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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간읽기 Feb 10. 2017

[좋은비] 문재인의 '우리'에 대하여

2017. 2. 10. by 좋은비




문재인의 '우리'에 대하여
by 좋은비

대선 후보 2위 주자였던 반기문 씨가 대선 출마를 포기한 2월 1일. JTBC 뉴스룸 말미에 <비하인드 뉴스>에서는 ‘어대문’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다.” 그렇다. 반기문 씨까지 대선 레이스를 포기한 지금,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문재인 씨다. 


한 때, 문재인 씨를 ‘고구마’에 비유하는 것이 화제였다. 탄핵 정국에서 시원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며 지지율을 한껏 끌어올렸던 이재명 씨와 비교되어, 그의 신중하고 무거운 발언에 대한 대중의 시각이 반영된 단어였다. 


그것이 문재인 씨의 말이었고, 문재인 씨의 문장이었다. 지나치게 사람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법 없이, 차분하면서도 은근한 따스함이 묻어있었다. 소탈한 행동만큼이나 정갈하고 담백한 문장들이었다. 들끓는 대중의 정서와 공명하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큰 실수 없이 우직했고 한결같았다. 꽤나 오랜 시간 그런 그를 지켜본 국민들은 이제 그에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문재인 씨의 말에서 아쉬운 점들을 발견한다.


설 직전,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같은 당의 안희정 씨와 이재명 씨에 대한 문재인 씨의 반응이다. 치열하게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경쟁할 상대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앞서가는 후보로서 여유롭고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추격하는 후보에게는 네거티브가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지만, 리딩하고 있는 후보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문재인 씨에 대한 네거티브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은 다른 민주당 후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대중들은 그들끼리의 진흙탕 싸움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장에서 걸리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우리’라는 단어이다. 


“후보가 누구든 우리는 이긴다.”

“누가 후보가 되든 우리가 이깁니다.”


문재인 후보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 입장과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굳건한 지지층만큼이나 단단한 그의 반대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이지경이 되었는데도 그의 지지율이 30% 초반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이유, 전통적인 야당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 국민의 당에게 지지율을 빼앗기고 있는 이유. ‘아무리 그래도 문재인만큼은 안 된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문재인 씨가 걸어온 그간의 행보는 보면, 그는 본인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세력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타협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기존 한국 정치의 문법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간의 정치 지형 속에서 끈질기게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온 세력들은 그런 문재인 씨를 지독히도 싫어했다. 그래서 본인들과 타협하지 않은 그에게 ‘독선’, ‘패권주의’의 이미지를 씌웠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의 기득권 정치인들은 문재인의 이러한 이미지에 지역주의를 덧씌워 본인의 자리를 지켜냈다. 결국 이런 선전이 먹힌 것이다.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서 문재인 씨가 지금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바로 이렇게 등을 돌린 반대자들을 끌어안는 일이다. 국민 대통합, 99%의 대한민국, 이런 허울뿐인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표를 던져줄, 그만큼의 국민들의 마음을 돌려놔야 한다. 


그렇기에 문재인 씨에게는 ‘우리’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을 상정하게 된다. 비록 문재인 씨가 생각하는 ‘남’은 국정 농단을 야기한 부패세력에 한한다 하더라도, 지금 이 땅에는 스스로를 문재인의 ‘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경계는 흩어져야 한다. 지금의 반대자들을 적극적인 지지층으로 포섭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경계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 그나마 지금의 이 혼란과 위기를 극복할 적임자는 문재인 씨뿐이라고 생각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서 문재인 씨를 찍어줄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의 ‘우리’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후보가 누구든 촛불이 이긴다.” 

“후보가 누구든 민주주의가 이긴다.” 

“후보가 누구든 정의가 이긴다.”

“후보가 누구든 진실이 이긴다.”

“후보가 누구든 국민이 이긴다.”


by 좋은비

hapyboy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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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참여하게 된 필진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화두를 삶의 가장 큰 질문으로 삼고 살고 있습니다. 정치, 연예, 스포츠 등 분야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말, 사람들의 문장을 수집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뒤집어보고, 과거와 비교하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헤치고,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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