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류원은 그 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었다. 일본 장교 후지사키는 칼을 뽑아 들고 2층 양웨이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목숨을 끊었다. 비록 그의 칼이 그녀의 목숨은 끊을 수 있을지라도 숭고한 죽음까지 가져가지 못했다. 양웨이는 죽기 전 류원을 찾아갔다. 그녀는 류원에게 자신의 목걸이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목걸이가 널 지켜줄 거야"
양웨이의 죽음은 류원의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
다카히로는 일본군 '위안부' 건물에 도착했다. 일본군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건물 입구에 붙은 '위안부' 여자 사진을 보면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이, 다카시! 오늘 길거리에서 재미보고 또 온 거야!"
"오늘 새로 들어온 여자들이 있다고 해서 왔어."
"다카시! 어제 후지사키 장교가 '위안부'여자를 죽인 사건 알고 있어?"
"나도 들었어, 2층에 나병 걸린 여자를 죽인 거잖아. 그리고 피 묻은 몸으로 계단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졌다고 하던데, 목이 부러졌다고 들었어."
"불쌍하군, 이번에 천황 폐하에게 큰 훈장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고 하던데 말이야. 안됐어."
"오늘은 어떤 방으로 갈 거야?"
"11번 방에 어제 들어온 처녀가 있다고 들었어."
다카히로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본군 중에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는 우물가에서 류원의 엄마를 죽인 일본군이었다. 다카히로는 그놈의 웃음과 살기 가득한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카히로는 총자루를 움켜쥐고 그의 얼굴에 총칼을 꽂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다카히로는 손에 힘을 빼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그는 처음 우물 속에 빠졌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이를 가진 몸으로 딸을 지켜려고 했던 엄마의 죽음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2층 창문이 열린 방에 눈길이 갔다. 그곳에 류원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건물 앞에 걸린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류원의 사진을 찾았다. 11번 방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건물 내부를 둘러보았다. 건물 후문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확인했다.
"장교라도 표를 끊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매표소 직원이 말했다. 장교복을 입은 다카히로는 능숙한 일본말로 말했다.
"병사들이 불편한 건 없는지 점검하러 왔어."
"네, 알겠습니다."
그는 계단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2층 복도 앞에서 멈춰 선 그는 문득 ‘11’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보이지 않은 힘에 이끌려 그는 11번 방문 앞에 섰다.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방에는 이미 누군가가 들어와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내가 있는 거 안 보여."
다카히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카히로는 일본군 다리 아래에 겁에 질린 여자 아이 얼굴을 보았다. 류원이었다. 다카히로는 개머리판으로 그의 이마를 내리쳤다. 그는 벽에 부딪친 뒤 쓰러졌다. 이마에서 터진 피는 눈 아래로 흘러내렸다.
"아... 누구야, 넌?"
다카히로는 피 흘리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오래전 사진 속에서 보았던 낯익은 얼굴이었다. 류원은 벗겨진 옷을 챙기고 다카히로의 뒤로 붙어 섰다. 다카히로는 그의 목에 총검을 겨눈 채 말했다.
"당신 이름이 뭐야!"
"다카시"
다카히로는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총을 떨어뜨릴 뻔했다. 다카히로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고향이 지바현 아비코시입니까?"
"네가 어떻게 내 고향을.....?"
다카히로는 총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주저앉았다. 일본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카히로의 목을 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류원은 일본군의 살기에 찬 얼굴을 그제야 알아보았다. 눈 앞에 일본군이 자신의 엄마를 죽인 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총검을 들고 다카히로 목을 조르고 있는 일본군의 등을 찔렀다. 일본군은 다카 히로 앞으로 쓰러졌다.
다카히로는 눈 앞에 쓰러진 일본군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쓰러져 신음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도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에게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고 서로의 얼굴은 햐얗게 질리고 말았다. 류원은 일본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타락한 인간에게 저주와 비극은 숙명이었다.
