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읽기] 2016. 04. 25. by 엠줴이
“일본 유통 업계의 큰 손 스즈키 도시후미, 박수 칠 때 떠난다?” by 엠줴이
1. 이슈들어가기
엠줴이 : 현 이슈를 들어가기에 앞서서 ‘재벌(財閥)’ 에 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재벌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기 보다는 그 ‘예’를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대기업 오너’ 가 아닌 ‘재벌’의 의미는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벌 : 여러 업종의 기업 집단(간단히 말해 문어발)이 한 사람(혹은 가문)의 지휘를 받는 체제
= 재벌가가 실질적 대주주이면서, 계열 회사에 대한 독점적 지배
쉽게 그 사례를 떠올릴 수 있는 우리와 달리 일본과 미국의 경우, 우리에 비해 먼저 일어난 산업화로 그 제동 장치가 자의와 타의에 의해서 일어 났습니다.
(한국의 경우 1997년 발생한 아시아 통화위기(일명 IMF당시)에 의해 재벌해체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이는 대우그룹에 한정된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반트러스트법 제정 후에 해체 되었으며, 일본의 경우엔 패전 후 ‘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 (이하 GHQ)’ 로 인해 점령 정책의 한 가지로 재벌의 해체가 일어났습니다. 일본 군국주의를 제도적으로 지원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해체하는 것이 군국주의를 근본적으로 괴멸 시킬 수 있다고 생각 한 것 이였습니다.
GHQ의 이에 대한 의사가 강했기 때문에 일본정부의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경우, 강압적으로 실시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미츠비시, 미쓰이를 포함한 4개 재벌에 대해서 협의를 하여 ‘야스다안건’으로 GHQ에게 이를 제출합니다. 안건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주식회사 소유의 유가증권 및 여러 기업에 대한 소유권, 관리, 이권을 가리키는 증빙을, 일본정부가 설치한 기관에 이관한다.
2. 상기의 이관재산에 대해서 변제는 10년간의 양도, 환가를 금지한 등록국채로 지불한다.
3. 미쓰이, 이와사키(미츠비시), 스이토모, 야스다 4가문구성원의 소유주식회사이사 및 감사역의 권한을 산업계에서 추방
4. 소유주는 산하기업에 대한 지령권, 관리권의 행사를 금지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위의 내용이 우리나라 재벌들에게 적용된다면 당사자들에게는 조금 아찔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과적으로 한국전쟁 발발로 인하여 재벌해체가 진행되는 와중에 다시 계열사 형태로 기업 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계열 : 사장 회를 중심으로 상호주식보유제도를 통해 연결되어있고 실질적 대주주는 없음.
더욱이 1997년 독점금지법의 개정으로 순수지주회사(持株会社=ホールディングカンパニー=holding company)의 설립을 용인하는 것으로 사실상 재벌 부활 허가의 움직임이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회사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롯데 홀딩스’, 그리고 오늘 얘기하게 될 ‘세븐&아이 홀딩스’ 또한 포함 되어있습니다.
이슈에 앞서 ‘재벌’에 대한 설명은, 작년에 있었던 ‘땅콩회항’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재벌 체제에 대해서 굉장히 낯선, 그리고 거부감을 나타냈었습니다. 일본에서 재벌 체제가 확립되기에는 아직 막 시작되는 단계(?)이기도 하기 때문에 재벌 총수에 대한 개념은 아직 존재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미츠비시 고산케라고 불리우는 미츠비시도쿄UFJ은행, 미츠비시 상사, 미츠비시 중공업 그리고 미츠비시 자동차, 니콘 등은 구 미츠비시 계열이지만, 상호 간의 지배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용 참고 : 나무위키 ‘재벌’ , 재팬위키 ‘재벌해체’, 재팬위키 ‘지주회사’
2. 이슈디테일
가. 스즈키 도시후미, 그가 누구인가?
엠줴이 : 우리나라에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일화가 샐러리맨들의 신화적 일화를 가지고 있다면, 일본에는 ‘스즈키 도시후미’가 있습니다.
스즈키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스즈키의 꿈은 기자였다. 그는 여러 언론사와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고, 1956년 대학 졸업 후 도쿄출판판매 홍보부 사원으로 들어갔다.
