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해 여름 1
상아가 처음 석현을 본 것은 대학원 때, 학회에서였다.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강제로 끌려온 듯한 학회였는데, 경기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리조트였다. 항공우주나 우주과학 혹은 우주생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유야무야 학회를 진행하는 공간이었다. 별다른 이론이나 학문적으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없었고, 그래서 딱히 반론도 없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 학회는 빨리 끝났다. 교수들은 시내의 식당으로 몰려가고, 누가 보아도 강제로 끌려온 듯한 인상의 학생들만 모여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 즈음이었다. 다들 내키지 않아서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서로 통성명하고 어울리기 시작하는 그때, 그 누구보다 퉁명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던 사람이 석현이었다.
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을 품고 있는 포용력 있는 섬이 아니라, 홀로 아득히 서 있는 섬. 가까이에 있는 섬이 아니라, 아무리 노를 저어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섬. 그리고 분명한 것은 아직 어린 섬.
오고 가는 술잔의 혼돈 속에서 순수학문의 비애를 비관적으로 풀어낼 줄 아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일처럼 이야기할 줄 아는 그는, 바로 건너편에 앉아 있지만 이상하게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은 그 대화 속에서 유난히 못나게 보이는 사람이 상아는 자꾸 마음 쓰였다. 먼 길을 유난히 멀리 돌아가는 그 유치함이 그리고 순수함이, 하지만 순수해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그 치기 어린 모습이 이십 대 상아의 마음에 자꾸 남았다.
석현은 사실, 늘 상처 받기 싫은 사람이었다. 그는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모친과의 애착이 생기기 전에 그의 엄마는 그를 떠났고, 그의 부친은 그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지만, 그의 정서에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를 무사히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석현이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관점이 그는 늘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석현과 깊이 대화하지 않고, 늘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갔고, 석현은 자연스럽게 그런 방관 속에서 자랐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늘 익숙하지 않았고, 키도 외모도 평범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는 공부를 했다. 대부분 석현이 발생시키는 문제는 사소한 것이었고, 다른 친구들과의 갈등도 그의 성적이 대부분 무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는 일에도 유용했다. 그는 괴팍하다고 알려졌지만, 그를 건드리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는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기간이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그와 유사한 혹은 더 뛰어난 자질과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두려웠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이 몸서리치게 두려웠다. 친근한 얼굴로 다가올 때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는 그 해 학회에서 만난 상아가 너무 두려웠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면서 자란 상아의 맑은 미소가 그는 너무도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상아를 밀어내고 말았다. 몇 년 뒤 다시 만났을 때도. 그리고 그 뒤로도 몇 번. 하지만 결국 사람은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고, 상아는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석현은 상아를 잃을까 봐 너무 두려웠다.
그 해 여름, 어느 이른 아침, 화성으로 향하는 첫 번째 유인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정확하게는 한국에서 발사된 유인 우주선이었다. 이미 미국이나 중국의 우주선이 화성을 향하고 있었고, 미국은 이미 전진기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조금 늦었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실제 입안자인 이상아 교수는 첫 번째 유인 우주선에 탑승해 있었다. 그들은 10여 명으로 구성된 선발 인원으로 육 개월에 걸쳐 화성에 도착한 후 첫 번째 모듈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모듈은 일부 지상에 돌출될 예정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향후 지구 생태계를 복원하고, 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기지가 건설된 예정이었다. 필요한 부품의 일부는 이미 화성에 도착해 있었다. 유인 우주선의 경우 육 개월의 기간 동안 생활해야 하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실을 수 있는 설비는 많지 않았다. 화성에 도착하면 그들은 기본적인 모듈을 설치하고, 생존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그들이 화성에 체류할 시간은 약 2년이고, 6개월마다 인원이 확충되어 결국에는 50명의 인원이 화성에 거주할 예정이었다. 구성원 중 군인이 대부분인 중국과는 다르게 연구원 중심의 구성원이 결정되었다. 화성에 그들을 위협할 만한 생물학적 요소는 없으며, 대부분의 문제는 환경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므로, 환경과 관련된 문제나, 거주지 확장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대부분은 자녀가 없는 연구원들의 지원을 받았다. 확정된 위험요소는 없었지만.
여러분이 걱정하고 있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탐사는 국제관계 정립의 기준점으로 사용될 것이고, 이는 한국의 외교능력과 기술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우리의 기술이나 테라포밍의 실현 여부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테라포밍 된 화성에서 아무런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걷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술에 대한 확신이든, 국가 경쟁력을 보이고 향후 기술 관련 외교를 우월하게 진행하기 위한 수단이든 그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에 대한 관심이 거짓일지라도 우리가 성과를 낸다면, 모두에게 실현 가능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고, 일부가 그것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지속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저는 화성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 대한 관심을 진지한 논의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500백 년 이후, 우리 인류가 화성의 초록 숲을 거닐며, 두 개의 달을 바라보는 날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이상아, <1차 화성 유인 우주선 발사 직후 비공식 회의록, 2055.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