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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간읽기 Jun 08. 2016

[누들] 일상이 된 비극

[행간읽기] 2016. 6. 8. by 누들

"일상이 된 비극" by 누들


1. 이슈 들어가기

누들 : 요즘은 뉴스를 들여다보기가 겁이 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는 살인, 성폭행, 안전사고 등 너무나 많은 사건사고 때문이죠. 사건이 발생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어찌어찌 해결책을 내놓는 것 같지만 늘 제자리걸음입니다. 비슷한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그런 비극을 접하는 국민들의 심신도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습니다. 문제는 계속 생기는데, 해결이 안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원망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는데도 남과 여, 지역과 지역 등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서로를 헐뜯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에 바쁘죠.

우리 사회에 생산적인 토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서로를 향한 적대감과 혐오만 남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하지만 더 절망적인 것은, 어느새 이 모든 비극에 익숙해져 가는 우리를 보는 일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이슈 자체에 대한 논평보다는 아주 최근에 연속적으로 벌어진 강남역 사건, 구의역 사고, 남양주 지하철 사고, 섬마을 성폭행 사건 등을 겪으며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한 칼럼을 몇 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2. 이슈 디테일

‘막말’이나 ‘밥그릇 싸움’ 같은 용어는 신중하게 사용돼야 한다. 표현이 거칠고 생경하다고 해서 모두 막말이라고 하면 그 상황과 맥락은 사라져버린다. 밥그릇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 밥그릇을 놓고 싸운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리지 않고 밥그릇 싸움으로 싸잡으면 편하긴 하지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묻지마 범죄’란 말에서도 나태함이 느껴진다.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특정한 동기나 계획 없이 저지르는 범죄를 뜻할 터. 하지만 ‘묻지마’가 붙는 순간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별적 삶은 증발되고 사회적 맥락은 생략되기 일쑤다. 17일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 살인사건은 과연 경찰 발표처럼 ‘묻지마 범죄’인 걸까. (…) 정부 발표대로 화장실 개선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남녀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은 빼놓은 채 ‘묻지 마’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가. 대체 뭘 묻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그것을 묻고 싶다.

[중앙일보/160523] [권석천의 시시각각] 묻지마? 뭘 묻지 말라는 건가


지난 열흘이라 했지만, 사실 지난 십년 이상 그래왔을지도 모른다. 힘 있는 자들은 계속 폭력을 휘둘렀고, 힘없는 자들은 그나마 만만한 대상을 찾아 화풀이를 했다. 을은 갑질을 욕하면서도 끝없이 병과 정을 만들어냈다. 여명이라도 찾기가 쉽지 않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연전연패를 당할 때, 팬들은 아직 어설프지만 잠재력 넘치는 젊은 선수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지금은 꼴찌지만 이들이 좀 더 실력을 연마하고 경험이 쌓이면 내후년쯤 우승을 노려볼 수 있으리라 믿으며 지금의 패배를 감수한다. 희망은 현실을 버티는 힘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이런 희망이 있는가.

[경향신문/160524] [문화비평]한국이 무섭다


세 죽음에는 효율이니 합리화니 하는 단어로 위장한 한국식 자본주의가 숨어 있다. 이윤을 위해 생명과 안전쯤은 가볍게 팽개치는 비정한 경제다. 그러니 이 셋을 우연히 일어난 별개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이미 살균제 사건을 ‘안방의 세월호’로, 구의역 참사를 ‘일터의 세월호’로 부르고 있다. 겉만 조금씩 달리하면서 세월호 참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 같다. (...)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정부가 앞장을 섰다. 큰 재난이 터져도 성장지상주의를 의심하지 않았고 자본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낡은 세월호의 개조와 과다적재에 눈 감고, 살균제의 위험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으며, 힘 없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마침내 생명과 안전마저 비용의 문제로 환산해 청년의 죽음을 초래했다.

[한국일보/160601] [메아리] 이것은 ‘일터의 세월호’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존귀한 것이다.’ 이 명제가 보편적 참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 성장과 효율을 맹신해온 이 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행위의 절대적 옹호는 이미 불치병이다. “망하라는 얘기냐” 한 마디면 더 이상의 논쟁이 불가능하다. 세계의 모든 가치를 돈이 결정하는 곳에서 우리는 산다. 노동의 가치도, 사랑의 가치도, 목숨의 가치도 돈이 정해준다. ‘돈도 좋지만’은 한낱 췌사가 되어 ‘돈이 최고지’ 앞에 무력하다. (...) 도저히 되지 않는 일-고작 5, 6명이 49개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관리.수리하는 일 같은 것-을 어찌 됐든 해내라고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인구 1만명당 6.8명의 압도적 산재사망률 1위 국가가 된 연유다. ‘너는 얼마짜리냐’ 묻는 시선과 행태가 ‘미션 임파서블’의 적외선 감시망처럼 횡행하는 곳에서 초(!)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안전장치와 매뉴얼이라니. 잔인한 농담 아닌가.

[한국일보/160602] [36.5도] 눈에는 눈, 돈에는 돈


어쩌면 우리도 구의역 참사의 공범은 아닐까? 성수역과 강남역 사고를 외면하지 않았다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일하다 바다에 빠져 죽고 삼성전자 하청업체 파견노동자가 메탄올에 눈이 멀었을 때 침묵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난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6년 더 나은 삶의 질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38개국 중 28위였다. 주 50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 비율, 일과 삶의 균형, 전반적인 건강 상태, 공동체에 대한 결속력은 모두 꼴찌였다. 침묵이 가져온 한국 사회의 오늘이다.

[힌겨레/160607] ‘일터의 하청화’라는 역병


3. 필진 코멘트

누들 : 오늘 저의 행간읽기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하지만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고, 또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것을 독자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은 경영의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을 양산해 왔고요.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와 같은 교육방식과 경쟁논리를 그대로 답습해 온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와서도 단체 과잠바에 출신 고등학교를 새기는 방식으로 같은 대학 내에서도 서열을 매기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게 왜 나쁜 일인지, 차별을 왜 하면 안 되는지 몰라요.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아이들을 나무라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겠죠.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보면, 메이슨 총리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이 꼬리칸에 탄 승객들을 향해 ‘Know your place’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의 자리를 알아라, 즉 분수를 알라는 뜻인데요. 영화에서는 그 말이 불씨가 되어 꼬리칸 승객들이 열차의 엔진 쪽인 앞칸을 향해 질주하며 혁명을 일으킵니다. 이 영화를 생각하니 문득 2013년 말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대자보 하나가 떠오릅니다.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by 누들

breezynod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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