스즈키가 유통업계에 발을 디디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가 서른 살 때 친구들과 함께 소규모 방송사를 차리기 위해 자금을 모으려 여러 기업에 협찬 의뢰를 하러 다니다가 당시엔 신생 소매유통기업이던 이토요카도(イトーヨーカ堂)를 알게 된 것이었다.
이토요카도의 창업자이자 훗날 그의 평생 멘토가 되는 이토 마사토시 당시 사장은 “방송사를 만들고 싶다”며 일면식 없는 자신을 찾아온 당찬 스즈키를 눈여겨 보고 “방송사 대신 우리 회사에 들어오라”고 그에게 권했다. 스즈키는 고민 끝에 기자 대신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길을 택했고, 1963년 이토요카도의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15명의 ‘외인부대’로 시작된 세븐일레븐
스즈키는 이토요카도에 들어온 후 영업부에 배치됐고, 이후 인사관리 부문 총괄 간부로 승진해 이토 사장의 ‘심복’이 됐다. 이토 사장은 중요한 경영 결정을 내릴 땐 언제나 스즈키를 불렀다.
입사한 지 10년이 됐을 때 스즈키는 “이토요카도의 전환점이 될 만한 신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오라”는 지시를 받고 미국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 미국 사우스랜드가 운영하던 편의점체인 세븐일레븐을 처음 알게 됐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하고, 다른 가게들이 문을 닫는 일요일에도 영업한다는 콘셉트의 소매점포가 일본엔 당시 한 군데도 없었다.
스즈키는 회사에 세븐일레븐 체인을 일본에 들여오자고 제안했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모두가 대형 점포를 짓는데 갑자기 무슨 소형 편의점이란 이상한 소리냐”는 게 거부의 가장 큰 이유였다. 또 “그 시간에 어느 손님이 오겠느냐” “휴일 근무자는 어떻게 뽑겠느냐” 등 여러 반론이 제기됐다. 이토 사장은 스즈키에게 “체인을 들여오게 해 줄테니 체인을 관리할 사내 벤처를 스스로의 자금으로 꾸리라”고 지시했다.
스즈키는 어렵게 자금 1억엔을 마련하고 미국 사우스랜드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은 뒤 1973년 ‘세븐일레븐재팬’이란 이름의 사내 벤처를 만들었다. 일하려는 직원이 없어 전직 노조운동가, 제빵사 영업사원, 비행기 조종사 출신 등 유통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15명을 경력직으로 뽑았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도쿄에 세븐일레븐 1호점을 열었다. 일본 최초의 편의점이었다.
○창업주 2세 대신 최고경영자에 올라
사내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세븐일레븐은 예상 밖으로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편의점은 언제든지 가도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았고, 세븐일레븐은 업계 선발주자로 이름을 알렸다. 세븐일레븐은 첫 매장이 세워진 후 6년 만에 매장 1000개를 돌파했다. 1991년엔 세븐일레븐의 원래 모회사인 사우스랜드를 인수하고, 세븐일레븐을 일본 브랜드로 완전히 바꿨다. 현재 세븐일레븐의 일본 내 점포 수는 지난 9월 말 현재 1만5852개다. 또 한국과 미국, 중국에도 진출해 있다.
1992년 이토 사장은 스즈키에게 이토요카도의 회장 겸 CEO직을 승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장남인 이토 야스히사가 뒤를 이으리라던 사내 및 관련업계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었다. 1985년 이토요카도에 입사한 이토 야스히사는 4년 만에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이사가 됐고, 1991년엔 상무가 됐다. 누가 봐도 이토요카도의 차기 CEO는 이토 야스히사에게 돌아갈 것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토 야스히사는 1995년 전무가 됐다가 2002년 사임했다. 이토요카도의 CEO가 된 스즈키는 “현장을 중시하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자신의 경영원칙을 더욱 강력히 실천했다. 그는 세븐일레븐 매장을 관리하는 ‘현장 운영 책임자(OFC)’란 직책을 새로 만들고, 1주일에 한 번 OFC들을 대상으로 직접 강의했다. 이 강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스즈키는 2005년 9월엔 아예 세븐일레븐과 세븐일레븐의 모회사인 이토요카도, 이토요카도의 또 다른 자회사인 데니스 등 3사를 합병해 지금의 세븐앤드아이홀딩스를 출범시켰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편의점과 대형마트, 백화점과 소매금융사 등을 아우르는 거대 유통공룡으로 거듭났다.
