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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장 Jul 01. 2017

08. 뿔뿔이 흩어질 사람들의 행로

# 이시가키섬_ 이시가키 공항

야에야마 제도의 모든 바닷길은 이시가키로 통한다. 다케토미, 고하마, 이리오모테 할 것 없이 인근 낙도를 오가는 모든 배들이 이곳에서 출항한다. 답은 나와 있다. 오키나와의 낙도를 돌 여행자라면 일단 이곳에 닿아야 한다. 


이시가키 공항의 활주로는 짧다. 아니, 짧았다. 이게 과거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섬의 동쪽에 신공항이 문을 열면서 옛 공항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이시가키 공항은 활주로가 짧다. 바퀴가 지면에 닿자마자 브레이크가 걸린다. 아스팔트를 구르던 바퀴가 멈춰 서면 스키드 마크로 얼룩덜룩한 결들이 눈에 잡힌다.


통로가 한산해지자 몸을 일으킨다. 스튜어디스의 인사를 받고 스텝카의 계단을 내려선다. 미리 도착한 버스에 올라 에어컨 바람을 맞는다.


到着 ARRIVAL 



공항청사 입구에 달린 까만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고, 이내 후끈한 바람이 목덜미에 내려앉는다. 남국의 섬에 당도한 사실을 피부로 실감한다. 


청사는 작고 아담하다. 사람이 많은 데도 왁자하기보다는 조용하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도는 색색의 가방을 눈으로 쫓으며 뿔뿔이 흩어질 사람들의 행로를 상상한다. 


어떤 이는 리토터미널에 내려 낙도행 티켓을 손에 넣을 테고, 어떤 이는 택시에 올라 터미널하우스[Terminal House, 게스트하우스]나 야에야마소[八重山荘, 민숙]의 이름을 댈 것이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삼지창 로고가 붙은 흰 버스에 올라 클럽메드를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시가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닛코 야에야마 호텔에 체크인을 한다. 방 안에 짐을 풀고 두어 시간을 빈둥대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나선다. 


이시나기[いしなぎ, 돗돔]란 이름을 단 식당에 들러 소고기를 주문한다. 길 맞은편에 같은 이름의 정육점을 운영하는 곳이다. 숯 대신 가스 불을 쓸 뿐, 석쇠에 고기를 올려 굽는 야키니쿠의 풍경은 우리네 고깃집과 다를 게 없다. 


술은 두 가지로 간다. 오리온 맥주와 아와모리. 


아와모리[泡盛]는 태국에서 전래된 증류주다. 백미 대신 안남미를 쓰고, 검은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다. 한 번의 증류를 거쳐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데, 두면 둘수록 도수가 높아져 향과 풍미를 더한다. 5년이 넘으면 40도 전후의 쿠스[古酒]가 된다. 


빨간 핏물이 배어나온 고기를 얼른 뒤집는다. 미디엄레어로 구운 고기를, 분필가루 같은 하얀 소금에 찍어 입에 넣는다. 다들 말이 없다. 너른 들판에서 되새김질을 하는 까만 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방목의 여유가 선홍빛 살점에 마블링으로 남은 것이 분명하다.



아와모리는 물을 타고 얼음을 넣어 미즈와리로 즐긴다. 일상의 리듬대로 소주를 입에 털어 넣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한순간에 취기가 오른다. 그래도 인간에게는 귀소본능이 있어 기억을 놓기 전에 호텔방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눈이 말똥말똥한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자카야 앞에 걸음을 멈춘다. 양상추를 수북이 쌓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해물샐러드를 앞에 두고 맥주잔을 부딪는다. 이시가키의 첫날밤이 그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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