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해 여름 마지막
의례적인 인사들이 오가고, 위로와 격려의 말들이 들렸지만 장례를 치르는 동안 병기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몇 해 전, 아버지의 장례에서는 누군가가 들어올 때마다 그래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고 했는데, 도무지 병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벽에 기대앉아 아내와 아이의 사진을 물 그러 미 바라보다가 다시 자세를 바꿔 바닥의 무늬를 바라보기도 하고, 몇 해 전 셋이 다녀왔던 휴양지의 바다를 떠올리기도 했다. 물은 너무 맑았고, 수영을 잘했던 아내는 구명조끼도 없이 바다 위에 떠 있던 그때를. 아이와 병기는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그냥 떠 있기만 했는데 그냥 아이의 손을 잡고 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수면 위로 나타나 커다란 바다 거북이를 보았다고 외치는 장면을 끝없이 떠올리곤 했다. 아내의 생기 넘치던 얼굴과 아이의 행복한 얼굴이 계속 나타나면 장례식장의 두 사람의 얼굴이 더욱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아버지의 시신은 너무 멀쩡해서 시신을 화장하는 순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왜 가만히 누워 계시는 지. 하지만 아내와 아이의 시신은 훼손이 너무 심했고, 부검까지 거쳤기 때문에 병기는 시신을 단 한 번 밖에 보지 못했고 그래서 더욱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그들의 부재를 수용할 수 있었다. 텅 빈 집과 주인을 잃은 가구와 방이 그를 온통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아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는데 그래서 너무 무서워서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데, 병기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여름 볕이 들어오면 먼지만이 온 집안에 내려앉을 뿐이었다. 미세먼지 주의보도, 이따금 내리는 비도, 이상기후 끝에 찾아온 폭염도 그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한참을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딸아이의 침대에 누워 방 안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화성의 사진과 지도를 바라보았다. 아침이 되면 화성에 와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그는 집에 있었다. 오로지 혼자. 그래도 배는 고프고 목이 말랐다. 기계적으로 무엇인가를 먹고 무엇인가를 마시고 다시 거실에 앉아 있다가 아이의 방에 누워 있었다. 눈에 보이는 아내와 아이의 물건 하나하나가 심장을 찌르고 아리게 했다. 집 안은 온통 그들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는 하루 종일 심지어는 잠들어 있을 때조차 아주 날카로운 고슴도치를 안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가 빨리 물건을 정리하라고 전화로 알려주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정리할 수 없었다. 그를 아프게 한 것은 그들의 고의가 아니었고, 누구의 고의도 아니었으므로. 그의 아픔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픔이 그를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몇 번인가 죽음을 생각했지만 잠깐 돌아본 곳에서 그들의 물건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살아남았다. 몇 달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먼지가 많이 쌓이면 청소를 했고, 무엇인가 먹고 마셨다. 그리고 남은 시간의 절반을 화성을 바라보며 아이의 방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화성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성에 아내와 아이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가고 싶어 했던 그 붉은 행성에 가는 것이 그의 삶을 최소한으로 연장시켜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삶은 화성에 도착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는 아내와 아이의 물건을 정리하지 않았다. 살아 있을 때처럼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고 오직 화성에 도착하는 일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의 장례를 치른 지 일 년에 넘은 가을 그는 화성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상아가 화성에 도착한 후 일 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테라포밍에 필요한 최소한이 주거 시설이 건설된 지 수개월이 지난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