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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Jul 06. 2021

여름, 변산에 들다.

杏仁의 길 담화_봉래구곡과 월명암

 부안댐이 들어서기 전, 내변산은 여름 휴양지로 최고였다. 비포장 길 흙먼지 속에 시외버스를 타고 들어서면 산 아래 작은 마을 앞으로 개울 따라 소박한 논밭이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은 젊은이들은 웃통만 벗고 맑은 개울에 뛰어들어 동심으로 돌아갔고, 된장을 미끼 삼아 어병을 놓아 피라미를 잡고는 어설픈 매운탕도 끓여 먹었다.      


  원래 내변산의 심장부는 중계계곡과 백천내 일대였다. ‘백개의 골짜기가 모여들어 물길을 이룬다’는 백천내. 1990년대 중반 부안댐이 완공되면서 골짜기 중하류가 물에 잠겼지만, 상류 골짜기 경관은 여전하다. 

최고봉인 509m 의상봉과 남서쪽의 쌍선봉과 낙조대, 월명암, 봉래구곡과 직소폭포 일대까지 첩첩한 산과 골짜기는 해발 400~ 500m 정도로 높지는 않으나, 기기묘묘한 형상의 암봉과 계곡이 어우러진다. 

이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봉래구곡! 직소폭포 골짜기다. 봉래구곡은, 신선봉(486m) 자락 신선샘에서 발원해 백천내·부암호를 거쳐 해창에서 서해로 흘러드는 물길의 아홉 경치를 말한다. 영지·백천·암지 7~9곡은 물에 잠겼고, 대소·직소폭포·분옥담·선녀탕·봉래곡·금강소 1~6곡은 남아서 우리를 반긴다. 

     

 국립공원 내변산 분소에서 출발해 직소폭포까지, 2㎞ 남짓 물길을 따라가는 숲길은 언제라도 다시 가고 싶은 길, 단연 변산반도 최고 탐방로다. 남녀노소 어우러져 한 가족이 편하게 거닐 수 있다. 왕복으로 쳐도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으면 된다. 실상사 터를 거쳐 제5곡 봉래곡을 지나기까지 1㎞는 널찍한 평지 숲길이다.

실상사는 옛 변산 4대 사찰 중 하나로, 신라 때 창건되고 조선 때 중창됐다가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졌다.

봉래곡 너럭바위엔 ‘봉래구곡’이란 큼직한 글씨가 있다. 정읍 출신 명필 동초 김석곤(1874~1948)의 초서체 글씨다. 그는 경치 좋은 곳을 유람하며 바위글씨 새기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부안댐 완공 이전에 부르던 이름은 중계계곡이지만, 바로 이 '봉래구곡'이라는 석각 때문에 이곳을 봉래구곡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산중 푸른 물을 담은 직소 저수지 전망대와 선녀탕을 거쳐 분옥담 위쪽으로 직소폭포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내내 울창한 숲 속 길, 나무계단과 흙길이 이어진다. 숲이 울창해 저절로 마음이 정갈해진다. 산 아래 작은 호수를 내려다보며 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이내 내리막 바윗길이 열린다. 비탈이 심한 내리막길을 따라 우뚝 솟은 관음봉을 조망하며 걷는다. 

관음봉 그림자가 잠긴 푸른 물을 바라보며 눈도 맑아진다. 저수지 옆 탐방로를 따라가다 물을 들여다보니 버들치들이 유영한다. 어른 손바닥만 하다. 직소폭포 전망대에 이르니, 푸른 소를 향해 수직 낙하하는 폭포수가 멀리 눈에 들어온다. 물길은 바위를 타고 돌아 흘러 크고 작은 폭포와 투명한 소들을 이룬다. 여러 개로 나뉜 옥 같은 못이라 해서 분옥담이다.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 분옥담의 깨끗한 물빛을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본다.

직소폭포

 전망대를 지나 잠시 걷다가 바윗길을 타고 내려서니, 우렁찬 물소리를 들려주는 직소폭포다.  직소폭포는 변산 8경 중 하나다. 30여 미터 길이 폭포수가 암벽 단애 사이에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하다. 소리 역시 웅장하다. 직경 50미터에 이르는 용소(龍沼)가 푸른 하늘을 안고 있다.

바위와 나무가 조화를 이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내변산은, 비가 내린 후면 곳곳이 폭포다. 산 전체에 숨었던 바위들이 일제히 폭포를 만들어 수천에 이른다. 자그마한 아기 폭포에서부터 소담하거나 우람하거나 중후한 폭포들이 쏟아져 흐른다.   

 

 월명암에 오르기 위해, 직소폭포에서 다시 내려와  갈림길에 선다. 변산 정맥에서 두 번째로 높은 쌍선봉으로 통하는 길. 들머리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다. 20여분을 올랐을까? 문득 앞이 훤하게 트인다. 저 아래 호수는 아득한데 그 앞 관음봉이 금방이라도 호수에 빠질 듯하다. 관음봉 너머로 곰소만 바다가 보인다.

왼쪽은 천 길 낭떠러지. 눈앞에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이 풍경을 들어 “금강산을 옥으로 깎은 선녀의 입상이라 한다면 변산은 흙으로 만든 나한 좌상의 모임”이라는 말도 누군가 했었다. 

오르막이 끝나니 이내 능선길. 월명암 표지판이 반겨준다. 산죽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어 들어가니 저 앞에 월명암이 보인다. 10여분을 더 걷는다. 


 변산 월명암은. 백암산 운문암, 대둔산 태고사와 함께 호남 3대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라고 했다. 온갖 근심과 너와 나의 대립이나 시비 또는 논쟁이 끊긴 절대 조화의 세계라는 뜻이다. 

월명암은 아담한 암자다. 뒤로는 쌍선봉 일대가 병풍처럼 감싸 안아 아늑하고, 앞으로는 툭 터진 골짜기에 직소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내변산을 가로지르는 형국이다. 산진수회(山盡水廻)! 산이 멈춰 서고 물이 돌아 나가는 명당이라고 한다. 


 월명암 부설전 앞마당에서 보는 변산은 화려하다. 왼쪽 의상봉을 선두로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마다 이 골짜기에 안개가 피어올라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을 적시니 물안개와 구름이 어울려 춤추는 듯한 황홀한 비경을 일컬어 옛사람들은 월명 무애(月明霧靄)라 했다. 변산 8경 중 으뜸으로 꼽힌다.   

 월명암 뒤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약 20분쯤 오르면 서쪽 산등성이에, 서해를 내려다보며 누대(樓台)가 우뚝 섰다. 바로 낙조대(落照台)다. 황금빛 바다 위에 늘어선 고군산열도(古群山列島)의 섬들이 찬연하다. 월명 낙조(落照), 역시 변산의 일대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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