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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간읽기 Mar 02. 2017

[누들] 이랑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팔았다

2017. 3. 2. by 누들




이랑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팔았다
by 누들

1. 이슈 들어가기

지난 28일, 제 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지난해 ‘신의 놀이'라는 앨범을 낸 가수 이랑은 이날 최우수 포크 노래 상을 수상했는데요. 아주 흥미롭게도, 그녀는 이날 트로피를 받자마자 즉석에서 경매를 진행해 이를 50만 원에 팔아버렸습니다. 아티스트의 어려움을 알리는 하나의 퍼포먼스다, 아무리 그래도 무례했다, 등의 평가가 오갔죠. 하지만 대체로 그녀가 이 트로피를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입니다. 바로 왜곡된 음원 수익 배분 구조 때문이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2. 이슈 디테일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가수 이랑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무대에서 자신의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이랑은 28일 저녁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뒤 무대에서 즉석 경매를 실시, 트로피를 50만원에 팔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친구가 돈과 명예와 재미 세 가지 중 두 가지 이상 충족되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했다"며 "오늘 이 시상식은 두 가지 이상 충족이 안 되더라. 명예는 충족됐는데 재미는 없고 상금을 안 줘서 돈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1월에 전체 수입이 42만원이더라. 2월에는 감사하게 96만원이었다"면서 "어렵게 아티스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상금을 주면 감사하겠는데 상금이 없어서 이걸 팔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주목받았다. 트로피의 디자인을 소개한 그가 "월세가 50만원인데 50만원부터 경매를 시작하겠다"고 하자 한 관객이 손을 들었고 즉석에서 현찰로 거래됐다. 이랑은 "저는 오늘 명예와 돈을 얻어서 돌아가게 됐다. 다들 잘 먹고 잘사시라"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170301/한국경제신문] 가수 이랑, 시상식 무대서 수상트로피 경매 “월세가 50만원이라‥”


누들 : 아아, 좋은 건 영상으로 봐야죠.



대체 왜?

누들 : 이랑은 시상식이 있기 전 본인의 트위터에 아티스트로 버는 수입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는데요. 저도 약간 충격을 받긴 했습니다. 인디뮤지션이긴 하지만 ‘신의 놀이'로 이미 평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고, 다양한 공연이나 강연도 다니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게다가 이것이 음원 수익만을 말한 게 아니라 ‘전체' 수익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문제는 문제입니다. 

출처 : 이랑의 트위터


왜곡되어도 너무 왜곡된 음원시장

실제로 인디 뮤지션들은 고정 수입이 없어 먹고 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12년 시행된 '청년뮤지션 생활 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인디 뮤지션들의 월 고정 수입은 평균 69만 원이다. 음악 활동을 제외한 순수 경제활동에 40시간 이상을 쓰는 응답자도 22%에 달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비정상적인 음원 유통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당시 '바른 음원 협동 조합'을 알리는 자리에선 음악 한 곡을 음원 사이트에 실시간 재생으로 들을 경우 음악 제작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3.6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 중에서도 제작사나 가수가 받는 돈은 1원에 가까운 것이다.

[170301/YTN] 트로피 수상하자마자 현금으로 바꾼 가수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법으로 정한 저작권료 분배 비율에 따르면 현재 저작권료 중 유통사에 할당되는 비율은 40%, 나머지 제작사 44%, 저작권자 10%, 실연자가 6%를 가져가는 구조다. 즉 노래 1곡에 대한 저작권료 7.2원 중 유통사가 2.89원을, 제작사가 3.16원을 챙겨가며 실제로 노래를 만든 당사자는 0.72원밖에 가져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음원을 부르는 가수는 말할 것도 없다. 설상 가상으로 음원을 유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 업체는 ‘묶음형 할인 상품’즉 다운로드 곡수와 월정액제 스트리밍(실시간 재생)을 묶어 판매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저작권료가 더욱 떨어진다. 가수나 제작자가 음원 가격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사가 월 정액제라는 방식으로 도매처분하는 등 불평등한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160113/이투데이] [음원전쟁 3파전] 유통사만 배불리는 국내 음원시장


누들 : 노래를 만든 당사자가 0.72원을 받는데, 세션을 도와주는 연주자나 코러스의 몫을 제하고 나면 실제 뮤지션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0.21원 정도로 노래 1곡당 5번 스트리밍을 해야 겨우 100원을 벌어요. 


유통사가 배급사를 겸하고 있는 산업구조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형적인 시스템이다. 멜론·지니·엠넷·벅스 등 대형 유통사는 음원 유통뿐만 아니라 배급도 같이 한다. 예를 들어 멜론이 배급과 유통에 나선 가수 A가 있다고 치자. 멜론 입장에선 A의 노래가 많이 다운로드되고 스트리밍될수록 수익이 커진다. 멜론의 홈페이지나 모바일 첫 화면에 ‘추천곡’으로 A의 노래를 올려놓는 것이 양심이나 상도덕에 어긋날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추천 한 번 해주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음원 산업 현실을 전혀 모를 때 나올 만한 소리다. 가수나 노래의 인기를 반영하는 실시간 차트의 경우 추천에 걸리느냐 아니냐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몇몇 제작사들은 “추천곡에 안 걸리면 음원 발매를 늦추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다. 사실 음원 수익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이는 대형 기획사도 마찬가지. 하지만 인기를 얻어야만 행사도 뛰고 캐릭터 상품도 만들고 광고도 찍고 방송에도 출연할 수 있다. 가수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가 차트이고 차트에 오르려면 추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조다.

[151223/한국경제매거진] 창작자 죽이고 유통사만 사는 음악 산업


나는 유명하지 않은 인디뮤지션이다. 내가 간간이 음악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돈을 벌 수 있는 본업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작사에 돌아가는 44%를 버리기 아까워 음반제작사를 차리고 사업자등록을 냈다. 곡 하나를 제작하는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만원은 든다. 집에서 녹음과 편곡을 하는데도 그렇다. 내가 낸 곡 중 하나는 한 달에 5천명이 들었던 적이 있었고 장르차트 150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때 내게 떨어진 돈은 5만원 정도였다.

[160626/블로터] 음원 유통사는 ‘애플의 갑질’ 논할 자격 있나



3. 필진 코멘트

같은 날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에서는 키라라의 'moves'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알바하면서 만든 곡, 혼자 작업실도 없이 노트북 하나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만든 노래’라고 소개하며,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수상소감을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유통사와 창작자 간 음원 수익 분배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좋은 음악을 하는 예술가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우리 대중문화가 대형 기획사 위주의 콘텐츠로만 가득 차게 된다면 너무 끔찍하지 않나요?


이랑의 이번 트로피 경매가 하나의 해프닝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밥 딜런처럼 노래로 시를 쓰는 음악가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by 누들

breezynod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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