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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벼리 Sep 19. 2022

요즘 가을 타는 것 같나요?

뜨겁던 여름이 떠날 때를 모르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하지만 대낮의 태양은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다. 어느새 이 글이 무색해질 정도로 가을이 잠시 고개를 내밀다가 겨울이 성큼 다가오겠지만 말이다.


감수성이 풍부하거나 소소한 것에도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일수록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말이 있다. 나 또한 여기에 살포시 숟가락을 얹어볼 수 있는 사람이라 계절의 변화에 꽤나 민감한 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요즘 들어 입맛이 없어지고, 시시때때로 귀차니즘이 불쑥 찾아와 자신과의 싸움을 부추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비교적 길어지면서 입에 거미줄 칠 정도로 말수가 줄다 보니 텐션도 다운되는 느낌이지만, 워낙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서 계절의 변화 앞에 예민해진 나를 보살필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오래된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시간을 뒤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외향인에 가장 가까운 내향인이지만 어쨌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라 믿고 살아왔다. 물론 이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의외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건, 그렇게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졌을 때였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에너지가 빨리, 그리고 많이 소모되는 인간형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밤샘 수다를 떨고 잠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피곤함보다는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된 느낌이 들었다. 자세한 이유도 모른 채 20% 빨간색 충전 상태로 겨우 버티고 있던 내가, 사람으로 인해 충전이 되는 일은 비교적 드문 일이기에 신기함 그 자체였다.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을은 매년 찾아오기에 또다시 내가 계절의 변화 앞에 무력해질 때면 스스로 찾은 방법으로 일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나는 많이 웃었고, 편안했다. '아차, 내가 그동안 계절 앞에 무기력했던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필요 이상의 긴장을 하며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긴장한 상태에서는 진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숙련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입이나 눈가에 경련이 일어날 만큼 힘든 게 억지로 웃는 것이다. 그런 웃음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태를 만들려면 우선 내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의식적으로 많이 웃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천성이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어느 정도는 가벼운 수다도 일상 속에서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본능을 거스르면 어딘가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물론 본능을 억제해야 하는 예외의 경우도 있다.)




스스로 가을 탄다는 생각에 갇혀 동굴 속에 들어가면 갈수록 더 우울해질 뿐이다. 물론 가을에만 즐길 수 있는 센티함이 있다. 계절이 주는 애틋한 감수성이 폭발하는 시기를 오롯이 즐기고 감당할 수 있다면 그 선택도 존중한다. 나 또한 가을의 센티함을 즐길 때가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면 조금은 귀찮더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이게 어렵다면 나를 표현하고 표출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에게 쌓여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분출된 에너지가 순환이 되어 잠자코 있던 에너지가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마치 혈액순환이 잘 되기 시작하면 몸에서 활력이 생기듯이.




봄이 주는 따듯함, 여름이 주는 활기참, 가을이 주는 차분함, 겨울이 주는 포근함의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참 대단하지 않은가? 난 이 다채로움이 좋다. 그리고 계절을 거듭할수록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제야 변화무쌍한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인정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내 속에 있는 다양한 나를 오롯이 인정하고 즐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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