨테이너 내륙운송은 영어로 Haulage이다. Haulio는 Haul과 io의 합성이다. 여기서 io는 binary, 즉 0과 1, 두 숫자로만 이루어진 이진법을 의미한다. 정보는 1과 0으로만 저장되니까, 이건 컴퓨터의 언어다.


그래서 Haulio는 Haul (운송)을 io / 1.0. (디지털화한다) 라는데에서 탄생한 이름이다.



이야기2: 세상을 바꾼 컨테이너의 발명


별것도 아닌 철로 만든 박스인 컨테이너는 1956년에 발명되었다. 발명된지 고작 60년이 좀 넘은 것이다. 아니, '그냥 철박스를 뭘 발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야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고철박스의 발명이야 말로 인터넷의 발명에 버금가는 혁명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는 미국의 '말콤 맥린'이라는 트럭운전사가 처음 생각해낸 컨셉이다. 그럼 그 전까지 물건을 어떻게 운송했을까? 아주 최근까지도 인류는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통해 물건을 싣는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었다. 짐을 하나하나 배에 싣었다. 배 하나가 항구에 정박하면 50에서 100명 가까이되는 항구 노동자들이 그 배로 달려가 짐을 날랐다. 그러면 그 배가 다시 떠나기 전까지 일주일에서 2주일이 걸렸다. 그러니까 그 유명한 항구 도시에는 매춘을 비롯한 유흥이 발달했던 것이다. 건장한 사내들이 오면, 짐을 싣고 내리는데 강제적으로 그 도시에 1 - 2주는 머물러야했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였던 말콤은 항구에 도착해서 일꾼들이 트럭에 있는 짐을 내리는 6시간 동안 트럭에 앉아 기다리면서 지루함에 씩씩거리며 생각을 했다.


'지루하다 지루해. 그냥 내 차 트럭째 배에 싣으면 좋겠다.'


그는 그 아이디어를 바로 실현에 옮기지는 않았다. 트럭 운전을 통해 돈을 모으고 큰 트럭회사를 설립한 그는, 트럭회사를 팔고, 세계 2차대전에서 미국이 썼던 배를 두척을 인수했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발명하고 군용배를 컨테이너선으로 개조하고 해운사업을 시작했다. 그것이 컨테이너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였다. 이걸 Containerization 이라고 한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재밌는 비디오가 많이 나온다.


2주가 걸렸던 화물을 싣고 내리는 시간은 컨테이너의 발명으로 1 - 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이 프로세스의 차이는 운송 효율, 시간, 가격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왔다. (강력한 노조였던 부두 노동자들이 컨테이너 발명에 얼마나 저항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오늘 날 전 세계를 옮겨다니는 화물의 90%는 배로 운송된다. 각 부품을 다른나라에서 만드는 것도, 미국산 오렌지를 먹는 것도, 이 모든 글로벌화는 컨테이너의 발명 없이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많은 나라들은 '표준'에 잘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과 한국의 전기 플러그는 다른 모양새이다.

어느나라는 km를, 어떤 나라는 miles를 쓴다.

그런데 전 세계가 모두 동의한 몇 안되는 표준화가 바로 컨테이너 사이즈이다. 컨테이너는 20피트, 40피트 두가지 사이즈뿐이다.





그런데, 컨테이너 운송 사업에는 50년 전 컨테이너가 발명된 이후 거의 변화가 없었다.


왤까?

똑똑한 애들이 다 어디가 있는지 보라. 다 어디가서 디지털 마케팅 배우고 있고, 코딩 배우고, 유튜브만들고 컨텐츠 만들고 있다.


아마 트럭회사는 젊은 사람들이 오는 가장 마지막 산업 중 하나일 것이다. 나에게도 그랬다. 트럭은 눈앞에 있되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월마트가 아마존에 깨지고, 음반 레코드사가 아이튠즈와 스포티파이에 두들겨 맞으며 급변할 때, 내륙운송이라는 없어서는 안될 산업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기 할일을 같은 방식으로, 종이와 펜과 전화, 현금으로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오빠들이 세상에 많은데, 그 중 마틴이라는 오빠와 어제 이런 얘기를 했다.


나: "트럭 니미럴. 오퍼레이션 존나.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건, 비전은 겁나 말이 되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깜깜 낭떨어지처럼 막막한 길을 한발짝씩 걸어나가는 것인가봐."

마틴: "지금 세상에 쉬운 혁신은 없어"

나: 왜 '지금 세상'이라는 전제를 붙여? 과거에는 더 쉬웠어?