[2013.12.13/한국경제]스즈키 도시후미 세븐앤드아이홀딩스 회장, 직원 15명으로 세븐일레븐 시작…유통 공룡으로 키운 승부사
엠줴이 : 세븐일레븐, 편의점업태의 성장의 부모로서 대표적으로 그가 한 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도미넌트 전략 : 지역에 집중적으로 출점하는 것으로 전용 공장이나 전용배송센터의 사용률을 높였다.
2. 포스(POS) 시스템을 도입 : 1982년 10월, POS(판매시점정보관리)시스템을 도입. 1983년에는 전지점에 도입을 확장시켰습니다. 미국에서는 POS시스템이 보급되어있었지만, 이는 계산대에서 잘못 누르는 것을 방지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즈키는 POS로 부터 얻은 정보를 마케팅에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여 이것은 업계에서도 처음 시도된 일이었습니다.
3. 세븐은행을 설립 : 2001년 4월 주식회사아이와이뱅크은행 (후에 주식회사 세븐은행)을 설립. 또한 가스 및 전기세를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수납대행이 1980년대부터 이행되어, 편의점내에서 심야에도 일요일에도 돈을 빼낼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생각 되어졌습니다.
(엠줴이 : 일본의 경우, 은행에서 현금 입출금 하는 것이 지정된 시간 외에는 아예 닫혀 있기 때문에 보통 편의점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은행 쪽에서 제공하는 24시간 연중무휴 오픈되어 있는 현금 출납기가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고출처 : 일본위키 ‘스즈키도시후미’
나. 최고경영자 스즈키 도시후미, 팔은 역시 안으로 굽는다.
엠줴이 : 일본 내 신화적인 인물인 스즈키 도시후미의 사임은 일본 국내외 여러 신문사 및 경제 경영지에서 대대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신화적인 면모를 다시 언급하면서도 기획 시리즈로 현 상황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은퇴의 사유의 핵심은 자신의 아들인 스즈키 야스히로를 차기회장으로 임명하려고 했던 것에 대한 세븐일레븐재팬의 이사카 류이치 사장 및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주주인 서드포인트사의 역풍이였습니다.
세븐&아이홀딩스(HD)의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 겸 CEO(최고 경영 책임자, 83)은 그룹 전 직책에서 물러나고 은퇴를 결심했다. 4월 7일 오후 도쿄도 내에서 기자 회견을 했다.
세븐&아이HD는 4월 7일 오전에 열린 이사회에서 편의점 사업을 진행하는 중심알짜배기 회사 세븐 일레븐·재팬의 이사카 류이치 사장 겸 COO(최고 집행 책임자)을 교체하는 인사안을 부결시켰다. 사외 이사를 중심으로 복수의 이사가 반대했다. 표결은 인사안에 찬성 7, 반대 6, 기권 2였다.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해 인사안은 부결됐다.
"지주 회사와 산하의 상장 기업의 경영권을 한 손에 쥐고, 권력을 지나치게 집중 시켜 온 스즈키 씨가 회사 내 권력 투쟁에서 패했다. "(업계통)
자신이 제출한 인사 안이 부결됨으로써 전 보직을 사퇴하고 스즈키씨는 전 보직을 사퇴해서 "구분" 을 짓기로 한 셈이다.
세븐&아이 HD의 무라타 노리토시 사장은 그의 사의 표명 회견장에 동석하고 있었지만, 본인의 거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무라타씨는 "창업가의 이토 오마 사토시 명예 회장이 인사 방안에 동의하지 않았음" 을 밝혔다. 사외 이사뿐만 아니라 창업가가 스즈키 씨의 폭주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통의 신" "세븐&아이의 천황" 이라고 평가되어 세븐&아이 HD을 일대 유통 그룹으로 성장시킨 스즈키 씨의 시대가 종식한다. 갑작스러운 이번 스즈키 씨 은퇴극 뒤쪽에는 도대체 무엇이 일어났을까 ... ….
■강권
“스즈키씨가 아들을 사장으로 하기위해, 강권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세븐&아이 HD는 4월 6일 스즈키 씨의 의향에 따라 세븐 일레븐의 이사카 사장을 퇴임시키는 인사안을 굳혔다. 후임은 후루야 카즈키 이사 집행 임원 부사장. 후루야 씨는 66세로 이사카 사장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세대 교체에 역행한다. 이사카 씨는 세븐&아이 HD의 이사도 퇴임하는 방향으로 알려졌다.
