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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벼리 Jul 28. 2022

거절의 기술

직장인의 프리랜서 도전기 27.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빈틈 하나씩은 있기 마련인데, 아무리 빈틈이라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책임감'이 빠진 빈틈이다.


책임감의 결여는 생각보다 큰 파장력을 가진다. 책임감은 곧 성실함과도 직결되는데, 성실하다는 것은 즉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책임감 없는 사람들 때문에 성실한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상황을 싫어한다.


당장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돕고 살지는 못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무책임을 어설픈 합리화로 둔갑해 포장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나는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오래 한 편이라 나만의 선이 있는데, 그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아주 냉정해진다. 예를 들어 자신이 할 일을 남에게 협의도 없이 전가하는 일 같은 것이 되겠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직속 상사가 갑작스럽게 오후 반차를 쓸 일이 있어 가보겠다는 말을 내게 건네곤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팀 담당자가 내게 메신저를 보냈다. "전팀장님이 오후 반차로 자리를 비우게 돼서 oo님께 이 업무를 주면 된다고 하셔서요. 지금 전체 공지 띄우면 될까요?" 나는 기존 업무로 실적을 관리하느라 바쁜 상황이었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렇다.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던져버리고 집에 가버린 거다. 기분 좋게 점심 먹고 오후 업무를 시작하려던 참에 이런 소리를 들으니, 어이가 없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업무는 실시간으로 전체팀에 업무 협조를 받아 즉시 처리해줘야 하기에, 본업무에 집중하다가 멈추고 그 업무를 처리해줘야만 한다. 내일이면 이번 달 실적 마감일이라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에 엿이라도 먹일 심산인가 싶었다.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다른 팀 담당자는 하기 싫다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건지 아님 정말 이해를 못 하는 건지, 그냥 지금 하던 일 멈추고 당장 이 일을 하라는 뉘앙스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무책임 앞에 자비 따위 없는 사람이라 메신저로 그 담당자에게 잠시 대화 좀 하자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다른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금 현재 우리 팀 내에서 진행 중인 프로모션이 있으며 내일이 마감일이라 실적 관리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에, 나에게만 팀장님의 업무가 추가로 분배되는 것은 부당하다. 팀 내 1,2위만 실적이 인정되며 현재 나는 1,2위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전에 협의된 내용도 아니기에 솔직히 당황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라고 솔직하고 간결하게 내뜻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쿨하게 상황이 정리됐다. 타 팀 담당자가 이런 상황을 몰라서 일어난 일이었다며, 그럼 다시 익일 전팀장님이 오시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전체 공지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예전의 나였다면 뒷목을 잡아가며 아무  없이 묵묵히  일을 했을  같다. 그리고 속으로  리더를 원망하고 내적으로 손절한 티를 팍팍 냈겠지. 하지만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특히 사회라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저 주는 일을  해내면 아무렇지 않은  착각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미덕이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회사마다 분위기가 달라 아직까지 이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사람 성향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주는 일을 닥치는 대로 도맡아 하다 보면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런 시간이 누적되어 결국 과부하가 걸리고, 일 잘하던 사람에서 일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 문제가 되겠지.


그러고 보니 예전에 비해 사람 참 많이 변했다 싶은 게, 예전 같았으면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부터 분석했을 텐데 이제 그런 시간 낭비는 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하는 사람이겠거니, 혹은 복잡한 개인사가 있어 급하게 집에 가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겠거니 하고 말아 버린다. 그게 나를 위해 훨씬 이롭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무책임한 태도는 실수가 아닌 본성에서 나온다. 거절을 잘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선을 넘느냐 안 넘느냐.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가치의 기준에서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과감하게 거절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가 괜찮은 줄 오해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매일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것 같이 보여도,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내면의 힘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막상 프리랜서가 되어도 오롯이 혼자 일할 수 없고 일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끝없이 소통할 텐데, 그날을 위해 회사에서 돈까지 주며 단련시켜 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간에 좋은 건 본받을 것이고, 나쁜 건 반면교사 삼으면 될 일이다.


거절을 잘하기란 쉽지 않지만, 잠시 까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롱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진짜 괜찮지 않다면 착한 척은 하지 말자. 속으로는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착한 척하는 건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솔직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솔직해야 본인도 건강해지고 그런 사람을 보는 이들도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 나 또한 누군가의 선을 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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