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경험을 한 지도 벌써 7년이 지났어요. 그 놀라운 경험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글을 썼죠. 시작은 '시크릿 카페'에 올린 경험담이었어요. 예상 밖 조회수가 나오면서 '혹시 나, 글 잘 쓰나?' 기분 좋은 의심이 들었어요. 그 의심은 계속 글을 쓰게 했고, 어느새 여기까지 왔답니다.
처음 글을 쓸 땐 꽤나 들떠 있었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램프라도 찾은 사람처럼요. '끌어당김의 법칙? 그거 이제 얼마든지 쓸 수 있어!' 하고 자신만만하던 때였죠.
그런데 8화에서 말씀드린 '반응과 선택 사이의 틈'을 지키며, 마음공부와 수양을 거듭하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됐어요. 끌어당김의 법칙은 어떤 신비한 '기술'이 아니라는 걸요.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훨씬 더 가깝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이걸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애씀 없이 이루는 삶"이에요. 내가 세운 삶의 의미를 평온한 마음과 일상의 몰입으로 채울 때, 목표가 자연스럽게 이뤄져 가는 삶이요.
이 과정에서 때론 설명하기 어려운 '동시성'이 일어나기도 해요. 내 생각이 현실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거죠. 이걸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동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요즘은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많더라고요. 하지만 양자역학조차 아직 원리를 밝혀내지 못한 영역이니, 동시성은 여전히 과학보다는 기분 좋은 '신비'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분명 존재하지만 규칙 없이 발현하는 신비요.
그래서 이제는 꽤 많은 분들이 끌어당김의 법칙(동시성) 발현을 경험하시는 것 같아요. 이건 정말 멋진 일이지만, 우리 인생은 길잖아요? 몇 가지 목표를 이루는 이벤트로 채우기엔 인생은 너무 길고 여백이 많아요.
때문에 아직 내 삶의 의미를 만들지 않았다면 목표가 이뤄진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에요. 10억이라는 목표를 이뤘다가 15억을 빚지는 경우도 봤거든요.
우리에겐 끌어당김의 법칙 이전에 내 삶의 의미를 세우는 게 필요해요. 삶의 의미가 '방향'이라면, 목표는 그 길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일뿐이거든요. 끌어당김의 법칙은 이정표에 잘 도착하도록 바람을 태워줄 뿐, 방향을 알려주진 않아요. 남이 정한 방향으로 열심히 끌어당기며 이정표에 도착하면 "여기가 아닌가?" 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죠. 그런 삶은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스스로를 고달프게 괴롭혀요.
'애씀 없는 삶'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 애쓰지 않는 데서 시작해요. 그저 삶의 과정을 거치며 본래의 나로 피어나도록 보살피는 거예요. 그럼 내가 채워야 할 삶의 의미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그 의미를 평온한 마음과 일상의 몰입으로 채우다 보면, 목표는 어느새 이뤄져 있어요. 삶은 그렇게 조금씩 더 충만해지고요.
이 삶에 필요한 건 특별한 기술이 아니에요. 나를 인정하고, 돌보고, 사랑하는 일.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내 집 마련보다 중요한 내면 마련을 위하여.
우리는 부서진 채로 고쳐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존재다.
_ 데비 포드
다음 화부터는 나로 돌아오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나에게서 멀어지며 상처받은 내면을 돌보며 나를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