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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간읽기 Sep 18. 2017

[하랑] ‘특수학교’ vs ‘국립한방병원’

2017. 9. 18 by 하랑


‘특수학교’ vs ‘국립한방병원’  by 하랑

1. 이슈 들어가기 

최근 한 동영상이 온라인을 달궜습니다. 장애 학생 부모들이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무릎을 꿇고 호소한 영상이죠.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고 강당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주민 토론회’에서 있던 일입니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 측에선 특수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인터넷상에서 많은 사람은 특수학교에 반대한 주민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 논의가 있었던 이유는 특수학교 설립이 다른 지역에서 번번이 좌절됐기 때문입니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이슈 디테일

특수학교 부족: 서울시 특수학교 29곳뿐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강서구의 특수교육 대상자는 645명. 하지만 특수학교는 1곳(정원 100명)이다. 대상자 중 82명(12.7%)만 이 학교에 다닌다. 나머지는 대부분 구로구 등 다른 지역 특수학교로 원거리 통학을 한다. 특수학교 부족은 강서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 특수교육 대상자 1만2804명 중 특수학교(29곳)에 다니는 학생 수는 4457명(34.8%)에 불과하다. 25개 구 중 8곳에는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와 양천구의 교육 수요를 감안해 2013년 가양동 공진초교를 마곡지구로 이전한 뒤 정원 142명의 특수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근처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는 자치구가 8개나 되는데 왜 강서구에 두 개를 세우냐는 것이다. 

[동아일보/9월 9일] “때리면 맞을게요, 제발 특수학교만… ” 무릎꿇은 엄마의 호소


하랑 : 특수교육 대상자보다 특수학교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서울에 공립 특수학교가 설립된 지는 2002년 이후 한 곳도 없습니다. 지난 1일 문을 연 효정학교는 사립학교죠. 교육청은 특수학교의 필요성을 말하며 설립을 추진 중입니다. 한편, 강서구 주민들은 특수학교가 아예 없는 자치구도 있는데, 강서구에만 두 개나 세우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김성태 의원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특수학교 부지에 국립 한방병원을 세운다고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에, 주민의 반발이 더욱 거센 상황입니다. 국립 한방병원이 언급되기 시작한 배경부터 보겠습니다. 


국립한방병원?

한방병원 설립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15년 말부터다. 국회에서 병원 설립 연구용역을 위한 예산 2억원이 통과돼 보건복지부에 배정된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보건산업진흥원에 연구용역을 맡겨 사업 타당성을 검토했다. 유력 후보지인 옛 공진초 터를 비롯해 여러 곳이 물망에 오르는 사이 “국립한방병원이 설립된다”는 소문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 퍼졌다. 강서구가 지역구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한방병원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용역 뒤 사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복지부가 올 3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를 세울 예정이라는 입장을 통보받으며 병원 설립 논의를 아예 중단한 것이다. 김성태 의원은 1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학교 설립과 관련한 모든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이상 병원 설립을 추진할 힘이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9월 11일][단독] 특수학교 갈등, 시작은 2015년 국회 ‘한방병원’ 예산


하랑: 강서구 주민들은 국립 한방병원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병원이 생기면 주변 집값 상승도 예상되기 때문이겠죠. 지난 주민 토론회에서 특수학교 반대 측은 “한방 병원이 더 효율적이다”라고 간접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말의 핵심이 ‘집값’인 것은 모두가 유추할 수 있죠. 정리하면 한방병원은 집값을 올리고, 특수학교는 집값을 내린다는 전제가 깔린 겁니다. 만약 특수학교가 실제로 집값 하락 요인이 된다면 주민들의 반대도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겠죠. 한국 사회에선 집이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구가 상당수니까요. 그렇다면 이 전제가 과연 사실일까요? 


