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불을 가진 슈퍼히어로

by 한빛

날개를 펼치고 싶은 마음에 더 큰 세상이 궁금해졌다. 부모님은 고향 떠나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럴수록 더 멀리 떠나고 싶었다. 집이 부유한 것도 아니었는데 서울에 가서 취업 공부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내가 처음 도착한 곳은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오랜 된 집을 구했다. 맨 위층의 옥탑방에 짐을 풀었다. 옥탑방 마당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은 볼수록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은 낯설고 외롭다는 느낌으로 변해갔다. 하루 종일 낯선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치고 힘들기만 했다.

‘서울 사람들은 항상 조심해야 해.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어.’

먼저 서울에서 생활했던 선배가 나에게 당부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낯선 사람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하나의 눈으로 살아가는 외눈박이처럼 내 자신이 느껴졌다. 나와 낯선 그들과의 거리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고, 그들을 두려운 존재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주말 오후, 영어학원에 가기 전에 서점에 들렀다. 서점 책장에 ‘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그 책 속의 제목이 ‘테디베어’였다.


미국 남부, 어떤 도시를 달리고 있는 화물차의 낡은 무전기에서 갑자기 한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가 사용하던 무전기로 소년은 “한 달 전에 눈이 엄청나게 오던 날, 트럭을 몰던 아빠는 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하면서 지금은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러 나가야 되고, 밤늦은 시간에 가끔 엄마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소년은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트럭기사는 볼륨을 높였다.


“평소에 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리가 불구인 저를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태우고 돌곤 하셨어요. 이제는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시는 큰 트럭을 타볼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트럭 아저씨가 혹시 이 근처를 지나갈 때 무전기로 연락을 주세요. 엄마는 이제 더 이상 트럭을 탈 수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저는 이 무전기가 아저씨와 연결시켜 줄 거라고 믿어요.”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어왔다.

“어린 무전기 친구, 너의 집이 어딘지 말해 줄 수 있니?”


그는 급송 화물이 있음에도 곧장 트럭을 돌려 아이가 일러 준 주소로 향했다. 집 근처에 도착해서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스무 대가 넘는 큰 트럭들이 소년의 집 앞 도로를 세 블록이나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위의 수 킬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트럭 운전기사들이 무전기를 통해 소년과 트럭 기사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곳에 있는 모든 기사들이 어린 소년의 얼굴에서 행복을 보게 되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트럭 운전기사들은 차례로 아이를 태우고 난 뒤,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떠났다. 그가 고속도로에 올라서면서 무전기를 트는 순간, 또 다른 놀라움이 찾아왔다. 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트럭 운전사 아저씨들, 여기 테디 베어의 엄마가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들 모두를 위해 우리가 특별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어린 아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으니까요. 제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이 무전을 마쳐야겠군요. 신께서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중에서 ‘테디베어’ -


순간, 허리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기가 흐린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구나, 누군가 항상 곁에 있었구나!'


나는 잠시 서점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제일 첫 번째 눈이 마주치는 사람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책 제목이 말하는 ‘마음의 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문이었다. 서점을 나온 나는 영어 수업에 들어갔다. 미국인 영어 선생님은 늘 같은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How are you today?(오늘 어땠어요?)”


이전 수업에서는 항상 “I’m fine, and you”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날은 “Fantastic!”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평소에 조용히 앉아 있던 나에게 ‘Fantastic’ 한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떠듬떠듬 영어로 말했다. 선생님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슈퍼히어로였을까?


“Beautiful story!”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따뜻했다.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소년이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를 찾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었듯이 나 또한, 소년의 이야기를 읽고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는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비밀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라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나를 보면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그리고 나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당신의 웃음은 천만 불짜리 미소입니다”


라고 칭찬해 주었다. 늘 시무룩하고 어두운 표정이었는데, 그녀는 내 웃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주었다. 그녀는 나를 '천만 불을 가진 슈퍼히어로'로 만들어주었다.

이전 03화날개를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