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하루 종일 프레젠테이션 트레이닝을 받는 날이었어요. 외부에서 아주 유명한 프레젠테이션 코칭 전문가를 영국에서 불렀습니다. 유명한 광고 에이전시에서 잘 나가던 광고 세일즈맨이었던 이분은 어느 날 연극 배우인 아내와 대화를 하다가 프레젠테이션과 연극이 많은 점에서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했대요. 그래서 연극을 더 연구했고, 연극 배우들이 하던 테크닉을 접목시켜 프레젠테이션 강사로 프리랜서로 변신합니다. 그래서 인지 기존에 들어왔던 트레이닝과 다른 방식과 내용에 어지간히 훌륭하지 않고 서야 코웃음도 안치는 링크드인의 세일즈 사람들도 몰입해서 트레이닝에 참여했었어요.
점심시간이 되어서 모두 다 같이 회사에 있는 캔틴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수준급 말빨을 자랑하는 트레이너 브라이언 주위로 사람들은 모였고, 사람들은 서로 분주하게 대화를 하며 점심을 먹기 시작했어요. 8명 정도가 대화를 하며 점심을 먹은 지 30분 쯤 지났을까? 저는 궁금증이 올라오는 걸 참지 못하고 브라이언에게 물었습니다.
“Brian, are you an introvert?”
브라이언은 흠칫 놀라며, “..eh...Yes. Why did you think so?”라고 물었어요.
잘 나가는 세일즈맨이었고, 말을 잘해서 프레젠테이션 코칭 전문가가 된 사람에게 갑자기 “당신은 내성적인 사람인가요?” 라고 물으면 누구나 의아해 할거에요. 저는 제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왜냐면 당신은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잡담을 하는 것보다, 아까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할 때 더 편해 보였거든요."
브라이언은 그제서야 안심한 듯 웃으며 얘기를 했어요.
“맞아요. 배우인 제 아내는 외향적인 반면, 저는 아주 내향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모두가 모여서 하는 파티 같은 건 저한테 딱 지옥 같죠. 물론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는 데는 문제는 없지만, 그걸 즐기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소수의 친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요.”
제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알아봤어요. 저는 1대 다수 혹은 1대 1로 말하는 것이 훨씬 편안해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잡담을 하는 건 정말 에너지 소모가 심하거든요. 분위기를 봐가면서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모두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도 신경 써야 하고,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있으면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가기 어려우니까 재미가 없거든요.”
‘외향적, 활발하고 명랑하며, 친구들이 많다’이라고 하면 엄청 좋은 성격인 것 같지 않나요? 그렇지만 ‘내향적,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룹에서 말수가 적음.’이라고 하면 소심하고 왠지 같이 있으면 재미 없고 쑥스러움도 많이 탈 것 같지 않으세요?
저는 내향적 성향이에요. 정확하게는 어렸을 때 외향적이었다가 내향적으로 변했다고 보는 게 더 맞아요. 20대 초반까지는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얻었지만, 요새는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뺏기는 느낌이 더 커요. 그래서 저는 퇴근 후나 주말에 친구들과 파티에 가는 것과 집에서 책을 읽는 것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를 택하는 사람입니다.
외향적 성격에서 내향적 성격으로 바뀌는 과정이 저 스스로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내향적으로 바뀌어가는 초반에는 TGIF에 나가 놀 계획을 세우고, 주말에 친구들이 밤늦게 까지 놀면서 젊음을 즐긴다고 친구들이 신나 하면 저는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와서 뒹구는 나를 보며 ‘나는 루저인가?’ 생각도 들었던 적 있어요. 또 예전에는 모임에서 대화를 주도했지만, 요새는 사람들 모임에서 말없이 듣는 쪽으로 많이 바꼈어요. 그때는 그게 긍정적인 변화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이 변화가 지금의 시점의 저에게 필요한 변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향적이었던 예전에는 모임에서 제가 말하지 않을 때의 어색함을 견딜 수 없었어요. 그런데 내향적이 된 지금은 좀 더 차분하게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침묵을 지키고 앉아있는 것 자체도 편안해졌고요. 다만 사람들 모이는 데를 좀 피하게 되었죠.