이사카 씨의 목을 베는 인사는 4월 7일 이사회에 자문 받게 되었지만 이 인사 방안에 사외 이사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정보가 돌아다녔다. 세븐&아이 HD는 3월 도입한 지명·보수 위원회에 이 인사 방안을 제시. 장시간 논의됐지만 의견이 갈라진 채로 7일 이사회에 돌입했다.
지명·보수 위원회 위원장은 이토 쿠니오·히토츠바시 대학 대학원 특임 교수. 또 한명의 사외 이사는 요네무라 토시로 전 경시 총감. 둘 다 그의 인사안에 반대했다. 이 위원회 사 측의 멤버는 스즈키 씨와 세븐&아이 HD의 무라타 노리토시사장. 결국 2대 2였다. 이토 씨와 요네무라 씨는 "세븐 일레븐은 좋은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로서 이사카사장 교체에 반대의 입장이다. 세븐 일레븐은 세븐&아이 HD의 이익의 70%이상을 벌어들인다." 이사카 사장을 내보내는 것은 무리다"와 사외 이사는 판단했다.
"스즈키 씨가 아들의 야스히로씨(이사 집행 임원 최고 정보 책임자)를 다음의 정상에 생각하고 세습을 획책한 것이라면, 세븐&아이 HD차기 사장 확정과 해서 좋을 만큼 실적을 올렸다 이사카 씨는 눈 엣 가시가 된다. 미국 헤지 펀드의 서드 포인트가 ‘스즈키 씨가 야스히로 씨를 차기 톱에 앉히는 길을 모색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이라면 그의 수장으로서 적성과 판단력에 중대한 의문이 생기기마련.’ 이라고 지적한 것에 스즈키 씨가 훌륭한 격노했다. 스즈키 씨가 ‘내부에 서드 포인트와 내통하는 놈이 있다.’ 고 말한 것과 이번 이사카 사장의 목을 베는 인사는 연동하고 있다"(업계)
■내부분열
4월7일의 이사회는 당초부터 일이 뒤얽혀 말썽이 많고 시끄러웠다고 한다.
‘혹시 순조롭게 스즈키씨의 인사안이 찬성다수로 가결된다면, 세븐&아이HD는 틀림없이 내부분열한다.’ 고 지적한 유통 관계자도 많았다.
5월하순의 주주총회도 파란이 되었을 것이다. 경영이 혼란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이사카씨의 퇴임을 이행하려고 한 스즈키씨가 역으로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고 말하는 구도다.
세븐일레븐은 주간지나 석간지의 중요한 판매채널이 되어있기 때문에 이윽고 유력주간지의 편집장이 ‘총수(톱)을 구속하지 않는 한, (세븐&아이HD의)스캔들 기사의 게재는 무리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스즈키씨이 사임이 결정적이 된 지금 재차 이 회사가 안고 있는 문제가 명백하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
[비지니스저널/2016.4.7] 세븐&아이의천황 스즈키도시후미회장의 실각… 세습계책이 실패, 쿠데타로 경영혼란상태
7일 오전에 열린 세븐앤아이 홀딩스 이사회에서 핵심자회사인 세븐일레븐재팬의 이사카 류이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58)퇴임안이 부결된 직후 나온 결정으로 업계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이날 이사회에서 이사카 류이치 씨를 교체하고 후임에 후루야 카즈키 부사장(66)을 승진 발령하는 내용을 포함한 그룹내의 신경영체제 전반에 걸친 인사안이 상정돼 4명의 사외이사를 포함 이사 15명에 의한 무기명 투표방식으로 진행됐으나 안건이 부결됨에 따라 해당 인사안을 상정했던 스즈키 회장이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룹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는다.
앞서 세븐앤아이홀딩스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잡음은 스즈키 회장과 세븐앤아이홀딩스 주주인 美펀드 서드포인트社와의 사이에서 표면화 되고 있었다.
지난 3월27일, 지주회사인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창업주 스즈키 토시후미 회장이 아들인 스즈키 야스히로를 차기 회장으로 임명하려하자, 서드포인트의 대니얼 로브 최고경영자(CEO)가 서한을 보내 후계 선정의 시급함보다도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는 것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전달하고 나선 것.
