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해 여름 2
잘 다녀올게. 제발 편안히 있어. -라고 결국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없다면 아마 그는 혼자일 것이었다. 아마 누군가와도 교류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딱히 꿈이 없었고, 상아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다녀오면 아이를 갖자. -라고 추신에 적었다. 진심이었다. 어느 정도는.
대기권에 도착하자 우주선과 비행체는 분리되었다. 비행체는 돌아갔고, 우주선은 보조엔진을 점화하여 우주공간으로 나아갔다. 이제 지구는 완전히 일행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곳'인 아닌 '돌아가야 할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대한 푸른 행성의 일부를 상아는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본체는 우주정거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주선과 결합했다. 우주선은 본체의 몇 배의 크기였고, 네 개의 엔진과 여러 개의 보조엔진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미 화성에 도착되어 있는 것만큼의 장비와 시설들을 싣고 있었다. 우주선의 비어있는 전면부에 본체가 결합하자 좌우에서 보호장비가 본체를 감쌌고 육 개월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주선은 화성 궤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지구로 돌아올 예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본체와 장비를 화성에 떨굴 것이었다. 결합에서 장비 점검까지 두 시간이 걸렸고, 점검이 끝나자마자 우주선은 바로 항해를 시작했다.
우주선이 일정 속도에 도달하자 태양열 발전기가 달린 돛이 펼쳐졌다. 돛의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효율은 상당히 높았다. 우주공간에 대기는 없었으므로 손실되는 태양에너지는 거의 없을 것이었고, 화성까지는 태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모든 것이 이상 없다는 신호가 보이자 선실에 불이 들어왔다. 일행은 환호했고, 상아 역시 그랬다. 지금부터는 지구와 실시간으로 통신할 수 없었으므로 상아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석현과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석현의 불안함이 예상되기도 했고, 약간의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상아는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벗어버리고 간단한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당장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짐을 정리하고서 한참 동안 작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화성에 도착해야 그녀의 일은 시작될 참이었다. 기분적인 생존 시설은 이미 도착해있었고, 그곳을 바탕으로 서서히 돔을 확장해나가야 했다. 어느 정도 돔의 형태가 완성되면 상아는 그때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때까지 몇 년, 상아는 혼자였다.
상아를 태운 우주선이 발사되고, 결합되고, 바로 출항하고 나자 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기를 갖자는 추신의 내용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아기가 아니었는데, 아마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인 것 같았다. 그는 아기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아기가 보이는 행동과 소음들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마 그의 부모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는 혼자 지냈다. 몸이 아픈 그의 모친은 거의 누워만 있었고, 부친은 그런 모친 곁을 배회할 뿐, 딱히 석현과 소통하지 않았다. 모친은 석현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석현은 때때로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의료지원 속에서 그녀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석현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아직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기에는 이른 나이였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성실했지만 그런 석현을 보듬어 줄 정도로 정서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취해있었다. 결국 석현은 정서적으로 방치되어있었고, 상아를 만나기 전까지 그랬다.
그는 잘 표현하지 못했지만 상아가 좋았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었고 즐거웠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두려웠다. 철옹성처럼 쌓아온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웠고, 상아가 떠날까 봐 두려웠다. 상아에게 잘 보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어서 두려웠다. 재미있게 말하는 법을 연습했지만 막상 상아를 만나면 한 마디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웠다. 그리고 아기를 갖는 것도 두려웠다. 자신이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랬다. 그리고 그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제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상아가 돌아올 때까지 몇 년, 석현은 철저히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