특수학교, 집값에 영향 없다

경향신문이 2006년 이후 서울과 전국 6개 광역시에서 개교한 특수학교 전수를 조사한 결과, 개교 전후 2년새 집값이 떨어진 곳은 1곳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이후 7곳 특별·광역시에서 개교한 특수학교는 서울 다원학교(2015년), 광주 선우학교(2013년), 대전 가원학교(2012년) 등 9곳이다. 서울 다원학교에서 약 200m 떨어진 주암아파트는 2013년 실거래가 평균 1억3000만원에서 올해 2억원으로 7000만원가량 뛰었다. 가원학교에서 400m가량 떨어진 느리울마을11단지 아파트는 매매가 평균이 2010년 1억7200만원에서 4년 만에 2억1934만원으로 올랐다. 

특수학교 건립 효과로 집값 오름세가 다른 지역에 비해 더디다면, 이 역시 반대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부산대학교가 수행한 이 연구는 전국 167개 특수학교 인접지역(1㎞ 이내)과 비인접지역(1~2㎞ 이내)를 구분해 집값을 따졌다. 연구결과 인접지역과 비인접지역간 의미있는 수준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고 오히려 특수학교 인접지역에서 가격이 오른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9월 14일]'장애인 특수학교' 주변 집값은 떨어졌다?···실거래가 확인해보니


하랑 : 특수학교는 집값 하락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향신문 외에도 비슷한 조사 결과를 다양한 언론사가 기획기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서구 주민들은 왜 특수학교가 집값을 떨어트릴 거라고 예상했던 걸까요?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 때문 아닐까요? 비단 강서구 주민들의 편견만은 아닙니다. 강서구에 특수학교 설립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는 타 지역의 강한 반발이 있으니까요. 실제로 특수학교 설립은 매번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강서구 주민들을 비판할 수만은 없는 겁니다. 반발하는 주민들에게 수용하라고 억압하기보단,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합니다. 주민이 심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학교가 설립되면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서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편견을 넘어 ‘윈윈’으로

서울 마포구 상암동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주민들이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던 것은 아니다. 2010년 마포구청과 푸르메재단이 병원 설립을 처음 결정한 뒤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여기선 "왜 우리 동네에 이런 병원을 지어야 하냐"는 반대 의견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병원은 병원에 들어선 편의시설도 주민을 위해 개방했다. 병원 내 수영장, 어린이도서관 등이 마포구민에게 개방되고 직업재활센터가 들어서는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됐다. 병원 로비는 여름철이면 어르신이 '무더위 쉼터'로 활용한다. 주민 벼룩시장을 여는 등 각종 행사와 공연도 병원 내에서 꾸준히 열린다. 설립 1년 반이 된 재활병원은 이처럼 주민 인식이 개선되고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만족하는 ‘윈윈’ 사례가 됐다. 그 덕분에 병원 운영도 큰 잡음없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특수학교인 '밀알학교'는 1997년 개교 전 인근 주민들이 통학버스 진입로를 막는 등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개교 후에 학교에서 체육관과 카페 등 내부 시설을 주민들과 공유하면서 '동네 사랑방'이 됐다. 11일 밀알학교 앞에서 만난 인근 아파트 주민 김모(61)씨는 "밀알학교에 커피를 마시러 종종 찾아간다. 장애 아동들이 다니는 학교라기보다는 우리 동네의 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중앙일보/9월11일]강서구 특수학교는 4년째 갈등 주민 설득·소통으로 님비 없는 푸르메재활병원


하랑 : 이 사례들처럼 주민과 특수시설이 윈윈 할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3. 필진 코멘트

강서구에서 있던 특수학교와 한방병원을 둘러싼 논란은 장애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보여줬습니다. 아직도 많은 개선이 필요하고, 편견을 없애는 노력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온라인에서는 강서구에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서명운동이 확산되며,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향후 5년간 특수학교 18개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호응이 뜨거운 건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언제 또 식을지 모릅니다. 강서구 외에도 문제 해결이 필요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반짝 여론’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by 하랑

tebah03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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