로브 CEO는 서한에서 세습경영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함과 동시에 주요 계열사인 세븐일레븐재팬의 이사카 류이치 사장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세븐앤아이홀딩스에 투자한 서드포인트의 투자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2년간 진행한 일본 내 투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동주의 투자펀드로 알려진 서드포인트는 세븐앤아이홀딩스의 후계자 문제 이외에도 세븐앤아이홀딩스가 거느린 유통체인 이토요카도의 축소와 재편, 세이부와 바니재팬, 닛센홀딩스 매각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드포인트가 투자한 일본 회사의 경영에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에도 '전자사업에 집중하라'며 소니의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지분을 최대 20% 매각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같은 배경 속에서 이번 스즈키 회장의 사임은 사실상 행동주의 투자펀드 CEO인 대니얼 로브의 승리라고 볼 수 있지만, 이사카 류이치 사장이 이끄는 세븐일레븐 재팬이 2016년 2월기까지 5분기 연속 최고이익을 갱신한 것도 인사안 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 열린 이사회의 투표결과는 찬성이 7표, 반대 6표, 기권 2표였다고 전해진다. 찬성이 7표라는 이야기는 반대로 말하면 스즈키 회장의 인사안건에 대해 과반수에 해당하는 8명이 지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스즈키 회장의 구심력도 흔들리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스즈키 회장은 현 83세. 일본을 대표하는 유통서비스 그룹 세븐앤아이홀딩스의 경영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라는 질문에 스즈키회장은 퇴임으로 대답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스맨/2016.4.7]日편의점 왕국의 설계자 세븐일레븐 스즈키 회장 떠난다
소매 대기업 세븐 앤 아이 홀딩스(HD)의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 겸 최고경영책임자 (83)가 7일 기자회견에서 ‘은퇴할 뜻을 굳혔다’며 퇴임을 표명했다. 그가 주도해온 자회사 인사안이 같은 날 이사회에서 승인되지 못하고 책임을 지기로 한 것이다.
세븐 앤 아이는 이 날 오전에 열린 이사회에서 세븐일레븐 재팬의 이사카 류이치 사장(58)을 퇴임시키고, 후루야 가즈키 부사장(66)을 승격시키는 인사안을 부결했다. 사외 이사회를 중심으로 반대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후, 회견에 임한 스즈키 씨는 ‘인사안이 부결된 것에도 책임이 있다’며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인사안을 둘러싸고 이토 마사토시 명예회장(91) 등 창업주와의 의견이 엇갈렸음을 밝혔다. 그룹의 전 임원직에서 물러날 생각으로 자신의 후임은 ‘다같이 의논할 생각이다. 내가 지명하는 것에 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2016.4.8]세븐 HD, 스즈키 회장 사의 표명, 자회사 인사 부결
‘최고 이익을 내고 있을 때이기 때문에 더욱 은퇴를 정했다’ 세븐 앤 아이 홀딩스는 7일,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 겸 최고경영책임자(CEO)가 퇴임한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편의점이라는 소매업 형태를 만들어 편의점 경영 철칙을 갈고닦은 ‘세븐일레븐’의 아버지가 바로 스즈키 씨이다. 그런 스즈키 씨에게 물러날 때를 정하게 한 것은 ‘경영자로서의 철칙’이 아니었다. 바로 코퍼레이트 거버넌스(기업 통치) 룰이다.
■ 회사안은 과반수인 8표에 못 미쳐
이번 주 들어 핵심 자회사 세븐일레븐 재팬의 사장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표면화하였다. 그 계기는 ‘할 말 하는 주주’로 알려진 미 투자펀드 써드 포인트의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써드 포인트를 이끄는 대니얼 로브 씨의 진의는 알 수 없으나 세븐 앤 아이와 스즈키 씨가 내몰린 것은 기업통치의 ‘가시화’일 것이다.
스즈키 씨는 경영론에 관해서는 명쾌해도 후계자 문제 등에 관해서는 명확한 이야기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주변에서는 ‘세습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까지 생겨나고 있었다. 최근 세븐 앤 아이와 스즈키 씨에게는 그런 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세븐 앤 아이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일대유통 서비스 집단의 리더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그 인사는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주주들의 물음을 계기로 확산한 주변의 불안과 불신을 몰아내려고 세븐 앤 아이가 내놓은 대답이 스즈키 씨의 퇴임이었을지도 모른다.
