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름 7

2. 붉은 여름 1

by 지승유 아빠

병기가 화성으로 가겠다고 지원서를 내밀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군인도 아니었으며 나이도 많았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화성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실험을 수행할 수 없었으며, 있었다고 해도 그런 실험이 의미를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승무원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나이가 많았다. 그는 사십이 넘었고 배도 조금 나왔으며 건강했지만 약간의 간질환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서서히 고혈압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간은 아무런 처방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마 몇 년 뒤에는 간경화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운동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승무원들의 평균 건강치에 한참 못 미쳤으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육체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물론 이런 육체적인 문제는 상당 기간의 훈련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긴 했다. 비행 자체는 과거에 비해 인체에 부담을 주지 않았고, 거주지는 예전보다 넓어졌다. 여전히 비좁긴 하지만 개인 공간을 할당받을 수도 있었고. 하지만 그를 본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그의 정신 건강이었다.


그는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았으며 잠도 자지 못했다. 이른 저녁에 잠들었다가 자정 무렵 깨어나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고, 아니면 늦은 밤에 침대에 들었다가 잠들지 못하고 몇 시간을 누워만 있는 경우도 많았다. 점차 알코올에 의존하는 일도 많아졌고, 말도 어눌해져 갔다. 병기는 자신을 돌보는 일에 죄책감을 갖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딸의 방에서 잠을 잤고, 결혼사진 아래에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대부부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지만 그는 매일 화성으로 가겠다는 지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모집기간이 아니었을 때부터 모집기간일 때까지, 그리고 모집이 이미 끝났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모집된 대원들이 시추나 건축에 관한 기술을 훈련받아야 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는 강사로 평판이 좋았고, 현재 화성에 도착한 대원들은 그를 모두 좋아했으므로 여전히 강사였지만 이미 그를 대체할 사람이 여럿 준비 중이었다. 그의 이름이 여전히 서류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은 석현 때문이었다.


병기는 석현을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석현은 병기를 잊지 않았다. 그를 만날 때 느껴지는 불편함이 오히려 그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병기 가족의 사고 소식을 들었고, 장례식에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병기가 어떤 방식으로든 변할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일같이 지원서가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담당자에게 들었을 때는 막연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상아 이외에 어떤 것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기지 밖에 우두커니 서 있는 병기를 멀리서 바라본 순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가졌다가 빼앗긴 자의 아픔을. 아직 더워지기 전이었지만 해는 뜨거웠고, 바람은 없었다. 병기는 몇 시간을 서 있었는데 기지 진입을 불허하는 지원 담당자의 명령 때문이기도 했고, 병기 자신의 의지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기지에 서서 무언의 항의를 하는 일 외에 어떤 것도 할 의지를 갖지 않았고, 그 의지 없음이 오히려 강한 의지가 되어 그를 늦은 오후까지 그 자리에 서 있게 만들었다.

석현은 병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정이 아니라 이해. 그를 동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누구나 아픔은 있고 아픔에 경중은 없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상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아를 잃는다는 상상만으로도. 그리고 상아를 잃지 않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아를 돕는 것이었다.


석현은 하루에 다섯 시간을 자고, 정확한 시간에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의 절반은 몇 개월 후 보내질 팀의 구성과 전체 프로젝트를 조정하는 것에 사용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화성에 도착해 있는 팀을 관찰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일에 사용했다. 몇 시간이고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 상아와의 통신을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화성의 상황을 모니터링했다. 기상이 좋지 않아 통신이 지연되어도 그는 짜증 내는 법이 없었다. 침착하게 기다렸다. 상아는 그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비공식적으로 '팀 상아'라고 불리는 1팀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임시로 지은 거주지는 필요한 만큼 확장되어 있었다. 임시라고 하지만 테라포밍 돔이 완성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므로 임시 거주지는 최소한 십 년의 내구성을 보장한 채 설계되었다. 대원들은 이미 도착되어 있는 부속품을 조립하고 주변을 탐사하고 결과를 지구에 전송했다. 거주지가 완성된 후에는 원형의 틀을 놓고, 테라포밍 돔의 기초를 건설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병기가 교육했던 기술들이 잘 활용되고 있었다. 필요한 부품은 충분했고 몇 개월 뒤면 다른 팀과 모듈들이 계속 도착할 것이기 때문에 '팀 상아'는 아무 문제없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위성사진이 도착할 때마다 그들의 거주지는 점차 안정적으로 변해갔으며 원형의 기초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 돔이 완성되면 그 내부에서는 우주복을 착용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이 1차 테라포밍의 목적이었다. 화성 전체를 테라포밍하는 것은 수 백 년이 걸릴 것이므로 그동안 인간들이 충분히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지구 밖에서 장시간 거주하는 것은 상당한 정신력의 소모를 가져오지만 지구와 유사한 환경과 충분한 거주 공간을 확보한다면 장기간 거주와 안정적인 작업을 기대할 수 있었다. 돔은 태양전지를 겸하는 강화유리로 제작될 것이고, 그 위에는 모래바람이 상당한 크기의 투척물도 막아낼 수 있고 퇴적물이 쌓이는 것을 예방할 방어막이 형성될 것이었다. 태양전지 위에 쌓인 붉은 모래를 아침마다 털어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지금 현재 '팀 상아'의 아주 절실한 목표였다.


석현은 하루에 두 번 위성사진을 확인했고, 하루 한 번 상아와 짧은 통신을 주고받았다. 작업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고 통신에서 늘 상아는 유쾌했고 다른 대원들도 그랬다. 적어도 군인 위주로 인원을 파견한 중국보다는 빠른 속도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석현은 여름이 막 시작되던 그날, 위성사진을 확인하기 전에 먼저 통신을 연결했다. 하지만 들리는 것은 잡음뿐이었고, 팀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위성사진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마치 통신을 방해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그랬다. 병기가 기지 입구에서 보안요원과 신랑 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석현은 그를 들여보내도록 했다. 그냥 많이 마르고 망가진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조롱이나 비난이나 동정의 마음이 아니었다. 그냥 순수하게 그를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의 상실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위성사진이 도착했다. 병기가 익숙한 길을 따라 중앙관제소에 도착했을 때 관제소의 모두와 관제소 밖의 모두는 수 십 개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화면들은 모두 같은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병기는 그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문을 닫을 때까지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석현의 표정을 멀리서 보고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을 때 병기는 무엇이 잘못 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원래 '팀 상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은 붉은 바탕 속에 완벽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검은 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