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름 9

2. 붉은 여름 3

by 지승유 아빠

병기가 어린 시절에는 대관람차를 보기 힘들었다. 서울이나 경기도 놀이공원에 있는 대관람차들은 대부분 더 빠르고 위험한 것으로 대체되었고, 그래서 초등학교에 다닐 시절에는 대관람차 자체를 모르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병기의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서울에 살았는데 아주 이따금 능동에 있었던 대관람차 이야기를 하곤 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 정속의 놀이기구가 어린이 대공원에 있을 때, 할아버지는 대관람차가 내려다보이는 바로 아래에 살았는데, 아무 할 일이 없는 주말이면 혼자 대관람차를 타러 갔다고 했다. 늘 대관람차는 한산했고, 줄을 서서 타는 일은 할아버지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없었다. 할아버지는 대공원과 동네가 이어진 입구를 지나 롤러코스터를 지나고 회전목마를 지나쳐 오르막 위에 홀로 우뚝한 대관람차를 탔다고 했다. 대관람차가 사라진 때까지. 대관람차 대신 다른 놀이기구가 세워지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노년을 속초에서 보냈는데, 그곳에 가면 늘 대관람차를 타러 가자고 했다. 병기가 아주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든 타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상관없었고, 조금 큰 이후에는 롤러코스터를 탄 후에 사주는 간식에 매료되었고, 나이가 더 든 후에는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할아버지는 대관람차가 보이는 곳에 수목장 해달라고 유언했지만, 결국 경기도에 묻혔다. 할아버지가 하얗게 재가 되어 묻히고 얼마 뒤, 병기는 혼자 속초에 갔다. 잘 모르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대관람차가 정속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관람차에 문이 열리고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갔는데,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관람차는 조금씩 흔들렸고, 귀에는 모르는 가수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관람차의 고도가 점차 높아지자 병기는 노래를 멈췄다. 바람소리와 바닷소리 사이에 원형으로 된 관람차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원형의 관람차가 어느 곳에도 연결되지 않고, 홀로 무척 고독하게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고도가 점점 높아지자, 병기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아무리 요청해도 이 정속의 놀이기구는 그를 빠르게 내려줄 수 없었고,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욕을 하든, 비명을 지르든 어떻게 해도 그는 공중에 머물 뿐이었다. 좌우에 대한 감각은 점차 사라지고, 위와 아래에 대한 감각만 극도로 예민해지는 느낌. 그는 바람과 공중 위에 약간의 공포심을 두고 머물러 있었다. 이윽고 공포심이 사라지자, 문득 편안함이 몰려왔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저속의 하지만 정속의 낙하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감각이 그를 오히려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대관람차가 최고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할 때쯤, 비로소 등을 기대고 자리에 평안하게 앉을 수 있었다. 다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가수였다.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서는 계속해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침에는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가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또 예전 가수의 오래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릴 적 듣던 2020년쯤, 부모님이 흥얼거리던 노래가. 우주선의 하루 중 절반은 무중력 상태였고, 나머지 절반은 인공중력 상태였다. 일반적인 생활을 하는 공간은 무중력 상태로, 잠을 자는 개인실은 중력 상태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병기는 하루의 절반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무중력 상태의 유영을 반복해야 했다. 그는 큰 대관람차에 탄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위와 아래의 구분이 있다면 그는 지구 대기를 떠나서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으므로. 물론 대관람차보다 상당히 많이 큰 공간을 이용하고 있지만 그리고 대관람차처럼 커다란 유리창과 개방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인공중력 상태로 그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화성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잠들지 못했고, 겨우 잠이 들고 나서는 곧 깨어났다. 그리고 깨어날 때마다 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자문해야 했고,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 몸을 내밀면 한참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무중력 상태의 대 관람차는 좌우뿐만 아니라 위와 아래도 알 수가 없었으므로 평생을 중력의 힘에 의지해 살아왔던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병기가 의지했던 중력은 까마득히 멀리 있었으며, 그가 의지했던 사람들은 더욱 멀리 있었으므로. 우주선에서 병기의 일과는 한산한 편이었다. 그의 주요 임무는 화성에 도착한 후에 시작이었으므로, 우주공간에서 그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안전은 인공지능과 전문가들이 책임지고 있었으므로, 병기는 무중력 상태의 절반을 계기판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내고 있었다. 계기판에 이상 신호가 발생되면 알리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였는데, 그들이 화성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도 그가 누군가에게 이상신호를 알릴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화성에서 보내오고 있는 지질 보고서를 읽는데 보냈다. 착륙지점에서 모듈 조각이 떨어져 있는 곳까지는 자기장 철로가 설치되어있었고, 차량 역시 이미 대기 중이었다. 기지를 건설할 곳의 지질 정보는 위성을 통해서 그에게 보내졌는데 늘 유사한 결과였고, 유사한 내용이었다. 완벽한 원으로 남겨진 1차 원정 기지의 지질조사 결과도 그에게 보내졌는데, 드론이 관측 가능한 깊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잠이 들지 않는 동안은 그의 방에 있는 손바닥만 한 창을 통해 밖을 보았는데, 그러는 동안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화성이 그의 목적이었지만 화성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고, 화성의 붉은 대기 대신, 암흑의 검은 원만이 잠들지 않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으므로. 그리고 그 검은 원은 또 다른 검은 원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대원들은 대부분 긴장한 상태였고, 그 긴장은 화성에 가까워올수록 점차 심해졌다. 실종자의 가족인 석현이 평정을 잃는 일이 있었다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수 있을 터였지만 이상하게도 석현은 침착했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했고, 감독했다. 필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꼭 해야 할 말을 잊지도 않았다. 그만이 아무런 동요 없이 화성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병기는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침착하기는 병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잃을 것이 없었다. 만약 화성으로 향하지 못했다면 스스로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정도로. 스스로 어떻게 될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목표가 있었다. 만약 화성에 도착한 후에도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화성의 붉은 대기와 푸른 석양을 목도한 후 머리를 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주복을 벗는다거나, 전동 공구를 사용한다거나, 아니면 그저 살아간다거나. 그래서 병기의 표면적 평화는 숨을 쉴 때마다, 창으로 밖을 바라볼 때마다, 꿈을 꿀 때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무너졌다가 다시 모여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다른 사람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는 자신을 똑바로도 아닌, 그저 세우기만도 벅차게 느껴졌다. 병기의 눈에 석현도 자신과 다르지 않게 보였다. 석현의 아내가 실종된 것은 이미 지난해였고, 1차 전진기지의 생존수단은 6개월이 한계였다. 그것도 전진기지의 시설이 모두 온전하다면 그랬다. 하지만 기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 아래로 사라졌고, 전기를 생산할 방법도 사라졌다. 식수나 생존 시설을 지속해서 작동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상아의 생존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석현을 붙잡고 있는 그 작은 희망이나 이성의 끈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끊어졌다 붙기를 반복하고 있을 터였다. 그의 침착과 이성이 다른 대원들에게는 안정감을 주는 안전장치처럼 보일지 몰라도 병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얼기설기 이어 붙고 있는 그의 이성의 끈은 아마 나중에 조각조각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질지 몰랐다. 그리고 그때는 석현도 병기도 함께 푸른 석양을 목도하러 가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런 보호 없이, 안전장치 없이 온전히 화성의 대기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