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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간읽기 Apr 05. 2016

택갈이만 문제가 아니다

[행간읽기] 2016. 04. 05. by 베이징팬다 

"택갈이만 문제가 아니다 :
당신도 명품 모조품을 1개 이상은 반드시 가지고 있다" by 베이징팬다

베이징팬다 : 택갈이 가지고 뉴스에 많이 나오지만 저는 사실 우리나라 의류 시장이 돌아가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뭐 일단 택갈이가 뭔 문제가 있는지부터 일단 볼까용?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예쁜 옷을 발견해 구매했는데 며칠 후 똑같은 상품이 다른 가게에서 훨씬 저렴하게 팔리는 것을 보면 어떨까. 소비자는 속은 기분이 들겠지만 쇼핑을 하다 보면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같은 의류에 상표나 가격표가 다르게 붙는 것을 업계에서는 일명 ‘택(Tag·태그)갈이’라고 한다. ‘택갈이 제품’과 ‘카피(복제)품’은 다르다. ‘택갈이’는 동일한 옷에 브랜드 라벨과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것이고, 복제품은 기존에 나온 디자인을 비슷하게 베껴 만든 유사품을 말한다. 의류업계에서는 ‘택갈이’와 카피품을 각각 ‘완전한 동일 제품’과 ‘모양만 비슷한 제품’으로 구분한다.

[주간동아/1월 6일자] 같은 옷 다른 가격 ‘택갈이’


새벽 1시, 활기가 넘치는 동대문 도매상가. 좁은 통로 양쪽으로, 옷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도매상들이 빽빽이 늘어섰습니다. 그런데 그중 여러 명이 자신이 파는 옷은 백화점 유명 매장에서도 같이 팔린다고 자랑하듯 이야기를 꺼냅니다.


[의류 도매상] "백화점 브랜드 들어가요. 한두 군데가 아니야. 이거는 엄청 많이 들어가요." (브랜드 어디 들어간 거예요?) "얘네는 00 들어갔고요. 얘네는 00."


백화점에 가봤습니다. 검정과 회색 천이 지그재그로 디자인된 원피스, 흰색 리본이 달린 긴 니트, 회색과 흰색, 하늘색이 섞인 앙고라 니트, 동대문에서 본 것과 비슷한 옷을 여러 벌 발견했습니다. 감쪽같이 잘 베낀 건지, 정말 같은 제품인지, 디자인과 소재, 재봉 기법 등을 꼼꼼히 따져 봤습니다. [이재길/한국의류산업협회 관리팀장] "부자재의 어떤 부착 방식이라든가 사용된 재질까지가 다 동일하기 때문에, 단일 제조자에 의한 생산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엄연히 같은 옷인데도 동대문에 있던 옷은 백화점 매장에 걸리며 값이 껑충 뛰었습니다. 도매가 2만 2천 원이던 원피스는 5배, 2만 6천 원짜리 앙고라 니트는 7배, 7천 원에 산 이 목도리는 12배가 넘는 가격표를 달았습니다.

[MBC/현장M출동] 의류업계 관행? 비싼 브랜드, 시장 옷 '라벨갈이'


100만 원대 코트 중에도 택갈이 제품이 있다?

다른 여성의류 도매업체 관계자는 “서울 보문동 신설동 등 동대문 인근 가내공장에 가면 1년 내내 택갈이 현장을 볼 수 있다”면서 “고급 매장의 100만 원대 코트 중에도 택갈이 제품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봄 신상품이 몰리는 2월에는 손이 모자랄 정도”라며 “일부 고가 브랜드는 택갈이 사실을 숨기려고 안감과 지퍼 등 부자재를 다른 것으로 살짝 바꿔 제작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택갈이를 통해 브랜드 라벨이 붙으면 가격은 적게는 3∼4배에서 많게는 10배 가까이 뛴다. 브랜드 매장에서 수십만 원대 코트를 2∼3개월만 지나도 ‘시즌오프 세일’이라며 반값에 팔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일보/2014년 2월 27일자] 소비자 등치는 ‘택갈이’ 판친다


동대문이 유행을 잘 따르다 보니 백화점 입점 브랜드도 동대문을 믿고 사는 걸까?

