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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간읽기 Aug 03. 2016

[누들]이화여대 사태, 학내 민주주의는 어디로?

[행간읽기] 2016. 8. 3. by 누들 




"이화여대 사태, 학내 민주주의는 어디로?" by 누들


1. 이슈 들어가기

누들 :  행간읽기는 '이슈별 프레임 비교'와 '전문 분야 해설', 두 방향으로 행간을 읽어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오늘 다룰 이화여대 문제와 관련해서는 언론사별 극명한 프레임 대조가 아주 흥미롭게(!) 나타나고 있어 오랜만에 프레임 비교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며칠간 '이화여대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놓고 학교와 학생 간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죠. 경찰 1,600명이 투입되어 농성에 나선 학생들을 진압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제 SNS 타임라인에도 이화여대 학생들을 옹호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어 서로 분탕질하기 바쁘더군요. 어떻게 이 지경이 됐는지, 또 이번 사건을 두고 각 언론사는 어떤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2. 이슈 디테일

미래라이프대학이 뭐길래?


(출처 : 중앙일보 “평생교육” “학위장사” 이화여대 단과대 신설 갈등)

누들 : 이번 논란의 핵심은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에 있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평생교육대학원 이외에 새로운 산업을 다루는 학과를 약 150여 명 정원으로 만들어 4년제 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거죠. 고졸, 직장인 또는 30세 이상 무직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학교 측은 '학문의 기회다', 학생 측은 '학위 장사다'라는 의견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요. 먼저 전체적인 상황의 이해를 위해 양측의 입장을 비교적 균형 있게 다룬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를 발췌해 정리했습니다. 먼저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에 대한 양측 의견입니다.


1. 학교(서혁 교무처장)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처럼 발전돼 있지 못하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경우 평생교육 단과 대학이 이미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부하고 싶은 직장인들도 야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의 평생교육 단과 대학 시스템을 만들자는 거다. 미래라이프대학에서는 뉴미디어 산업, 웰니스 산업, 융합설계 전공 등의 분야를 신설할 계획이다. 특히 뉴미디어 산업이나 웰니스 산업은 기존 평생교육원에 있는 전공들과 분명 차별화된다. 산업 재직자들의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살림과 동시에 이들에게 적합한 교양과 전공 교육 강화를 통해 전문적인 사회 여성 리더들을 양성해내는 게 목적이다. 기존 평생교육원과는 대상이나 목적, 방향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평생교육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여성 교육을 선도해온 이화여대 교육건학이념도 절대 훼손하지 않는다.


2. 학생(집회 참여 재학생, 익명)

직장인이나 고졸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왜 특별한 단과대를 신설해서 반드시 학위를 수여해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본교에는 평생교육원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직장이나 고졸 여성들에게 진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면 기존의 학교 입학전형을 보충하거나 평생교육원의 질을 높여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순수학문도 아닌 트렌드를 반영한 실용학과를 4년제 단과대로 도입한다는 것은 학위장사로밖에 볼 수 없다. 직장인, 고졸 여성이 학위를 따려는 이유는 보통 경력이 단절되거나 승진의 제한이 있는 경우다. 그래서 학교가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해서 이들에게 학위를 지급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이들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4년제 졸업장이 있어야만 경력을 이어갈 수 있고 승진이 가능한 이 사회의 비합리적인 구조를 공고하게 하는 것, 즉 학벌주의를 견고히 하는 것이다.

[노컷뉴스/160801] [이대 갈등] 학교측 "기회 확대" vs 학생측 "학위 장사"


경찰력 1,600여 명 투입, 언론사는 어떻게 반응했나


누들 : 미래라이프대학 신설과 관련한 학교와 학생의 입장이 팽팽히 갈리고 있는 와중에,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일어난 절차상의 문제도 함께 지적했습니다.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인데요. 대화를 요구하는 약 200여 명의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며 농성을 시작하자, 대학은 1,600여 명의 경찰을 투입해 맞대응했고요. 각 언론사는 이에 대해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재학생·졸업생들이 학교 측의 직장인 대상 단과대 설립 계획에 반발해 28일부터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서혁 교무처장 등 교수·교직원 등 5명이 사흘 동안 사실상 ‘감금’됐다가 30일 오후 1시쯤 경찰의 도움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조선일보/160730] 이화여대 학생들 3일째 점거농성…교수 등 5명 사흘 만에 '탈출'

