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교환일기.

by 지승유 아빠

오늘은 태풍이 많아졌다.

밖에 나가 놀고 싶긴 했는데, 포기했다.

왜냐하면 말을 못 했기 때문이다.

오늘 비즈로 만든 병아리가 완성되었다. 정말 귀여웠다.

예쁜 송편도 척척, 비즈도 척척, 바느질도 그림도 인형도 척척 만들어내는 유야.

너도 봐서 알겠지만 아빠는 손재주가 참 없는 편이거든. 엄마도 인정했잖아. 아주 격하게.

물론 전등 정도 교체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그 이상의 솜씨랄까 예술적 혹은 기술적 재능이랄까, 그런 게 필요한 일은 정말 잘하지 못해. 그래서 엄마가 특별한 기술력이 필요한 일을 요구하면 아빠는 도망치고 싶어 져.


조금 비겁해 보이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아빠가 원래 똥 손에다가 겁이 많잖아. 물론 귀신은 안 무서워하지.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 못한다고 하고, 못 만든다고 하니까 어느새 자신감이 없어져 버렸어. 그래서 어디 가서 그림 그리라고 하면 구석에다가 조그맣게 그리거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야.


넌 기억 안 날지 모르지만. 예전에 창의 미술에서 유야가 그린 그림을 보고 엄청 감탄한 적이 있단다.

겨울이었고 방학이었는데, 제주시까지 유야랑 둘이만 가서 유야가 미술 수업하는 동안 아빠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 차에 앉아서 책을 보기도 하고, 커피를 한 잔사서 공원에 멍하고 앉아 있기도 했는데 겨울이었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유야가 수업받고 있는 건물만 멍하게 바라보기도 했었지.

수업이 끝나고 반 아이들 모두 커다란 종이에 다 같이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한눈에 유야 그림을 알아볼 수 있었단다. 커다란 종이 한가운데 가장 커다랗게 그린 그림. 그 큰 도화지 한가운데 너무 자신감 있게 위치한 그림을 보고 아빠는 참 기분이 좋았단다.

그리고 그 뒤로도 유야가 망설이지 않고 한 번에 그림을 완성하는 모습을 볼 때도, 뭐든지 직접 만들어 보려고 노력할 때도 기분이 좋았어. 부럽기도 했고. 그림 잘 그리는 것도, 자신감 있는 모습도.

유야가 설명서 없이 종이접기를 하고, 혼자 비즈며, 팔찌며를 만들기도 하고 암튼 온갖 아빠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을 만드는 모습이 아빠는 좋단다.

사실 아빠는 가끔 생각하거든, 다른 아이들이 하는 스마트폰 게임이나 텔레비전 시청을 많이 못하게 해서 친구들과 말이 안 통하거나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남는 시간에 유야가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하는 모습은 늘 자랑스럽단다.


혹시 학교 생활을 하면서 친구관계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있을지도 몰라. 지금의 자신감이 조금씩 무너질지도 모르고. 성적일 수도 있고, 수업일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유야를 괴롭힐 수도 있지. 하지만 유야 아무도 너를 다치게 할 수 없단다.


아빠가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는 바람만 심하게 불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냥 놀러 올 때는 신기하다고 생각하기만 했는데 수시로 섬을 둘러싸고 불어오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었거든. 태풍이 우리 집을, 우리 가족을, 혹은 가족의 삶을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무서웠어. 밤새도록 창문을 점검하고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를 따라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

그런데 사실,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빠는 그랬단다.

아마 유야 같은 자신감이 없어서였겠지.


그때도 엄마랑 유야는 잘 잤어. 아빠만 확실하지도 않은 두려움에 불안해했을 뿐이었고.

지금은 아빠도 잘 잔단다. 지금 아빠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세탁기 속에 널어야 하는 빨래들과 너희가 부르는 소리뿐이지. 아무리 깊이 잠들어도 널어야 하는 빨래가 있다면 그리고 물 달라고, 쉬 마렵다고 아빠를 부르는 너희가 있다면 잘 때도 귀를,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있을게.


태풍이 불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늘 평화롭고 명랑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