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해 여름 3
상아와 그 일행을 태운 우주선이 달 궤도를 벗어났을 무렵, 상아는 기뻐했지만 석현은 조금 힘들었다. 그리고 병기는 전혀 그 일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우주선에 탄 이들은 병기에게 수개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늘 웃으면서 어떤 충돌로 없이 지냈지만 병기에게는 아마 그들에게도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무엇인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집착하기에는 그들은 지나치게 갖춘 사람들이었다. 잘 배웠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잘 조절할 줄도 알았다. 병기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관계가 정확하게 어디까지 진행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주선이 궤도를 벗어날 때도 병기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어떤 임무이건 잘 수행할 것이며 아마 그들은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병기는 몇 개월의 휴가를 보내고 다시 다음 팀 교육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늘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상식적인 행동을 했으며 예의 바르고 정확했다. 그의 수업은 논리적이었으며 약간의 위트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그를 좋아했다. 그래서 석현은 그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석현은 병기와 마주치면 조금 불편했다. 어딘지 모르게 부족해 보이지 않는 그 건실함이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자신을 숨기는 그 철저함이 석현을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반면 병기는 석현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번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지만 다들 석현 곁에 가기 힘들어했고, 병기 곁에 있는 것은 편안해했다. 병기는 석현이 불편하지도 그렇다고 편하지도 않았다. 그는 병기의 경계 밖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석현에게 예의 바르게 대했지만 그 이상의 대화를 진행시키지 않았다. 단지 다음 탐사팀에 석현이 연구팀장으로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마 교육이 시작된다면 더 자주 마주칠 것이었다. 상관없었다. 석현의 팀은 지하에 건설될 모듈을 담당하게 될 것이므로 교육 기간은 좀 더 길고, 내용도 더 본격적이었다. 지하를 시추하는 작업이 시작된다면 어떤 변수가 발생될지 몰랐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상관없었다. 병기는 이제 막 집에 도착했고, 아내와 아이는 휴가에서 입을 옷을 사러 나가고 없었다. 아내와 아이가 돌아오면 그들은 여행을 준비를 할 참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아주 긴 휴가를 떠날 것이고 그 뒤에 일을 병기는 잊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아주 논리적인 결정이었다.
아내와 아이가 옷을 사러 파주에 가는 것을 병기는 반대했다. 병기는 아주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었고 필요한 것은 현지에서 조달하면 될 것이었기 때문에 옷을 사는 데 오후를 모두 허비하는 아내와 딸아이를 병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반대는 결국 그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기 때문에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둘은 집에 없었다. 오랜만에 열어본 아이의 방에서 그를 반기는 것은 한쪽 벽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화성 지도였다. 그는 잘 알지도 못하는 화성의 지명을 아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천장에는 화성 모형이 매달려 있었고, 올여름에도 우주센터에서 주최하는 캠프에 다녀왔을 것이었다. 아이의 성향이나 학습 능력을 보았을 때 무사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보낸다면 화성에 가는 것이 꿈만은 아닐 것이다. 병기는 잠시 아이 방 침대에 앉아 화성 모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화성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과 화성에 가게 될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멀리 가는 것일까. 그들의 인생에 가장 눈부신 시간들을 붉은 황무지에서 보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나 지구의 발전 같은 이유 말고 그들이 그곳에 가고자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아무것도 없는 붉은 행성에 가고 싶은 욕망은 무엇일까. 병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화성의 푸른 석양을 보러 간다는 누군가의 말을 병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파주에서 돌아오는 도로에서 병기의 아내와 아이는 한껏 들떠 있었다. 다른 모녀들 보다 특별히 친근한 둘은 휴가에서 할 일을 한 없이 나열하고,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대화를 하며 서로 닮은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리고 갑자기 차가 급정차했을 때, 처음으로 둘은 고개를 돌려 도로 상황을 보았다. 약 이백 미터 전방에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했고 차들은 연달아 정차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차들은 사고를 목격하고 천천히 정차했지만 중간에 끼어든 차 중 한 대가 급정차했다. 병기의 아내 바로 뒤의 차였는데, 언덕을 오르고 바로 내리막에서 차들이 정차되어있었기 때문에 차량용 레이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차가 구형이었기 때문에 도로 상황을 처리해야 하는 처리장치에 아주 잠깐의 버퍼링이 있었다. 그래서 차는 앞에 차량이 정차되어있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행하게도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차는 상당히 급하기는 했지만 앞차와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상당한 소음이 발생했고, 병기의 가족은 뒤를 돌아보았지만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뒤차의 남성은 숨을 고르며 병기 아내와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모두 웃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병기의 아내는 남성이 흔드는 손 사이로 무엇인가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5톤을 적재해야 하는 트럭은 8톤이 넘는 합금 코일을 싣고 있었다. 적재량을 넘기기 위해서 차량은 불법 개조된 상태였으며 당연히 자율운전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자율운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적재량의 10%가 넘는 시점에서 차량의 운행 자체가 불가능했으므로. 남자는 그 전날 늦게까지 운행하고 다시 새벽부터 운행을 하고 있었다. 이제 서울에 도착해서 물건을 넘기면 보름 만에 아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아내를 볼 수 있다는 마음이 긴장을 풀게 만들어 버렸고, 아주 잠깐 조는 원인이 되었다. 그가 잠든 시간은 아주 찰나였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언덕을 막 오르는 순간 남자는 잠이 들었고, 몇 초만에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앞차와 추돌하기 직전이었다. 급히 제동 했지만 차는 코일의 무게를 버티지 못했다. 짐칸이 옆으로 돌면서 차량이 전복되었고, 전복된 상태로 차는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그리고 앞 차를 추돌하며 잠시 공중으로 떴고 코일들이 도로로 나와 다른 차들과 충돌했다. 병기의 아내가 운전한 차량은 전복되어 튕겨나온 트럭과 바로 앞에 있었던 버스 사이에 끼어 버렸다. 뒤차의 남자가 손을 흔들고 십 초가 안되어 벌어진 상황이었다. 도로로 튀어나온 금속 덩어리들이 다른 차량들을 덮치며 수 십 명이 부상당했다. 손을 흔들던 남성은 신기하게도 살아남았다. 차량 뒤편에 추돌하기 전에 트럭이 도로 위로 떠 올랐고 남성의 차를 넘어가서 병기의 아내가 운전하던 차와 남성의 차 사이로 떨어졌다. 남성의 차 앞부분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운전석은 멀쩡했다. 하지만 병기의 아내가 운전한 차를 그렇지 못했다. 버스와 트럭 사이에 끼었고,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사망했다. 그날 사고에서 유일한 두 명의 사망자였다.
그 시간 병기는 아이의 방에서 나와 에어컨을 켜고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내도 아이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15분 후 사고를 알리는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