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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간읽기 Mar 13. 2017

[좋은비] 탄핵 선고와 세월호

2017. 3. 13 by 좋은비




탄핵 선고와 세월호
by 좋은비


1. 이슈 들어가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파면이 선고되었습니다. 일부 언론들은 헌재의 선고 이후 대한민국이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상은 80%가 넘는 국민들이 헌재의 결정에 찬성하고 있고, 그 보다 많은 국민들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고 이후 반발심을 갖는 쪽은 일부 박 전 대통령 지지자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 탄핵 인용 소식에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또 한쪽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 들입니다(“왜 세월호만 안됩니까”... 선고 지켜본 가족들 ‘눈물’, JTBC, 2017.03.10).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의 행적이 파면의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헌재의 결정을 두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헌재의 선고문과 결정문을 통해, 과연 헌재가 세월호 사건과 대통령의 의무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이슈 디테일

좋은비 : 이번 선고에 관해 헌재가 작성한 문건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권한대행이 낭독한 선고문이고, 다른 하나는 A4용지 89쪽 분량의 헌재 결정문 전문입니다. 일단 선고문에서 세월호에 관해 재판관들이 판단한 부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다음 세월호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의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2014. 4. 16.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피청구인은 관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헌법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 준 참사라는 점에서 어떠한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


좋은비 :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쟁점인 헌법상 대통령의 의무는 두 가지입니다.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성실의 의무. 

생명권 보호의무에 대한 판결은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해당 의무가 추상적인 것은 맞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을 언급함으로써, 해당 헌법 조항의 해석을 지나치게 좁혀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등”을 붙여 어느 정도의 여지를 남겨두었지만, 추후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와 관련하여 또다시 판단할 일이 생겼을 때 이와 같은 판례를 따르게 된다면, 해당 의무로 인해 탄핵 사유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직책성실의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이미” 판단한 내용은, 이전까지 본 탄핵 심판의 유일한 판례라 할 수 있는 2004헌나1, 노무현 대통령 탄핵 판결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헌재로서는 이전 판례를 존중해야 하기에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결정이었으리라 봅니다. 당시 결정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의 취임선서의무를 규정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언급하고 있다. 비록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헌법적 의무에 해당하나,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와는 달리,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탄핵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로 제한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는 법적인 관점에서 단지 탄핵사유의 존부만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서 청구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2004년 5월 14일, 2004헌나1)


좋은비 :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주문 이후 낭독된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 의견”입니다.


이 결정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고, 다만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좋은비 : 위에서 살펴본 결정문과 달라진 부분은 딱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위 결정문에서는 성실의무는 추상적이어서 탄핵소추를 하기 어렵다고만 했지,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에는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고,”라고 명시하여, 피청구인의 위반 사실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장의 결론을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로 끝내는 바람에 전체적인 뉘앙스나 결론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선고문 낭독 당시에는 이 짧은 한 단락의 내용 만을 위해 왜 굳이 보충의견까지 넣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궁금증은 헌재 결정문 전문에서 해당 부분을 읽고 나서야 풀렸습니다. 선고문에 딱 한 단락으로 끝났던 것과 달리, 헌재 결정문 전문에는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 의견이 17페이지에 달합니다. 전체가 89페이지인 것을 감안하면 단 한 가지 소추 사유에 대한 보충 의견 치고는 상당히 많은 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충의견은 다시 한번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이 탄핵 사유가 되는지 따져보면서 시작됩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고 하면서,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그러나 직책수행의 성실성에 관한 추상적 판단에 그치지 않고,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대통 령에게 성실한 직책수행의무가 구체적으로 부여되는 경우에 그 의무 위반은 헌법 또 는 법률 위반이 되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탄핵 사유를 구성한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P.58)


좋은비 : 그리고 세월호 사건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대응에 대해 인정하는 사실을 열거하고, 불성실한 직무수행의 존재가 있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면서, 당시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지적합니다.

    

피청구인은 09:40경, 늦어도 10:00경에는 세월호 사건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인지 하였거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다면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5:00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P.68)

(중략)

이상과 같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초래되어 대규모 피해가 생기거 나 예견되는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상황의 중대성 및 급박성 등을 고려 할 때 그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은 현저하게 불성실하였다. 피청구인은 최상위 단 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되었고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였음에도 재난 상황을 해결하 려는 의지나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여야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발생하였음에도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 으므로, 헌법 제69조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따라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부여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P.73)


좋은비 : 그리고 내린 결론. 이 결론은 반드시 전문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 결론 


어떠한 법위반이 있는 경우에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할 것인지는 파면결정을 통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 령의 법위반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지, 또는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해야 할 정도로 법위반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것인지를 판단하여 정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을 일반적 파면사유로 볼 경우 사소한 성실의무 위반도 파면사유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민주적 정당성과 헌정질서의 막중함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을 파면사유로 삼기 위하여는 그 위반이 당해 상황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하였거나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와 같은 중대한 성실의무 위반으로 한정함이 상당하다.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은 국가공무원법 상의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당해 상황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하였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위에서 살핀 것처럼 성실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하였지만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 거나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 가지고는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상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파면사유에 해당한다 고 볼 수 없다. 


앞으로도 국민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그 직책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 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우리는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P.73-74)


좋은비 :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이 내린 결론은, 결정문에서 읽힌 것과 순서가 상당히 다릅니다. 그들의 결론은, 탄핵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피청구인이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하였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헌정 역사에 남을 결정문에 담기 위해 17쪽에 달하는 의견을 개진한 것입니다. 마지막 문단에 법조문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과 같은 표현을 쓴 것은, 이 사건에 슬퍼하고 있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에 대해 그들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필진 코멘트

국회가 탄핵안을 발의할 때부터 세월호 사건을 넣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탄핵안을 발의한 의원들도 아마 2004헌나1 판결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세월호 사건을 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입법기관인 국회가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을 위로하는 방식이었고, 나아가 더 안전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 중 하나였습니다. 


사법기관인 헌법 재판소는 판례를 존중하고, 법리를 따지는 역할을 맡고 있기에 해당 사유를 탄핵 인용에 사유로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2명 재판관의 보충 의견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실제 세월호 사건과 국민의 안전을 지킬 직접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행정 기관입니다. 도대체 2014년 4월 16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에게 법적, 행정적 처분을 내리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책임은 결국 행정부에 있습니다. 


헌법 재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모든 아픔을 치유해 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한 사람 파면하자고 지금껏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민에게는 헌법 재판보다 더욱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행정부의 수반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선거입니다. 진정 세월호를 생각한다면, 이제 우리 손에 쥐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데 온 힘을 다 해야 합니다. 결국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은 8명의 헌법 재판관이 아닌, 유권자, 나 자신일 것입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대한민국의 새 지도자를 선출할 날이, 이제 90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by 좋은비

hapyboy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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