마틴: 환경이 급변하는 순간들이 있거든. 퍼스널 컴퓨터의 도입, 스마트폰의 도입, 크립토 커런시 초기러쉬 (컨테이너의 도입도 여기에 들어갈 수 있겠다.), 그런 급변하는 시기에는 기회들이 좀 쉽게 터져. 안정화되면 더 어렵고. 요새처럼 이런 안정화된 시기에는 이제 똘똘한 애들 없고, 더러운 산업으로 가야지. 더 낮은 곳으로. 그런건 이제 한 10년 보고 해야지. 존버. Haulio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 미국에도 비슷한 아이템 몇개 있긴 한데, 좋은 주제는 맞고, 더럽게 어려운 주제도 맞는듯. 유니콘은 이제 쉽게 나오지 않지. 유니콘 만드려면 그런데 베팅해야지.



나는 지금껏 다양한 산업과 회사에서 서로 다른 혁신의 온도차를 엄청나게 많이 느꼈다.


링크드인에 다닐 때, 나는 "성장하는 산업으로 가라"라고 대학교를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조언했었다. 2010년 초반은 아직 모바일 혁신의 흐름을 타고 소셜미디어가 마구 성장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흐르는 강물에 띄워진 배에 있는 사공의 마음을 느꼈다. 사공은 노를 저을 수도 있으나, 그냥 나는 그 흐름을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은 편안했는데도, 리크루터들은 나를 찾았다. 왜냐면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시기의 나는 많이 배우지 못했고 지루했다.


P&G에서는 정반대였다. 아마 내가 맡았던 브랜드가 제일 못하는 브랜드라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나는 오르막길을 죽어라 패달을 밟아 오르는 자전거를 탄 사람의 마음을 느꼈다. 멱살잡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면서 뭔 지랄을 해도 내 매출이 잘 성장하지 않는 무력함을 느꼈다. 처음엔 내가 맡았던 브랜드를 turn around 시키고 싶은 열망과 도전정신으로 가득했으나, 도전이 계속 도전으로 남아 있을 때 한 3년쯤되니까 도저히 못하겠다의 지경에 이를렀다. 그런데 회사를 나오고 나니, 나는 기저귀 팔아서 10조 버는 회사의 위력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혁신보다는 점진적이고 꾸준한 발전을 통해 마켓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기업에는 맷집을 키우는 힘이 있었다. 그게 직원들을 훈련시켰다.


마치 드래곤볼이나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중요한 결전을 앞두고 시간이 10배 느리게 가고 중력이 10배되는 가상공간에서 집중 훈련을 하고 나오면 강해진 것처럼, 무겁고 느리고 극단적 레벨까지 logical thinking을 하도록 강요당하는 회사에서 밖으로 나오니, 나의 사고력이 굉장히 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10배 중력에서 훈련받은 나는 가장 혁신이 도달하지 않은 산업에 왔다. 그리고 나니 여기서 기회가 보인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던데는 이유가 있을것이다. 이렇게 트럭회사들이 운영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리고 그걸 깨기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이곳에도 혁신의 봄은 올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밥그릇은 없으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던대로만 해서 살아남은 기업은 없다. 그리고 아시아의 내륙운송의 마켓사이즈가 알고 싶은가? 약 2경원이다. (이경원이라는 친구 이름이 아니다. 매년 2000조의 돈이 오가는 곳이다.)


그래서 5년전에 '성장하는 산업으로 가라'라고 했던 나는 지금 이시대에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Go to the old fucking industry and be the black swan there. (존나게 오래되고 매력적이지 않은, 고인물 산업으로 가서, 거기에 변화의 물을 대자)"


적어도 그게 나의 베팅이다.


그걸 내가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짤리면 못하는거지 뭐.

그렇지만 기회는 분명히 이곳에 있다.  



PS. 여담인데, 어떤 이들은 흐름을 읽고 갈것이고, 어떤 이들은 운좋게 거기 있어서 흐름에 밀려갈 것이다. Microsoft에서 APAC eCommerce 헤드가 친구인데, 이 영국인 친구는 대학을 안 나왔다. 그는 자기 커리어 초반에 도요타 공장에서 볼트 너트를 쪼이고 있었다고 한다. 결코 엘리트가 아니었던 얘의 인생을 바꿔놓은 결정은 여자친구를 따라서 간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였다. 거기서 얘는 식품회사 네슬레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는데, 당시에 아무도 거들떠도 안봤던 네슬레의 온라인 판매채널 관리이다. 온라인 쇼핑몰의 아주아주 초기였던 것이다. 그때 당시 전혀 중요하지 않아서 계약직 한명이 모두 관리했던 온라인 판매를 그는 계속해왔고, 각 기업들에서 한껏 중요해지는 '온라인 판매 유경험자'를 찾을 때마다 그는 모든 지원자들 중 가장 고경력자였다. 흐름은 흐름이고, 팔자는 팔자다. 그는 조상신이 도운 팔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