세븐 앤 아이의 경영진 사이에서는 이사카 류이치 사장 겸 최고집행책임자(COO, 58)를 교체하는 인사안을 추진하는 스즈키 씨와 그에 반대하는 사외이사 등의 논의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고 한다. 사외이사는 ‘일반 주주의 대변자’다. 세븐 앤 아이에서 절대적인 존재인 스즈키 씨도 그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본인의 의견은 통할 수 없다.
7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회사안, 즉 스즈키 씨가 추천하는 인사안에 대해 찬성이 7표, 반대가 6표, 기권이 2표였다고 한다. 스즈키 씨의 인사 시나리오에 대한 찬동은 과반수은 8표에 이르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8명이 스즈키 씨를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스즈키 씨의 구심력도 흔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올해 스즈키 씨는 83세가 되었다. 사외이사를 포함해 경영진들에게 자신의 의견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각오했을 것이다.
세븐 앤 아이의 주가는 7일 현재, 일시 10퍼센트 가까이까지 하락했다. 스즈키 씨 사임 뉴스가 나오자 하락폭이 줄었다. 그것은 이번 혼란의 수습을 말하는 것이지만, 세븐 앤 아이의 경영진에게 안심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오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사(史)에 이름을 남긴 수완 좋은 경영자로부터의 독립, 즉 ‘포스트 스즈키 시대’라는 오랜 세월의 과제와 마주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2016.4.7] 세븐&아이의 왕, 물러날 때를 정하게 한 ‘8표’
엠줴이 : 조선닷컴의 내용이 정리가 잘 되어있는 것 같아 엑기스는 아래와 같습니다.
(전문을 읽고 싶으신분은 링크를 따라가 주세요)
세븐일레븐 제국 만든 스즈키 도시후미, 불명예 퇴진 왜
①과욕에 사라진 우군
스즈키 전 회장 퇴임의 직접 계기가 된 것은 계열사 세븐일레븐의 이사카 류이치(井阪隆一) 사장 해임 시도였다.
②기업 지배 구조 개선의 ‘본보기’
일본 내외 언론의 평가 중에는 ‘의미 있는 사건’이란 견해가 눈에 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일인자가 회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문화가 바뀌는 ‘좋은 징조’로 해석하는 것이다. 특히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이 처음으로 성과를 낸 것이라는 시각(파이낸셜타임스)도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예전이라면 일본 경영 문화에서 회장의 요구가 거부당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인사 투명성에 대한 회사 안팎의 요구가 커지면서 스즈키 회장이 물러나게 됐다”고 분석했다.
③회사가 흔들릴 때 강해지는 행동주의 펀드의 발언력
회사 주식을 사들인 후 경영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하는 행동주의 펀드는 스스로 회사 경영권을 탈취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회사 내부의 틈이 생기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스즈키 회장 퇴임극에서 증명됐다.
지난 3월,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이사진은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발신인은 미국계 헤지펀드로 세븐앤드아이홀딩스의 주주인 ‘서드포인트(Third Point)’. ‘계속 최고 이익을 내온 이사카 사장 해임은 정당성이 없으며, 스즈키 회장이 장래 경영권을 차남에게 세습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메일은 스즈키 회장의 세습설을 공론화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프리미엄조선닷컴/2016.4.24] 경영권 휘두르다가 … 최고 실적 내는 와중에 옷 벗은 회장님
엠줴이 : 중요한 포인트는 ‘세습’ 입니다. 이슈들어가기에 제가 왜 ‘재벌’에 대해 설명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가의 주식 보유량이 높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서 가족경영(일본에서는 동족경영(同族経営)이라고 합니다.)의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가족경영=중소기업' 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며, 이는 ‘재벌’이라고 칭할 정도는 되지 않습니다만, 꽤나 비판을 사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도요타자동차’, ‘산토리홀딩스’ 등이 재벌축에 속하진 않아도 가족경영이라는 맥락은 어느정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개념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비상장 우량기업들이 이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12월 25일 방송된 정보방송 '잇뿌쿠’ (TBS계) 에서는 소동의 내용과 함께 한국 취직사정과 대우되는 재벌일족에 대해서 특집을 내보냈습니다.
