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가키섬_ 아침 산책
이른 아침을 먹고 시내 산책에 나선다. 주택가 골목을 걸어 오르자 교통안전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남녀 학생이 손을 든 모습이 스탬프 그림처럼 찍혀 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큰길로 빠지자 이시가키 소학교가 나온다.
나지막한 담을 따라 각국의 아이들 그림이 이어진다. 독일, 터키, 이집트 국기가 보인다. 아르헨티나 옆에는 한쪽 머리를 묶은 한국 여자애도 있다.
호텔로 돌아가다 안 사실이지만, 학교 뒤에는 묘지가 있다.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고 비석을 세운 일본의 공원묘지와는 그 풍경이 사뭇 다르다. 커다란 거북등 모양의 귀갑묘[龜甲墓]는 우에하라[上原] 집안의 가족묘다.
그 뒤로 몇 기의 묘가 나란히 들어앉아 있다.
오키나와는 예로부터 풍장[風葬]을 했다. 물가의 숲이나 동굴에 시신을 놓아두었다가 몇 년 뒤에 뼈를 거두어 깨끗이 씻은 후 항아리에 담아 안치하는 세골[洗骨]의 전통이 있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동굴 대신 귀갑묘의 내실에 시신을 모시게 되었고, 화장이 일상이 되면서 풍장과 세골의 풍습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묘의 형태도 임신한 여성의 불룩한 배를 닮은 귀갑묘보다는, 집 모양으로 각지게 올린 중국식 파풍묘[破風墓]가 크게 늘었다.
풍장은 섬사람들에게 익숙한 장례법이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만 해도 과거에는 풍장을 했다.
황동규 시인이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닿고 싶어 한, 고군산도 너머의 표주박 같은 섬들이 그러했고, 목포에서 뱃길로 두 시간 반이 걸리는 전남 신안의 도초도,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된 남해의 청산도 같은 섬들이 여기에 들었다.
서해와 남해의 섬사람들은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초분을 하기도 했다. 대나무로 엮은 대발쌈이나 목관에 주검을 모셔 맨땅에 안치한 뒤, 짚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 비바람을 막았다.
한 3년을 그렇게 두었다가, 살과 물이 다 빠진 깨끗한 뼈를 추려 다시 모시는 일을 자식 된 도리로 알았다.
귀갑묘도 초분도, 자식을 밴 어미의 배를 닮아 둥그스름하다. 묘의 형태는 달라도 육신이 썩어 땅에 녹아들고 남은 백골에서, 섬사람들이 불멸의 낌새를 맡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큰길을 타고 남쪽으로 죽 내려가자 항구가 나온다. 리토터미널 건너에 있는 우민추[海人] 간판이 반갑다. ‘우민추’는 어부를 뜻하는 오키나와 방언이다. 어감만 놓고 보면, 생활의 느낌이 밴 어부보다는 해인 쪽에 더 마음이 간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730 교차로가 나온다. 길 건너에 우뚝 선 랜드마크 건물은 이름을 여러 번 고쳤다. ‘이시가키 그랜드 호텔’이었다가 ‘치산 리조트 이시가키’로 간판을 바꿔 달더니, 지금은 ‘그랑뷰 이시가키’가 되어 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주인은 계속 바뀐 셈이다. 언제 또 이름을 갈더라도 이시가키란 지명만은 버리지 않을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건너 730 기념비를 끼고 돈다. 길 건너에 루트비어와 치즈버거를 맛볼 수 있는 A&W가 있다.
A&W는 1963년에 문을 연, 오키나와 최초의 패스트푸드점이다. 현지에서는 ‘엔다’라 줄여 부른다. 그 너머에 공설시장이 있다.
‘터미널 하우스’란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를 지나 왼쪽 골목으로 방향을 튼다. 미사키마치 상가번영회에서 세운 안내판 밑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다. 주점과 식당이 즐비한 골목에 오리온 글자가 박힌 등도 보인다. 이른 아침이라 셔터는 내려져 있다.
시청 건물을 돌아 횡단보도를 건넌다. 분식집 창에 붙여놓은 산뜻한 컬러의 시트지가 눈길을 끈다.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 돈가스, 커피…. 이 가게에선 뭘 먹어도 열대과일의 산뜻한 맛이 날 것 같다.
시트지에 자석처럼 이끌려 골목으로 들어간다. 마당에 차가 있는 2층 양옥도 있고, 다케토미 마을에서 본 전통 가옥도 있다. 1층 주차장을 유난히 높게 띄워 필로티처럼 보이는 주택도 있고, 가림막을 치고 공사 중인 빌라도 있다.
담 앞에 빛바랜 소화전 표지가 달려 있다. PAUL ANGIE라는 레스토랑은 그 길 근처에 있다. 지붕의 붉은 기와를 보니 전통 가옥을 개조한 식당이다. 정확한 위치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시가키 시청에서 이시가키 소학교로 이어지는 골목의 어디쯤이라고 해두자.
나무 간판의 물고기 그림 위에 PAUL ANGIE란 이름이 씌어 있다. 눈길이 가는 곳은 PAUL이 아니라 ANGIE다.
1985년에 〈Eat You Up〉이란 유로댄스 곡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한 여가수가 있다. 이름은 앤지 골드였다. 앤지 골드는 신디 로퍼처럼 유명세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Eat You Up〉으로 확 뜨고 나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이 곡은 훗날 양혜승이란 가수가 〈화려한 싱글〉로 번안해서 불렀다. 노래는 히트했지만, 과거의 앤지 골드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앤지, 하면 롤링 스톤스의 유명한 발라드 넘버를 빼놓을 수 없다. 믹 재거는 어깨에 힘을 빼고 이렇게 노래했다.
With no loving in our souls
and no money in our coats
You can’t say we’re satisfied
But Angie, Angie
you can’t say we never tried.
“우리 영혼에는 사랑도 없고, 수중에 가진 돈도 없어. 이런 삶에 만족한다고 할 순 없겠지. 하지만 앤지, 앤지, 우리가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
앤지와 이별을 앞둔 남자의 심정을 담은 노래다. 울음으로 지새운 그 밤을 지금도 기억한다는, 어디다 눈을 둬도 당신의 얼굴이 어른거린다는, 거짓이어도 좋을 그런 말들이 이별의 찬가가 되어 흐른다.
믹 재거가 애절하게 부른 천사[Angel]는 누구였을까?
데이비드 보위의 아내인 안젤라였다는 말도 있고,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키스 리차드가 곡이 완성될 즈음 태어난 딸인 안젤라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말도 있다. 약물 중독에 시달리던 키스 리차드가 모르핀을 앤지에 빗대었다는 설도 있다.
진실과는 무관하게 노래엔 힘이 있다.
PAUL ANGIE
어떤 사연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식당 주인에게 물으면, 의외로 싱거운 답변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제 이름이 폴 앤지인데요” 하는.
이런 대답보다는 “폴과 앤지가 운영하는 식당인데요” 하는 편이 더 낭만적으로 들린다. 두 사람이 무슨 사이인지 궁금해질 테니까.
레스토랑은 오전 11시에 문을 연다. 그래서 묻지 못했다.
폴 앤지의 구글맵 좌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시가키 시내에 닿으면 언제든 그곳을 찾아낼 자신이 있다. 내 몸이 그 길을 오롯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만 아는 그런 장소가 하나쯤 있어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만이 아는 장소, 당신만이 아는 이름, 당신만이 아는 노래….
이런 것들이 많을수록 삶은 더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