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대단한 기업이 삼성이라면, 싱가폴이 낳은 가장 대단한 기업은 각종 정부부처라고 생각한다. 싱가폴 로컬 물류 스타트업인 Haulio로 옮기고 나서 정부 사람들과 미팅을 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그동안 미팅을 할 때마다 이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정말 좋은 인상을 받았다. 싱가폴 정부쪽이랑 미팅을 하고 있으면, 정부 기관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안든다. 그냥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미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미팅을 하다보면 이게 정부기관 미팅이란걸 까먹는다. 스마트하고 무엇보다 비즈니스 센스가 되게 좋다.
얼마전 청소기와 헤어드라이기로 유명한 영국계 가전회사 다이슨이 싱가폴로 본사를 옮겨왔다. 다이슨 사장님이 어디에 집을 샀다는 둥, 바로 영주권을 받았다는 둥 한동안 소문이 무성했었다. 다이슨이 어떤 딜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롤스 로이스인지 그 비슷한 이름인지 큰 회사의 HQ를 싱가폴로 옮기기 위해 싱가폴은 이런 종류의 딜을 한다고 했다.
싱가폴: 롤스로이스야, 글로벌 헤드쿼터를 싱가폴로 옮기자
롤스 로이스: 그러면 뭐해줄건데?
싱가폴: 세금 x년 면제해주고, 너네가 공장, 오피스로 쓸 부동산 x년 무료로 해줄게
롤스 로이스: (직원들 relocation, 공장이전 계산중...) 오키!
싱가폴: 캐피탈 랜드(싱가폴에서 가장 큰 부동산회사)야, 너네 시내에서 좀 떨어진 외진곳에 있는 건물, 롤스 로이스에 무상으로 임대해주자
캐피탈랜드: 내가 미쳤어?
싱가폴: 세금 xxx감면해줄게
캐피탈랜드: (계산기 두드리는 중) 캔!
싱가폴: 롤스 로이스야, 대신 싱가폴 국민을 의무적으로 xx퍼센트 이상을 고용해야하고, xx이런부분들해줘야하고 기타등등 조건조건조건
그리고 이런 식으로 다국적 기업에서 경험을 쌓고 배운 국민들이 로컬회사에서 일하며 기술을 전수하고, 세금도 내고 뭐 이런걸 바라면서 일을 한다고 한다.
오늘 정부기관중 하나랑 회의가 끝나고, 어떤 KPI로 일하는지,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 기관은 싱가폴의 미래를 대비하는 기관이었다. 각 산업에서(물류, 국토발전이든, 뭐 이런) 자기 전문분야 별로 (정보화 산업이라든가) 자기의 영역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해야한다. 예를 들면 이 부서는 계속 이런 스터디를 한다. 물류체인 내에서 운송부분을 예를들면, 선진국에서는 운송으로 가는 젊은 노동인구의 유입이 줄어서 매년 트럭 드라이버가 모자라게 되는데, 10년 후에 올 것을 미리 예측해서 거기에 올바른 방법으로 대비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라는 돌아가야 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주먹구구로 일단 틀어막는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노동인구가 줄어서 트럭드라이버가 모자라면 물류를 중심으로 먹고사는 싱가폴에는 큰 타격이다. 그러면 가장 간단한 솔루션은 개발 도상국에서 노동인구 유입을 하면된다. 그런데 오히려 해당 영역의 비자 쿼터를 줄이고 있다. 왜냐하면 장기적으로 그것이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을 통해 풀것은 시장보다 적극적으로 기술을 도입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런 싱가폴 기관이 도와주려는 곳이 싱가폴의 작은 중소기업이란 것이었다. 담당자들이 말하기를, 동아시아 국가의 정부가 어떻게 일하는지 잘은 모르지만 일본은 협회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정부부처가 협회에 몰아주고, 한국은 재벌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큰 회사의 편의를 봐준다고 (뭐 그시대는 끝난것 같긴하지만) 언뜻 자기들이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싱가폴에 있는 대부분의 큰 기업은 다른 나라에서 온 다국적 기업이고, 싱가폴에 뿌리를 둔 기업들은 주로 중소기업이기때문에 투자차원에서 싱가폴로 큰 기업을 유치하는 것, 그를 위해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을 빼면 정책적으로나 정부 서포트는 최대한 자국의 소기업을 도와주는 것에 많은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국의 기업들이 새로운것을 받아들이는데 느리다고 속터져했다. 정부가 기업들에 비해 앞서나가있는건 다른나라에서는 흔하게 못봤다.
객관적인 수치로 봐도, 싱가폴은 앞선다. 가장 최근 월드뱅크의 정부 효과성 인덱스에서 (Government Effectiveness index) 전 세계 1위에 랭크되었고, World Economic Forum의 국가 경쟁력 지수에서 싱가폴은 미국에 이어 2위에 랭크되었다. 내가 느낀것이 말짱 나만의 느낌은 아닐것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애국심으로 똑똑한 애들이 열심히 일해주지 않는다. 일단 싱가폴의 총리는 연봉을 약 20억을 받는다. 미국 대통령의 네배다. 그리고 공무원들 연봉도 다른 어느나라들보다 많이 주는 편이다.
모든 나라가 갖은 이점이 다르다. 어떤 나라는 자원이 많고, 어떤 나라는 인구가 많고, 어떤 나라는 지리적 위치가 좋고 그런데 그런 자신이 있는 강점을 잘 살려서 국가 살림을 해나가는 것이 국가 전략이라면 싱가폴은 진짜 훌륭하게 전략을 영위해가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작은 나라 사이즈, 인구 사이즈, 없는 자원에서 정말 나름 최선을 다해 전략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나라다. 말레이시아의 변방에 코딱지만하게 붙어서 (심지어 레드닷이라 부름. 지도에 그냥 빨간점으로만 찍혀서), 그냥 짜져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작은 나라인데, 참 우리나라처럼 나름 기적을 이룬 나라같다. 이 나라랑 안맞는 애들은 진짜 안맞는데, 나에게는 다른 나라 가려고 해도 참 여기 만한데가 없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본 광고판. 싱가폴 정부가 엄청 집중하는 것 중 하나는 자국 사람들의 스킬셋을 계속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디지털 스킬을 가르칠까, 어떻게 더 국민들을 기술력을 업그레이드 시킬까. 한국에서는 직장인들이 자기돈 내고 자발적으로 발버둥치는데, 여기는 국민들은 그럭저럭 자기 하는일에 만족하는데 정부가 안절부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