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붉은 여름 2
일단 그것은 완벽한 검은 원이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완벽한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화성에서 보내온 위성사진만으로는 분명 그것은 검은 원이었다. 수 킬로 미터의 지름을 가진 그것은 1차 기지 전체, 그리고 그 주변까지를 포함한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모두는 순간 의아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불과 열두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존 기지 및 테라포밍 설비가 있었던 장소에 난데없는 검은 원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위성사진의 혹은 사진이 전송되는 과정에서의 혹은 화성을 돌고 있는 위성에 오류가 발생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 시간 뒤 중국과 미국의 기지가 건설된 장소에서도 동일한 원이 포함된 사진이 전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그것을 더 이상 오류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각 국의 기지는 이미 몇 개월 혹은 해를 넘겨서 기지를 건설하고 있었고,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하지만 그런 기지 전부가 검은 원으로 대체된 것을 누구도 설명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원이 아니었다. 각 국은 여러 장의 위성사진을 분석했고, 다른 나라의 위성이 촬영한 사진을 공유했다. 다음번 위성사진이 도착할 때쯤, 그리고 여전히 검은 원이 사라지지 않은 사진을 받아볼 때쯤, 각 국은 그것인 원이 아니라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은 원이 아닌, 검은 구덩이. 그것도 천문학적 금액이 투자된 설비와 설비 기초를 모두 삼켜 버린 구덩이였다. 화성을 탐사하는 기본 장비나 드론 혹은 탐사로봇은 모두 기지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구덩이를 측정할 만한 장비는 없었다. 일부 미국의 장비가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통신 중계장치나 화면 전송장치 등도 기지 내부 시설이었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검은 구덩이이며, 통신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거나 통신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설을 파괴시킨 재해라는 것이었다. 그것인 자연재해냐의 여부를 입에 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원을 그리는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석현이었다. 그의 아내인 상아와 상당한 시간 동안 함께 지낸 연구원들이 사라졌지만 석현은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먼저 대원들의 생존 여부를 생각해야 했고, 추가 파견 여부를 결정해야 했으며 추가 파견에서 필요한 인원과 장비를 결정해야 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이 프로젝트가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했다.
대원들의 생존은 미지의 영역으로 결정되었다. 자연적인 발생이라면 오히려 그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이 거주하거나 건설하고 있는 설비들은 상당한 강도를 지닌 것들이었으며 어느 정도 높이라면 파손의 정도는 허용범위일 것이었다. 통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반설비가 작동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독립된 모듈은 각각 수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장비들을 탑재하고 있었다. 그곳은 화성이었고, 집에서 먼 곳이었으므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서 모든 것은 설계되었다. 태양발전 시설이 없기 때문에 전력을 생산할 수는 없지만 아주 기본적인 생존 설비는 상당 기간 동안 작동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의 무사하다면 현장의 판단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 까닭. 하지만 모두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석현은 이야기했다. 만약 그것이 미지의 적에 이한 공격행위라면, 공격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대행위라면 그들의 생존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석현은 단언했다. 어떤 종류의 소통도 시도된 적이 없는 일방적인 적대행위라면 생존자에 대한 인격적 대우를 바라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화성 표면에 머무르고 있는 지구인은 없었으므로. 하지만 미지의 적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원들의 생존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석현은 이것에 대해 더 길게 논의할 필요가 없음을 역설했다.
다른 대원들을 추가로 파견하는 것은 의견이 갈렸다. 현재 2차 파견 인원들은 대부분 연구원이었고, 적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었다. 이들에게 단기간 전투훈련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미지의 적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사라진 대원들 이상으로 중요한 재원들이었다. 즉 희생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무인 장치를 대량으로 파견하자는 의견 역시 있었지만, 지구에서 화성의 무인 장치를 실시한 조정할 수는 없었다. 화성에서 제공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필요했고, 안전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과 이미 해당 장소에 도착해 있는 모듈을 설치하고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희생의 가능성 고려하는 인선이 이루어져야 했다. 즉 다수의 희생량이 필요하다고 석현은 이야기했다. 그리고 군인을 포함한 인선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화성에 가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건 후 시간이 지나자 그는 2차 파견의 책임자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의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 누구보다 사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의 위치가 그를 화성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선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그는 병기를 명단에 올렸다. 짧은 시간 훈련만으로 현장 작업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석현은 인선이 마무리되고 모든 것이 결정되고 정부 책임자들을 설득한 후에야 한 달여 만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 달만에 그는 처음으로 상아의 사진을 보며 밤을 보냈고, 조금 울었으며, 그 보다 더 많이 분노했다. 누군가에게도 털어놓지 않을 분노를. 그리고 그 시간 딸의 방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던 병기는 화성에 가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기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 없이 연락을 받았고, 다시 딸의 방에 누워 눈을 감았다. 화성에 도착할 때까지, 적어도 그때까지 자신의 삶이 연장된 것 같았다. 살아있다면 분명히 화성에 도착했을 아이를 대신해 화성의 푸른 석양을 눈에 담을 때까지는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