누들 : 조선일보는 경찰 1,600여 명이 투입된 사실과 진압 과정에서 학생들이 입은 피해는 언급하지 않고 '경찰의 도움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고 간략히 서술했습니다. 5명이 사흘 동안 감금되었다는 원문의 내용과 함께 헤드라인에는 '탈출'이라는 단어를 써 학생들의 책임을 좀 더 부각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의 뒤통수”라며 반발했다. 이에 앞서 학생지원처가 이날 오전 11시 “총장님과 학생들의 조건 없는 만남을 진행하고자 총학생회 및 중앙운영위원회와 사전 면담을 제안한다. 본관 서문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지 15분 만인 오전 11시 15분에 최경희 총장이 경찰에 출동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학교 측은 언론에 “경찰 병력은 우리가 부른 게 아니다. 학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으나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서대문경찰서는 대학 측이 총 3차례 출동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160731] ‘농성’ 학생들에 면담 제안하고 경찰 부른 이화여대


누들 : 경향신문은 조선일보와는 정반대로 학교 측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냈습니다. 기사 원문에서는 학교와 학생의 입장을 모두 다뤘지만, 학교 측이 거짓말을 한 사실과 '학생이 무슨 학교의 주인이냐'는 한 교수의 발언도 함께 담아 학교의 책임에 더 무게를 실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언론사의 헤드라인만 살펴봐도 이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잘 드러나고 있죠.

[한겨레/160731] 학생들의 “학위장사 반대”에 경찰 불러 진압한 이화여대

[문화일보/160801] 이화여대 사태… 대화·타협 빠진 ‘反지성적 해법’ 논란

[채널A/160730] 이화여대 점거 농성…교수·교직원 감금

[SBS뉴스/160730] 이화여대 학생 3일째 본관 점거…교수 등 5명 46시간 만에 나와

[고발뉴스/160730] 이대 학생들 “직장인 단과대학 설립, 학위장사일 뿐”

[노컷뉴스/160730] 사흘째 점거농성…이대생들은 왜 분노했나

[KBS뉴스/160730] “고졸 사회인 입학 반대” 이대생들 점거 농성

[YTN/160731] "경찰력 부른 적 없다"...이대 거짓 해명 논란

[JTBC/160731] 이화여대 농성 나흘…경찰투입 놓고 학교-경찰, 입장 엇갈려


3. 필진 코멘트

누들 : 경찰력 투입으로 인한 여론 악화와 학생들의 점거 농성이 지속되자 학교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학생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정식으로 대화를 제의받은 적이 없다며 총장이 직접 요청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인데요. 학생들은 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는 여전히 철회가 아닌 중단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어 대화가 시작된다고 해도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번 이화여대 사태에서 제가 가장 실망했던 부분은 바로 학교와 경찰의 '태도'였는데요. 학생들의 집회를 보며 총장이 '우리 학생일 리가 없다, 외부 세력일 것'이라고 발언하는가 하면, 경찰청장은 (여느 시위에서나 그렇듯) '주동자를 찾아 엄벌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또 한 교수는 '4년 있으면 학교 졸업하는 학생들이 무슨 학교의 주인?'이라며 조롱하더군요. 모두 사태의 본질과는 어긋나 보입니다.


한때 학문의 상아탑으로 불리던 대학은 '공무원사관학교', '취업사관학교'로 변질되며 소규모 학과들이 통폐합되고, 정부 주도의 대학 구조조정으로 무분별한 교육과정이 신설되는 등의 일이 전국 대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의견은 거의 무시되거나 조명받지 못하고요.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이화여대가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와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등은 이미 이화여대 학생 행동에 대해 연대와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의 흐름도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에 학교와 학생 모두 공감한다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서로 타협점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 기본은 당연히 '대화'고요, 학내 민주주의는 그래야 달성되는 거죠. 안 그래도 불통으로 답답한 시대인데, 학교까지 정말 이러실 건가요?


(덧. 노파심에 밝히자면, 필자는 이화여대와 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

by 누들

breezynod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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