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과 실망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어른들이 경험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물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을 쉽게 믿는 만큼 상처도 쉽게, 그리고 더 자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에 가까운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지키려고 사람을 너무 믿지 않아도 문제가 된다. 그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정답을 찾으려면 상대방에게 집중하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는 편이 낫다. 과거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뚱맞게 웬 결핍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통해 생긴 생채기는 사람으로 치유된다고 했던가?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회복탄력성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타인이 아무리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려 애써도 스스로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의심만 더 늘어날 수 있다.
여기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내 안에 결핍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치 몸에 어떤 증상이 나타나도 인정하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으면 치유될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똑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야 다른 사람들 눈에 띄니까 병원에 끌려가거나 다른 사람이 눈치라도 챌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이 아는 결핍의 요소가 하나쯤은 있다.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결핍을 애써 인정하지 않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모자람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상보다 큰 결핍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나 또한 결핍이 있는 사람이고, 그 결핍을 인정한 건 30대가 되어서였다. 자신의 결핍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타인을 통해 발견하거나 나처럼 책을 통해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는 정혜신 작가님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통해서 결핍을 발견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많았던 내 마음속에 들어와 조용한 위로를 건네었던 책이라 잊을만하면 또 찾게 되는 책이다. 물론 단 한 권의 책만으로 모든 것이 치유되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마음이 힘들 때마다 독서에 더욱 집중했던 과정이 쌓이고 쌓여 치유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결핍을 지혜롭게 이겨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비교할 가치가 없다. 바로 여기서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 결핍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머리로 재거나 계산하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정성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은 매력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더욱 빛난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스스로 인식하고 변하고자 노력한다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럼 무엇을 위해 변할 것인가? 사람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세상에 갈 때 돈을 쥐고 가지는 못한다. 결국 사람이 남기는 건 그 사람의 선행 또는 악행뿐이다. 가져갈 것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힘들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고 말이다. 그저 내 가족과 친구들,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사람 냄새나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
어딘가 결핍 하나쯤 갖고 사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길 줄 아는 여유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이미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