택갈이가 극심해진 것은 유행에 극도로 민감한 동대문 패션상가의 특성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계절보다 반년쯤 앞서 다음 계절 유행을 제시하면 이를 베껴 가장 먼저 국내에 선보이는 게 동대문 도매업계다. 동대문에 몰려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해외 브랜드 제품을 ‘카피’한 뒤 나름대로 재창작해 신상품을 선보인다. 이런 옷이 동대문 도매상점에 걸리면 국내 유명 브랜드에서 찾아와 택갈이 할 옷을 고른다는 것이다. 해당 도매상과 계약한 옷 공장에 “우리 브랜드에서 이번에 내놓을 테니 다른 도매상에 납품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국민일보/2014년 2월 27일자] 소비자 등치는 ‘택갈이’ 판친다


원산지도 속이는 ‘택갈이'

한 TV홈쇼핑 방송입니다. 여성 코트 물량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서둘러 구매하라고 자극합니다. [홈쇼핑 진행자] "추가 생산 못 하고, 오늘 놓치시면 앞으로 구매하실 수 있는 기회가 없으실 것 같아서…" 국내 의류 업체가 국내에서 만든 이 코트는 작년 12월 한 달 만에 홈쇼핑에서 8천 벌이 팔렸고, 실제로 물량이 달렸습니다. 그러자, 이 업체는 중국에서 생산해 들여온 코트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올해 8월까지 팔았습니다. 원산지가 '중국산'이라고 적힌 라벨을 떼낸 뒤, '대한민국'으로 표시된 라벨을 붙이는 이른바 '라벨 갈이'를 한 겁니다. 얼핏 봐선 디자인은 똑같고, 원단의 촉감과 단추 위치가 조금 다른 정도여서, TV를 보고 산 고객들은 전혀 중국산인 줄 몰랐습니다.

[MBC/2015년 12월 17일자]'택갈이?' 불티난 홈쇼핑 코트, 알고 보니 중국산


베이징팬다 : 한국의 보세 의류는 동남아나 중국 등에선 예쁘고 질 좋고 저렴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어디서든 “한국 스타일"이나 “한국제"이면 일단 믿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한국 동대문 의류는 디자이너의 창의적 창작 활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냥 명품 디자인을 조금 더 대중화시켜서 잘 베낀 옷들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로드숍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리는 옷들 중 기본 디자인의 심플한 옷을 제외하고는 명품 디자인을 카피해서 만든 옷들이 대부분입니다.  ‘루이뷔통 짝퉁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지적하기 시작하면 대한민국에서 ‘짝퉁’을 입고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로드숍, 백화점을 비롯해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옷은 전부 명품을 그대로 카피하거나, 응용해서 카피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줄여서 DVF라고도 부릅니다)의 트레이드마크인 랩 원피스입니다. 국내에선 연예인들이 몇 번 입고 나오면서 알려졌는데, 보통의 원피스처럼 다리부터 집어넣고 어깨까지 올린 뒤 뒤 지퍼를 잠그는 형식이 아니라, 포대기처럼 감싼 후 허리끈만으로 고정하는, 말 그대로 wrap(랩) 원피스입니다. 이 원피스의 여러 라인들이 그대로 카피, 혹은 응용하여 카피되어 보세 시장에 흔하게 나와 팔리고 있습니다. 명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게 DVF 카피 제품 인지도 전혀 모르겠지만, 사실 루이뷔통 짝퉁 가방을 사서 들고 다니나, 이 원피스를 보세숍에서 모르고 구입해서 입으나, 결과적으로 누군가 창작한 제품을 따라 만든 제품을 싸게 구입해 사용한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이 외에도 봄만 되면 각종 브랜드에서 신상으로 출시되는 ‘트위드 재킷'도 원조인 샤넬에서 디자인한 트위드 재킷의 모조품입니다.


트위드 :

비교적 굵은 양모를 사용하여 평직(平織) 또는 능직(綾織)으로 직물을 짠 다음, 축융(縮絨) ·기모(起毛) 등의 가공을 하여 표면에 거친 감촉을 나타낸 모직물 또는 유사한 모직물을 말한며 이 명칭은 원래 스코틀랜드 지방의 트위드 강변에서 제직 한 수방(手紡)의 방 모직이라는 설과 트윌(tweel), 즉 능직에서 변화된 명칭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 숍에서 ‘샤넬' 혹은 ‘명품 스타일' 등등의 키워드가 전혀 없이 팔리는 트위드 재킷들.


베이징팬다 : 유럽이나 미국에 가보면 우리 시각으로 볼 때 “옷 참 못 입는다" 할만한 사람들이 거리에 많은데요.. 우리나라 옷이 예쁘다 예쁘다 하지만 사실 제가 보기엔 유럽과 미국에선 우리나라 동대문처럼 명품 스타일을 카피해서 옷을 만드는 업체가 거의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보세 옷도 시즌마다 스타일이 새로 나오고 유행이 도는데, 그게 다 명품을 시류에 맞춰 철저하게 카피해서 파는 우리나라의 시스템 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제가 보기에 백화점 택갈이든 동대문 옷이든 어차피 디자이너의 창작 활동이라고 볼 수 없는 모조품들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 그래서 브랜드 보고 믿고 제품을 사기보다는 자신의 안목과 경험을 믿고 백화점이든 보세든 스스로 제품을 잘 골라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by 베이징팬다

layla.goes.f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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