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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gChiC 항식 Sep 20. 2024

이 여행, 어쩌다 시작됐을까..?

여행을 다짐하던 그날을 추억하며...

 2024년, 그토록 싫다던 첫 직장에서 어느새 10년이란 시간을 보낸 뒤의 책임 혹은 과장 즈음의 내가 있었다. 회사는 입사하기도 전부터 싫었고, 다니는 내내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참 많이도 겪었더랬다. 오히려 근래에 와서는 회사 생활에서 작은 위로나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있는, 이제는 여가시간으로 재충전이 힘들어진, 이미 다 지쳐버린 나의 모습이 근근이 나타날 정도였다.


 2월이 되자마자였을까, 나는 2014년 2월 7일에 입사하였는데, 이 시기에 맞춰 근태관리 시스템은 나를 비꼬듯이 격려하는 척의 안내로, 장기근속 10년을 축하한다며 그에 따라 휴가를 “무려” 4일이나 주신다는 것이었다. 시발. 진즉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저런 안내를 받으니 기가 차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 그 장기근속휴가 감사히 쓰겠다. 그리고 그 휴가는 이 여행의 시발점이 되고야 말았다.


  왜 미국이었을까? 사실 2024년 5월 1일 인천발 시애틀행 항공권은 정확히 1년 전인 2023년 5월의 내가 저지른 예매였다. 그때부터 퇴직을(현실은 휴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마음먹었거나, 퇴직을 못한다 한들 장기근속휴가로라도 미국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더구나 5년 전부터 나의 해외여행은 그간 차곡차곡 저금해 온 항공사 마일리지를 기깔나게 쓰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미국행 비즈니스 좌석은 눈에 띄면 일단 잡고 봤어야만 했다. 예매를 진행하던 시점, 나의 목적지는 오레건주 포틀랜드.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처럼 취급받았던 그 도시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 이미 예닐곱 해 전이었고, 매해 맥주에 관해 관심이 쌓여갈수록 포틀랜드를 찾아가는 것은 나의 버킷리스트에서 점차 선명해져 갔다. 그렇게 묵혀온 숙원을 해결해 보고자 포틀랜드와 그나마 가까운 시애틀로 가는 항공권 예매는 자연스러운 절차였으리라. 비즈니스 클래스도 타고, 현지에서 크래프트맥주도 마음껏 마시고! 아마 그 정도가 예매 버튼을 누르던 나의 섣부른 기대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출발하기도 1년 전 과감하게 예매한 항공권은 당초 5월 1일에 출국하여, 5월 12일에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적어도 2024년 2월 중순까진 그랬다, 귀국편의 무료 취소가 가능했던 그 시점까지는. 그러던 중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10년의 대기업 근속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과 다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나의 미래가 이곳에 있는가?’와 같은…


수많은 입사동기들이 이룬 그들만의 가정, 나에게는 그것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1인 가구로.

10년의 세월을 통해 터득했던 일과 여가의 완벽한 분리,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의 10년에도 점차 모호해지고 낮아질 것만 같은 그 분리의 벽.

동시에 전혀 떳떳하지 못한 채로 쳇바퀴 돌듯 매일을 살아내고만 있을 것 같은,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미래.


 이러한 답변들은 이곳을 도망할 충분한 근거가 되어주었고, 이는 결국 내가 떠날 장기근속휴가를 돌아오지 않을 긴 여행으로 전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원군이 되었다. 그 마음과 함께 2월 중순 평일 어느 날의 오후 업무시간 중, 귀국 편 시애틀발 인천행 항공권을 기어이 취소하고야 만다.


 그날 하늘은 봄을 기다리는 늦은 겨울이었지만 쾌청함 속에 공기는 맑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내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때. 두근거리고도 홀가분해진 마음을 함께 하며… 그때부턴 그렇게 5월의 첫날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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