다카히로는 류원을 이불로 감쌌다. 그리고 류원을 안고 건물 후문으로 빠져나왔다. 다카히로는 류원과 함께 장천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위안보’ 건물에서 한참 벗어났을 때, 다카히로는 류원을 내려놓았다. 류원은 일본 군복을 입고 있는 다카히로가 낯설었다. 그가 두 번이나 자신을 구해주었지만 일본 군복을 입은 다카히로는 무서웠다. 두 사람은 떨어진 채 걸어갔다. 다카히로가 먼저 말했다.
“류원, 장천은 살아 있어. 지금 장천이 있는 병원으로 가는 거야.”
류원은 고맙다는 말을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넌 믿지 못하겠지만, 난 일본 사람이란다. 미래에서 온 일본 사람.”
류원은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난 가족에게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했단다. 그래서 길을 잃고 이 지옥의 세계로 빠진 것 같아. 지금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계속 미궁에서 헤매고 있었을 거야. 너를 만나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것 같아.”
류원은 계속해서 다카히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딸아이를 장애인으로 만든 것은 바로 나였어. 내 잘못을 숨기고 아내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어. 오히려 아이의 장애가 아내 때문이라고 말했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대신 딸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않는다고 술을 먹고 구박만 했어. 딸아이가 장애라는 것이 나는 부끄러웠어. 그래서 아이에게 단 한 번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어. 따뜻하게 아이의 손도 잡아주지 못한 나는 정말 나쁜 아빠였어.”
다카히로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렀다.
“이제야 죽은 아내의 마음을 알 것 같아. 혼자서 얼마나 힘들게 아이를 키웠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변병만 찾기 바빴어. 내 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주고 헌신한 아내에게 나는 평생 동안 모진 남편이었어.”
류원은 다카히로의 손을 잡아주었다.
다카히로는 조금 전에 ‘위안부’ 막사에서 만났던 나쁜 일본인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라는 끔찍한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구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류원은 ‘위안소’에서 다카히로가 총칼을 내려놓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류원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능욕했던 사람이 다카히로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류원의 감정은 복잡했다. 자신을 두 번이나 구해준 이 사람이 어쩌면 진짜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눈 앞에 난징 병원이 보였다. 병원에 도착한 다카히로는 장천을 찾았다. 장천은 병원 복도의 차가운 바닥에서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앉아 있었다. 장천을 발견한 류원은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류원은 장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저씨,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다카히로는 장천과 류원의 모습을 한참 동안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변의 중국인들과 미국인 의사는 일본군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듯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 정문에서부터 다카히로를 쫓아온 중국인 한 명이 있었다. 그의 팔에는 일본 국기가 새겨진 완장을 차고 있었다. 그는 능숙한 일본말로 다카히로에게 말했다.
“장교님, 여기엔 쓸만한 처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르기만 하시면 저녁에 제가 당신에게 데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카히로는 분노가 치밀어 그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쳤다. 그리고 칼을 꺼내 그의 목에 가져갔다.
“정신 차리시오. 여기 있는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소. 당신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오.”
다카히로는 팔에 있는 완장을 칼로 찢으며 말했다.
“앞으로 걸어 나가시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치시오. ‘나의 나라는 중국입니다. 나는 더 이상 부끄럽게 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걸어 나가시오.”
그는 겁에 질린 채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다카히로의 말대로 그는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말했다.
“나의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나는 더 이상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중국인들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서슬이 퍼런 눈빛으로 그의 몸을 찔러 버릴 것 같았다. 그 서늘한 눈빛 때문에 그는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걸어가는 중국인에게 다카히로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더 크게 외치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총으로 쏠 것이오”
그는 정문까지 소리치면서 마지못해 걸어갔다. 중국사람들은 소리를 죽이며 눈빛으로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쫓아갔다. 마치 그의 영혼을 삼킬 것만 같았다. 정문 앞에 서 있는 일본군과 눈이 마주친 중국인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 일본군은 완장이 없는 그를 향해 총을 겨냥했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카히로는 류원과 장천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류원은 주머니에서 '위안소'에서 자신을 위해 희생한 양웨이의 목걸이를 꺼냈다. 그리고, 다카히로 목에 걸어주면서 말했다.
"이 목걸이가 당신의 잃어버린 길을 찾아줄 거예요."
다카히로는 두 사람을 남겨두고 천천히 병원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곳을 벗어날지 알 것 같았다. 우물이 있던 곳으로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