많은 사람들이 외향적인 성격의 장점은 알고 있을 테니까 내향적인 성격 자랑 좀 해볼게요.
내향적인 사람들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에요. 집단에서 이 사람들은 시끄럽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이 얼마나 재밌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지, 그 진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말을 하는 대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일대일로 대화해보면 깜짝 놀랄 만큼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을 거에요.
또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기 이해가 높을 확률이 큽니다. 왜냐면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을 때, 자기 스스로 풀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외향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서 끝내서 빨리 그 고민을 해결하고 기분 전환을 빠르게 할 수는 있겠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긴 시간을 거치더라도 스스로 그걸 소화해내기 때문입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모임에서 일단 말을 해서 돋보이려고 하기보다 관찰을 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통찰력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쉽게 헷갈리지만 구분 해야할 것이 내향성과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은 서로 다릅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은 사회 생활을 잘 하고 싶어도 잘 할 수가 없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서 편안함과 충만감을 얻기 때문에 사회 생활을 활발히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일뿐이죠. 프레젠테이션 전문가였던 브라이언이나, 그 누구보다 회의 시간에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도 내향성을 가진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100% 외향적인 사람도, 100% 내향적인 사람도 없어요. 본성이 내향적 상향이 더 큰 사람일지라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외향적으로 Turn on 하는 방법을 익히면 완전히 외향적인 성격만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외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사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늘려서 밖으로 뿜기만 하는 에너지를 안으로 돌려서 자기 내면을 깊게 살펴보는게 필요하구요.
그러면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인간 관계의 화려한 마스터가 될 수 없을까요? 저는 각종 네트워킹 이벤트에 초대 받아 갈 때가 많은데, 그럴때 혼자 가요. 왜냐면 친구를 데려가면 계속 친구랑만 붙어다니게 될거라는 것을 알거든요. 그러면 네트워킹 이벤트를 가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대신 혼자가면 더 능동적으로 옆에 사람에게라도 말을 붙이게 되고, 사람들이 저에게 말을 붙이기도 쉽거든요.
특히 특정 산업에서 저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전문가들이 많이 참석한 이벤트에 갈 때 저는 혼자가서 술 몇잔을 들이킨 후에 에너지 레벨을 높여 사교적인 사람으로 변신합니다. 억지로 친해져야하는 사교모임보다는 아예 나이와 배경이 다른 전문가들 모임은 훨씬 재밌어요. 제가 시시껍절한 얘기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그분들에게 올바른 질문을 하면 그분들이 삶의 지혜와 자기 전문분야의 얘기를 들려주거든요. 그 사람들은 제가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지식을 물어보다보면 보람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그래서 내향적인 저는 항상 그런 모임에서 혼자 간 후 항상 1:1로 대화를 합니다. (나는 한 놈만 조진다의 정신) 다수의 사람들과 잡담을 하는 것보다, 한 사람과 깊은 얘기를 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적고, 내가 대화를 컨트롤 할 수 있어요. 내가 궁금한 질문들을 잘 던지면서, 돌아서면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릴 내용의 소모적 대화를 피하고 제가 원하는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거든요. 능수능란하지 않은 영어로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요란하게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보다, 한 사람과의 대화를 깊이있게 끌어나가는 것을 보여주는게 제 진가를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란 것을 파악한거에요. 그래서 이런 네트워킹 이벤트에서 만나서 마음이 맞아 긴 시간 얘기한 사람들과 좋은 친구가 된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it’s okay to be who you are.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억지로 노력할 필요 없어요. 자기 자신이 언제 편안한지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그 후에 다양한 상황에 적재적소로 대처할 수 있는 나만의 요령만 익히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