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름 2

1. 그 해 봄 2

by 지승유 아빠

붕괴는 예상된 일이었기 때문에 병기는 놀라지 않았다. 제안서에 제시한 방법은 연약한 지반에서 사용해야 하는 공법이었다. 조사에서 평균보다 높은 습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겉에서 보았을 때는 암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깊이 들어가지 않은 지점에는 많은 습기가 발견되었다. 주변에 지하수가 있거나 혹은 수분을 공급하는 장소가 있다는 이야기. 겉과는 다르게 안쪽 지반은 연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표면을 발파하고 안쪽은 장비를 이용해서 밀어내거나 터널 보링 머신을 사용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는 늘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의견을 적었다. 하지만 현장 소장의 경험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주변 터널 공사 경험상 안쪽은 단단할 것이며, 지금까지 자신이 발파 공법을 사용해서 실패한 경우가 없다는 점과 Shield 장비와 암반 굴착용 장비의 비용을 강조했다. 사실 터널 공사는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소장의 말이 틀린 점이 없었고, 여러 공법을 겸해야 한다는 점과 비용 그리고, 병기가 여러 해 현장을 떠나 있었다는 문제가 표면에 떠올랐다. 사실 병기는 그냥 데이터에 따라 제안을 해주었을 뿐이었으므로 그들의 판단을 반대할만한 명분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병기는 자신의 제안서가 거절당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터널이 붕괴된 것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였다. 발파가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부터 작업은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발파 직후 측면 안쪽이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지지대를 세우고 보강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토질이 무르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모든 것은 병기의 보고서와 같았지만 병기의 보고서는 현장에 닿지 못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공법을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현장 소장과 책임자는 병기의 보고서가 누락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고, 터널의 길이가 생각보다 짧았기 때문에 보강만 충실하게 진행된다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파를 멈추고 내벽 보강을 시도했는데, 안쪽에서 물에 생각보다 많이 흘러나왔고, 그들이 준비한 콘크리트 품질로는 측면을 보강하기 힘들었다. 모든 작업을 멈추고 사람들을 내보내고 얼마 후 측면부터 서서히 터널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대량의 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지질조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병기의 보고서가 현장에 도달하지 못한 채 중간에서 사라졌다는 것도 밝혀졌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책임자가 물러난 후 현장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병기는 담당자의 전화를 차단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담당자와 언성을 높일 일은 없었다.


병기는 몇 년째, 지방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고, 그의 수업 자체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현장에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해에는 전혀 다른 제안을 받았고, 그래서 당분간 수업을 대신할 후배를 학교에 소개해 준 후,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가 제안받은 것은 화성의 지질 조사와 화성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파견 인원들을 지도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론보다는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안의 세부내용을 살펴보면서 자신이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성에 테라포밍을 실시하기 전에, 화성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구역을 건설해야 하는 일이었다. 패러 테라포밍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화성에서 식량이나 물을 자급할 수 있는 지구화된 지역을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장기간 테라포밍을 실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보낼 수 있는 물자는 한정되어 있고, 자금 또한 그렇기 때문에 식량이나 물의 자급이 이루어진다면 상당한 자금과 노력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패러 테라포밍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화성에서 적합한 지형을 찾고 평탄화 작업을 통해 돔형 구조물을 건설할 수 있도록 가공해야만 했다. 완전한 평지의 경우에는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암석이나 구조물이 있는 곳을 가공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건축학이나 시추 혹은 공법에 대한 기본 지식이나 실행 능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론보다는 실제 건축이나 지질조사 과정을 현장에서 실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고, 그것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현장에서 근무한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또 하나, 패러 테라포밍 기지와는 별도로 패러 테라포밍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돔형의 지구화된 공간은 매우 매력적이긴 했지만, 화성은 아직 미지의 공간이고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구화되지 않은 현장에 맞는 기지 건설도 두 번째 계획에 포함시켜야 했다. 이곳은 패러 테라포밍 기지에 비해서는 좁고 어둡고 불편하며 모든 자원을 지구에 의존해야 하는 지하에 건설될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좁은 협곡이나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지하공간, 혹은 좁은 분지를 탐색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도 현장요원들의 교육이 필요했다. 이곳에서는 준비된 모듈이 조립되어 들어갈 것인데, 이 모듈들은 좁지만 여러 방향에서 조립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어떤 공간에라도 설치할 수 있고, 돌발상황이 발생할 시에는 모듈을 분리할 수도 있게 설계되었다. 모듈은 외부와 단절되어도 100시간 이상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장비가 탑재되어 있어 인원들의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 장비였다. 패러 테라포밍 기지가 성공적으로 건설된다면 이곳은 비상시에 사용될 대피소나 창고처럼 사용될 것이며, 다른 나라와의 화성 영토 분쟁의 근거로도 사용될 수 있다. 모듈이 설치된 곳으로부터 반경 500킬로미터의 공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이는 후에 테라포밍 된, 즉 지구화된 화성 전체에 대한 권리 주장에 필요한 절차이기도 했다.


하지만 병기는 이런 절차나 정치적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파견 인원의 교육에만 모든 노력을 쏟을 뿐이었다. 장비나 장소는 완벽했고, 교육생들조차 이미 선별된 인원들이었다. 실무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수한 과학자나 군인들이었기 때문에 교육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3월에 시작된 교육은 6월쯤, 그러니까 여름이 되기 전에 이미 마무리되고 있었고, 병기는 여름휴가 이후에 두 번째 프로젝트의 지질 조사와 파견 인원 교육을 맡을 예정이었다. 완벽한 시설과 완벽한 학생들. 병기는 자신의 인생에 더없이 완벽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6월 말까지 지도를 마치고 한 달 동안 휴가를 가질 예정이었고, 아내와 딸을 데리고 갈 여행지를 검색하는데 조금씩 많은 노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6월 말, 어느 날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날, 그는 여행지의 예약을 확인하고 있었고, 그의 아내와 딸은 여행을 위한 옷을 산 후 해가 질 무렵 경기도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