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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gChiC 항식 Nov 17. 2024

여행을 기다리고 준비했던 시간들

 본격적으로 여행을 기다리는 시간이 곧 근무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24년 2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의 기간. 두어 달 정도의 그 시간 중에는 미미하지만 하나씩 작은 계획을 다짐하면서도, 완성될 큰 그림은 전혀 예상할 수 없던 내가 있었다.


각종 해외 페스티벌 영상 찾아보며 현장 분위기 익히기,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보면서 시애틀과 뉴욕의 정취 미리 느껴보기,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페스티벌의 출연자 라인업 보며 괜스레 설레기,

페스티벌 혼자 가는 미국인들의 고민걱정 둘러보기(이때부터 ‘레딧’이라는 어플의 영향과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동네 저 동네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며 미국 서부와 동부, 그리고 캐나다를 소개하는 가이드북 훑어보기(하지만 단 한 권도 사지 않았지) 등,

코첼라밸리 뮤직앤아트 페스티벌 2024 영상의 일부. 좌측부터 존 바티스트, 르쎄라핌, 뱀파이어 위켄드
좌측부터 J 발빈 무대에 함께 하는 윌 스미스, 음반기획사 88라이징 무대 중 일본의 요아소비, 한국의 드렁큰타이거와 윤미래
사브리나 카펜터 무대에 깜짝 출연한 노라 존스
톰 행크스, 멕 라이언 주연의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미국 시애틀과 뉴욕을 주 배경으로 삼는다.
(좌) 토론형 소셜미디어 레딧을 통해 페스티벌에 혼자 가는 것을 함께 고민해주는 모습, (우) 중고서점에서 찾은 가이드북

무언가를 줄줄이 나열해 놓았지만, 결국은 아무런 계획 하나 세워지지 않고 갖가지 혼자만의 설레발만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내가 으레 해왔던 ‘여행의 준비’였기에 걱정조차 없었다.


$233 상당의 살벌한 보틀락 페스티벌 1일권 주문

 아, 물론 티켓이 매진 날까 염려스러워 가장 처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보틀락 페스티벌>의 일요일 입장권과 주차권을 예매하기도 했다. 1일권임에도 물가와 환율 탓에 3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티켓인 데다 7-8만 원 하는 주차요금마저 살벌해, 결제하는 순간에 얼마나 아까워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그리고 아마 이 시점부터 미국 물가에 대한 충격과 공포가 시작됐다).



 이 여행은 결국 따지고 보면 다니던 회사와 익숙했던 직장생활을 멀리하게 되는 모멘텀인데, 여행을 하게 될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짧지만은 않다고 느껴서였던걸까, 회사에서의 업무 인수인계만큼이나 소홀히 할 수 없던 것이 주변 사람들과 진득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대학교 동기들과 선후배들, 고등학교 동창들, 같은 취미로 삼삼오오 뭉치곤 했던 사회생활 속 친구들까지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또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할 작별인사를 직접 고하는 자리가 분명 필요하다 생각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나처럼 당분간 한국을 떠나 선교활동을 나서는 친구도 있었고, 이미 일찌감치 회사를 그만두고 머나먼 시골마을로 귀촌 생활을 이어가는 친구도 있었으며, 느지막한 30대 후반의 나이이지만 결혼 소식을 알리는 친구도, 과도했던 직장 내 스트레스로 큰 상처를 입어 병가를 시작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모두가 무난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들, 그 소중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가진 내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이런 다채로운 서사들 덕분에 그네들도 나의 변화와 다짐에 놀라움으로만 반응하진 않았으리라. 어느새 우리는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맞이할 변화를 이해하며 공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먼 길 떠날 여행자를 위해 충분한 심리적 준비물이 되어주었다. 타지에서도 지치고 힘들 때 사랑하는 이 친구들의 응원을 잊지 않기로, 또 이들을 응원하는 내 마음도 잊지 않고 지속하기로, 그렇게 굳은 마음을 먹었다.


 P.S. 아, 그러면서도 취미활동은 또 놓치지 않던 내가 있었지. BYOB(Bring Your Own Bottle: 모임의 각 구성원이 마시고 싶은 술병을 지참하는 형식) 와인시음회, 춘천 상상실현페스티벌. 언제나처럼 내가 사랑하는 일과 여가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부분, 그것이 또 이 여행의 성격을 내가 바라던 대로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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