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1 되자 공부가 하기 싫었다. 낯선 환경에서 유독 슬럼프에 빠지는 성격도 한몫을 했다. 학급 인원이 52명이었는데, 첫 시험에서 48등을 했다. 꼴찌에서 5등이었다. 처음 성적표를 받아 들고 허탈했지만 공부에 대한 자극은 되지 않았다. 성적이 발표되고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반에 복학생 한 명이 있었는데, 키도 크고 몸에 문신도 있었다. 모두 남아서 조용히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야, 48등 한 놈은 누구야, 일어나 봐!”
나는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순간이동을 하는 히어로가 나타나 나를 사라지게 했으면 했다. 그 녀석은 계속해서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나는 하는 수없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일어났다.
“내가 47등인데, 너도 어지간히 공부 안 한다. 다음 49등 일어나 봐!”
그는 꼴찌까지 차례로 일어나게 했다. 우리는 서로 누구인지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서로 눈이 맞주치자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 편하게 어울렸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나 경쟁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 이름 대신 ‘48등’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고3 때에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2학년 때까지 꾸준하게 유지되던 성적이 중요한 시기에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몸이 자주 아파서인지 모든 것이 귀찮고 공부가 싫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서 부모님 몰래 놀러 다녔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 작은 책 한 권이 보였다.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창가에 있는 학생에게 교실 등을 끄라고 손짓했다. 불이 꺼지자, 두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눈을 감았다. 정적이 흐르고 선생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시를 느리게 읊으셨다.
청 춘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 빛 얼굴, 앵두 같은 입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정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었다. 눈을 감고 들어서인지 마음 깊이 울림이 있었다. 행이 끝나고 난 뒤, 선생님의 침묵은 시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삶에 찌들어 있던 감성들이 하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일 것이다.” 마지막 행은 긴 터널의 끝에 보이는 환한 불빛 같았다.
하지만, 아픈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몹시 아픈 날이었다. 그날도 목이 아파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고, 몸살 기운으로 이불속에 누워만 있을 때였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는 엄마 목소리에 친구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 목소리였다.
“요즈음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하던데, 괜찮니?”
“……”
“목이 아플 때는 따뜻한 콩나물 국에 고추 가루 넣어서 먹어봐라, 알았지?”
“네, 선생님”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평상시 선생님의 근엄한 목소리 대신 다정하고 친근했다. 그냥 안부 전화였는데, 나에겐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는 말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렇게 슈퍼히어로는 전화기를 통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나는 전화기를 끊고 나서 침묵하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 이후로 대학시험을 보기 전까지 한 번도 성적이 내려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