32세에 이사취임. 평균연수입 1억엔이상
한국에서는 재벌계와 일반기업의 급여 격차가 커, 일반기업의 사원 평균 연수입이 495만엔인 것에 대해 재벌기업은 834만엔. 그 차이는 약 1.7배가 됩니다.
재벌계기업에 입사하는 것에는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 고려대학 등 일본에서 말하는 동경대 와세다, 게이오대학 레벨의 대학을 나오는 것이 필요조건. 해외유학경험도 요구되어집니다.
하지만 한국 대졸의 취직율은 58.6% 많은 학생은 맹렬히 공부해서 유명대학에 들어가도 졸업후의 취직처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울분이 쌓여있습니다.
한편 재벌오너의 자녀나 손자들은 일족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대학 관계 없이 어려운 입사도 가능해, 게다가 승진도 빠르다. 재벌 오너의 손자는 평균 3년, ‘나는 연줄로 입사’라고 공언하는 땅콩공주의 여동생은 31세에 상장기업최연소 기록을 갱신하며 이사의 자리에 취임.
소동을 일으킨 땅콩공주 본인도 32세로 이사에 취임. 재벌계 기업의 이사의 평균수입은 1억 3700만엔이 된다. 확실히 밸런스가 빠져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해설자로서 출연해 작가, 이와시타 나오후미씨는 ‘가문으로 결정되는 헤이안시대의 귀족 같다’ 고 감상을 늘여놓았습니다. 일본 넷상에서도 ‘지금이라면 한국에서 ‘꽃보다남자’가 대인기가 된 이유를 알겠다.’ 라고 말하는 견해도 보인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아가씨’, ‘도련님’ 으로의 동경이 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습’ 이나 ‘동족경영’은 일본에도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것 만으로 ‘아가씨’ 나 ‘도련님’ 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회사도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이오 제지 창업 3대째·이가와 모토 타카 전 회장(50)이 100억엔을 넘는 회사의 돈을 인출, 카지노의 베팅에 사건도 기억에 새롭다. 패스트 리테일링사의 야나이 타다시 씨(65)도 "절대로 세습 하지 않는다" 라며 과거 발언 했지만 두 아들을 요직에 앉히다, 장래적인 관점으로 세습되는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있다. 또 두사람 다 이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배당금은 각각 14억엔에 이른다는데, 종업원은 어디까지 납득할 수 있는가.
트위터에서는 ‘일본 시골 원맨 중소기업’을 재벌레벨의 경제력으로 무리하게 강행하자, 대한 항공이 되면 야유하는 글도 올라왔다. 규모는 있든 없든 아가씨와 도련님의 횡포에 관해서는 "일본도 한국을 비웃을 수 없다." 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에서도 모델 쿠로다씨는 ‘젊어서 이사가 된 사람이라도 우수하며 인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 없을 지도 모르겠다.’ 라고 지적. 래퍼 우타마루씨는 ‘일본이야말로 남의 언행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캐리코네뉴스/2014.12.25] 나쁜 것은 가족경영? 땅콩공주의 행동에 ‘일본시골원맨중소기업과 다를것 없다.’ 는 목소리
3. 필진 코멘트
엠줴이 : 이러한 일본 그룹 내 세습 파문은 최근 ‘왕자의 난’ 으로 떠들썩 했던 ‘롯데’ 또한 일본에서 떠들썩 했으며, 최근 나오고 있는 비판되는 기업 중 하나 또한 ‘유니클로’입니다.
평생을 천재적인 경영으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아온 일본 유통업계의 큰 손인 스즈키 도시후미의 마지막이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매업은 변화적 대응업’ 이라고 말한 스즈키 도시후미는 ‘사장업도 변화적 대응업’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 마야마 진의 동명경제소설 ‘하게타카(기업매수를 통해 이득을 얻는 기업전문해체가)’ 로 유명한 NHK의 드라마 입니다만, 버블이 꺼지고 난 뒤 2000년대 초반 미국 헤지펀드가 일본 기업을 매수해가는 과정 등이 그려진 경제스릴러(?) 드라마입니다.
일본 경제에는 미국 헤지펀드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게타카 1회부터 (판도라티비)
by 엠줴이
spmj1990@gmail.com
행간읽기, 하나만 읽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