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의 세계, 오늘은 님이라고 불립니다.

by 하늘해


회사에서 불리는 방식은 꽤나 다양해졌다.


지금의 나는 ‘늘해님’으로 불리고 있고, 직책은 매니저다.

한때는 영어 이름 ‘데이빗’으로 불렸는데, 그 시절 친했던 동료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땐 여전히 나는 데이빗이다.


“데이빗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네, 빅맥. 요즘은 어때요?”




물론 ‘님’이나 영어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나는 직급으로 불리며 살아왔다. 과장이었다가, 차장이었다가, 부장이었다가… 나도 가끔은 호칭에 신경이 쓰인다. 높게 불리면 기분이 좋은 걸까? 아니면 호칭에는 힘이 있는 걸까? 동시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호칭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는 게 조금 불편하다. 호칭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거기에 안주하려 하거나, 그걸 무기로 지시하는 모습은 싫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호칭까지 걸어온 그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을 수도 있으니까.


‘님’이라고 부르든, 영어 이름을 쓰든, 그게 얼마나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어주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물리적인 나이, 재직 기간, 영향력에 따라 어딘가 수직적인 질서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대행사에서는 일반 회사보다 한 직급 정도 빨리 달게 되는 편이다.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땐 사원보다는 대리, 대리보다는 차장이나 부장이 신뢰감을 준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케어해 준다’는 안정감 같은 것 말이다. 어느새 다양한 직급과 직책을 거쳐온 나는, 요즘엔 오히려 수평적인 분위기가 더 유리하다고 느낀다. 새로운 걸 배워야 할 때, 시행착오가 필요한 순간엔 직급과 직책은 체면을 차리게 하는 느낌이라 할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명함에 모두 ‘매니저’라고만 적혀 있다. 그런데 매일 업무를 주고받는 파트너사의 대리님은

나를 계속 ‘대리님’이라고 부르신다. 그냥 ‘매니저’라고 불러도 되는데 말이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굳이 정정하는 것도 애매해서 그냥 흘려보냈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메일에서 나를 다시 ‘부장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누군가가 귀띔해 준 모양이다.


직급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놓고, 익숙한 호칭으로 불리자 괜히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도 슬랙에는 ‘늘해님’을 찾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고, 나는 그 알림에 댓글을 달기 위해 출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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