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도착하면, 그곳이 어디든 새로운 언어와 낯선 사람들의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가장 가까운 일본만 가도 금세 달라진 공기의 결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게 가장 임팩트 있었던 여행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이었다.
멀리 떠나는 여행이라면 비행기 안에서 보낸 긴 시간만큼 새로운 분위기를 만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달랐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불과 2시간 남짓. 마치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가는 시간, 혹은 일본 도쿄까지 가는 여정에 조금 더 시간을 얹은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짧은 비행 끝에 만난 풍경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2013년 10월이었다.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실제 전쟁 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라는 이름만으로 한국인 여행객들이 망설이는 곳이 되어버렸다. 검색해 보니 요즘은 무비자 여행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내가 갔던 그때는 비행기를 탈 경우 비자를 직접 발급받아야 했다. 배편은 무비자가 가능했지만, 여행 시간이 너무 길었다.
2시간 남짓한 비행을 마치고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고속철도를 타고 시내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어릴 적 어렴풋이 기억하던 구형 자동차와 버스에서 풍겨 나오던 짙은 배기가스 냄새가 다시금 떠올랐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도시 풍경이었다. 분명 아시아를 벗어나지 않았는데도 눈앞에 펼쳐진 건 낯선 유럽의 모습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10월 중순임에도 오후 다섯 시가 되자 서서히 내려앉던 어둠. 겨울의 문턱 같은 공기에 괜히 긴장이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밤의 러시아는 무법천지일지도 모른다, 돌아다니다 큰일이 날 수도 있다’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서둘러 호텔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요즘 같으면 스마트폰 하나로도 충분했겠지만, 그 시절 나는 무거운 DSLR 카메라에 렌즈를 달아 목에 걸고 다녔다.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하루하루를 기록했는데, 덕분에 지금도 당시의 기억을 고화질로 선명하게 꺼내볼 수 있다.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구글맵을 활용했는지는 어렴풋하지만 호텔까지도 꾸역꾸역 어렵게 도착했던 기억이 났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첫날은 그렇게 낯섦 속에서 호텔에 도착하며 조용히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