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태도 03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뭘 파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출근하고, 시키는 일을 하고, 퇴근했다. 월급은 그 시간에 대한 대가라고 여겼다. 9시에 자리에 앉아 6시에 일어나는 것. 그게 계약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일이 재미없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시간을 팔고 돈을 받는 거니까. 재미는 부가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팀 동료가 나보다 훨씬 여유롭게 일하면서도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걸 보았다. 야근도 적고, 티도 내지 않는데, 뭔가 다른 사람 취급을 받았다. 처음엔 그냥 요령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그 사람은 시간을 파는 게 아니었다. 결과를, 판단을, 관점을 팔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불편한 질문과 마주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팔고 있는가.
시간을 판다는 건, 내 존재를 시계로 환산하는 일이다.
몇 시간을 일했느냐가 곧 나의 가치가 된다. 그러니 더 많이 받으려면 더 오래 일하거나, 더 높은 시급을 협상하는 수밖에 없다. 구조 자체가 노동의 양에 묶여 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소진되고, 소진되면 더 이상 팔 시간이 줄어든다. 어딘가 이상한 구조다.
반면 가치를 판다는 건 다르다. 여기서 가치란 거창한 게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판단을 내리는 경험, 남들보다 빠르게 본질을 짚는 감각. 이런 것들은 시간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한 시간 안에 해결한 일이라도, 그 판단 하나가 수십 시간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그 가치는 시간과 무관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인이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시간당 얼마로 견적을 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었어. 내가 빨리 잘할수록 손해였으니까."
그래서 그는 기준을 바꿨다. 시간이 아니라 결과물의 가치로. 그러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버는 돈이 달라졌고, 더 중요하게는 —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더 잘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잘할수록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이건 직장인에게도 다르지 않다.
회사가 월급을 주는 건 시간을 채워달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오래 다니는 사람, 인정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그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판단하고, 정리하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 그게 가치를 파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팔고 있는지 알아야, 값을 매길 수 있다. 그리고 값을 제대로 받으려면, 먼저 내가 파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 시간 안에 무엇을 담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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