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름과 콘셉트를 5번 바꾼 결과

PART 1. 시작의 실패 04

by 행간 HanggaN

한 블로그의 역사를 기억한다.


처음엔 경제 블로그였다. 재테크가 뜨던 시절이었고, 나도 뭔가 도움이 되는 정보를 나눠보고 싶었다. 블로그 이름도 경제 콘셉트에 맞게 지었다. 그런데 글 몇 편을 쓰고 나니 막혔다. 경제를 깊이 아는 것도 아니었고, 매번 공부해서 쓰는 게 생각보다 버거웠다.


그래서 주제를 사회 이슈로 틀었다. 이름도 바꿨다. 시사적인 글을 쓰면 공유도 잘 되고 유입도 늘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건 더 힘들었다. 매일 뉴스를 읽고 내 의견을 정리하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숙제처럼 느껴졌다.


다음엔 출산과 육아로 방향을 바꿨다. 주변에 육아 블로그로 수익을 내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름도 다시 바꿨다. 육아 콘텐츠는 검색 유입이 꾸준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었다. 하지만 당장 육아 중인 것도 아니었고, 쓸수록 공허했다.


마지막엔 그냥 일상 블로그로 내려앉았다. 이름도 아무 의미 없이 지었다. 더 이상 뭐가 좋은지 감이 없었다.

그 블로그는 주제를 네 번 바꾸고 이름을 다섯 번 고치는 동안 글을 열두 편 올렸다. 그리고 사라졌다.


이름을 바꾸는 건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방향이 바뀌었다거나, 타깃 독자를 다시 설정했다거나, 처음 이름이 검색에 불리하다거나.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유는 하나였다. 블로그가 잘 안 되는 것 같으니까 뭔가를 바꾸고 싶었다.


이름을 바꾸는 건 가장 쉬운 변화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설정 페이지에 들어가서 몇 글자 고치면 끝이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좋았다.


문제는 그 느낌이 진짜 변화가 아니라는 거다.


블로그 이름을 바꾼 날, 나는 항상 조금 설렜다.


새 이름을 정하고, 소개 글을 다시 쓰고, 카테고리를 재정비했다. 마치 새 블로그를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날은 글도 한 편 썼다. 새 출발을 알리는 글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는 달라진 게 없었다. 이름이 바뀌어도 글감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콘셉트를 다듬어도 쓰는 습관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설렘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또 이름이 문제인가 싶어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콘셉트를 자주 바꾸는 데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처음엔 직장인 일상을 쓰다가, 어느 날 재테크 블로그가 뜨는 걸 보고 방향을 틀었다. 재테크를 한 달쯤 쓰다가, 이번엔 자기계발 콘텐츠가 눈에 들어왔다. 유행하는 콘텐츠를 쫓아서 콘셉트를 바꿨다. 그때마다 이전에 쌓아둔 글들은 어색해졌다. 새 방향과 맞지 않으니 지우거나 숨겨야 했다.


쌓이는 게 없었다. 계속 리셋이었다.


독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내 블로그를 발견해서 이웃을 맺은 사람이 있었다 해도, 한 달 뒤에 들어왔을 때 전혀 다른 블로그가 되어 있으면 그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 신뢰는 일관성에서 온다. 일관성 없는 블로그는 독자에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못한다.


그때 내가 진짜 바꿔야 했던 건 이름이 아니었다.


이름을 바꾸고 싶어질 때, 그 충동의 정체는 대부분 불안이다. 잘 안 되는 것 같은 불안,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불안,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다는 불안. 그 불안을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다.


하지만 불안은 이름을 바꾼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쌓이는 것들이 생길 때, 그리고 그 쌓임이 눈에 보일 때 비로소 조금씩 옅어진다.


리셋은 쌓임을 지운다. 리셋을 반복하면 영원히 초보 블로거다.


블로그 이름을 몇 번이나 바꿔봤다면, 그리고 그때마다 나아진 게 없었다면, 이제 이름 말고 다른 걸 바꿔볼 때다.


쓰는 시간을 바꾸거나, 글의 길이를 바꾸거나,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바꾸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꿔야 한다. 그게 훨씬 어렵고, 훨씬 효과적이다.


이름은 그냥 두어라. 블로그의 정체성은 이름에서 오지 않는다. 꾸준히 쌓인 글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