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by 하늘해

작년 이맘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니면 어떤 특정 기념일에는 무얼 했었나? 떠올려보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하루하루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하루하루가 이상할 만큼 희미하다.


어젯밤에는 모처럼 길게 잠을 청했다. 잠들기 전,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흐릿했다. 아득한 감정만이 남아있다.


나는 아마도 선택을 했던 것 같다. 행복했던 일과 불행했던 일 모두를 기억할 것인지, 아니면 전부 다 잊어버릴 것인지. 결국 나는 후자를 택했다. 결국 모든 기억이 함께 사라진 것이다.


100명이 나를 좋아해 주는 동시에 100명이 나를 싫어한다면, 나는 어떤 길을 택했을까. 그 모든 감정을 감내하는 삶일까, 아니면 누구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무색무취의 길일까. 그만큼 괴롭고 힘든 감정을 이겨내기 어려웠던 걸까, 아니면 그저 피하고 싶었던 걸까.


이젠 아득히 남은 몇 개의 행복한 장면들만 가끔 떠오를 뿐이다.


기억의 디테일이 사라지고 오늘 하루만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아주 평면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마치 한 채팅창을 닫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채팅창을 이어가는 AI처럼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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