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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팔 (고2)

by 제이

SNS가 없던 옛날에는 뭘 하고 지냈을까?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선선한 가을 밤이었다. 나는 창 밖의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라디오에서 나오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음악방송을 듣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인기있는 코너 중 하나는 송승환 아저씨가 하루에 하나씩 청취자가 보내준 사연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연이 선택된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면 청취자들이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험공부 한답시고 책상에 앉아있긴 했지만 원래 시험 전에는 이상한 분야에 관심이 더 가는 법. 평소에는 보지도 않던 따분한 역사 다큐멘터리마저 재미있어지지 않던가? 무엇에 홀렸는지 나는 편지지를 꺼내서 사연을 쓰기 시작했다. 내용은 집에서 기르던 선인장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커다란 핑크색 꽃을 예쁘게 피웠는데 곧 떨어지려고 해서 너무 가슴아프다는,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내용. 나는 가을을 심하게 타던 고2 짜리 남학생의 머리로 짜낼 수 있는 가장 유치하고 센치한 글을 써서 다음날 학교 가는 길에 우체통에 넣었다. 그러고는 시험 치느라 바빠서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났을 때 부모님이 나를 불렀다. “여기 좀 앉아봐라.” 아버지가 들고 와 보여주시는 건 엄청난 양의 각양각색의 편지봉투가 든 라면박스. 언뜻 봐도 족히 100통은 넘어 보였다. “넌 도대체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기에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많은 편지들이 들이닥치고 있느냐? 오늘은 집배원 아저씨가 ‘여긴 뭐 하는 집입니까?’ 라고 물어보시더라.”

나는 라디오에 사연을 써서 보냈다고 사실대로 말했고 이 편지들은 나와 펜팔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보낸 편지라고 말하자, 부모님은 걱정을 태산같이 하셨다. “니가 지금 이런 짓을 할 때냐? 이래가지고 대학을 갈 수 있겠냐?” 다행히 어머니가 내편이 되어 주셨다. “네 나이 때는 이성친구도 만나고 싶고 펜팔도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니 두 가지 조건만 지켜주면 허락해 주겠다”고 하셨다. 지금보다 모의고사 석차가 1등이라도 더 떨어지면 펜팔은 금지하고, 오직 편지로만 사귀지 절대로 실제 만남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조건을 수용했고 이때부터 나의 펜팔생활이 시작되었다. 편지는 그 후에도 며칠 동안 미친듯이 쇄도했다. 처음엔 대도시에서 보낸 편지들이 오더니 나중에는 멀리 외딴 섬에서 보낸 편지까지 왔다. 거의 대부분이 내 또래 여학생들이었지만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보낸 편지들이 왔다. 시를 써서 보낸 사람, 사진을 보내온 사람, 네잎클로버를 붙여준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대학학보를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정성껏 답장을 썼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거의 대부분의 휴식시간을 티비도 보지 않고 편지만 썼다. 그러자 며칠 후엔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내 편지를 받은 사람도 부모의 검열이 있었을 것이다. 혹은 가을밤이 주는 분위기에 휩쓸려 멋모르고 편지를 보냈다가 내 답장을 받고는 정신을 차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답장이 다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50명 이상의 여학생들과 꾸준히 서신교환을 하게 되었다. 펜팔이 너무 좋아서 난 혹시 이걸 잃어버리게 될까 공부도 그전보다 더 열심히 했다.

시간이 없어서 학교에 가서도 쉬는 시간에 편지를 썼는데 그걸 본 몇몇 친한 친구는 내게 부탁을 했다. 자기도 펜팔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호르몬이 차고 넘치던 10대들이라 주소를 보내면 금방 다른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그런 식으로 여러 명의 친구를 소개해 주자 나는 학교에서 인기있는 학생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연락이 흐지부지된 친구들이 많았지만 몇 명의 친구들과의 연락은 고3때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서신을 주고 받았다.

대학에 합격한 나는 드디어 부모님께 펜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았다. 고3 겨울 방학에 나는 일주일간의 전국 일주를 계획했고, 목적지는 10여명의 펜팔들이 사는 도시들이었다.1년 이상 얼굴도 모르고 글로만 대화하던 초면의 여성들을 실제로 만난다는 기쁨에 19살 제이는 세상을 다 가진 마음이었다. 대학을 간 친구들, 취업을 한 친구들, 뭘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들.

어떤 사람은 글과 사람이 똑같았고,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나와 대화하던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생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이내 우리는 오래 사귄 사람처럼 이야기가 술술 풀렸고 나는 행복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몇몇 친구들과는 대학 축제에 가서도 만났고 대학 2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서까지도 만났다. 쫄병 때는 주말에 고참들 미팅을 시켜주려고 숙대 다니던 펜팔친구와 그 친구들을 용산 미군부대에 데려와서 맛있는 것도 같이 사먹고 볼링도 치고 놀았다.

내 펜팔의 여정은 대학 3학년 복학을 하고 유학준비에 바빠지면서 끝을 맺게 되었다.

혹시 그 옛날 송승환 아저씨가 읽어 준 죽어가는 선인장꽃의 사연을 알고 있는 50대 여성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지금 어디에서 뭘 하시든지 잘 사시기 바란다.


이제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에 답을 드린다.


옛날 사람들도 방법만 달랐지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잘 놀았다. SNS 에서 사람 만나고 친해지는 거 전혀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빌어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인류는 자기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항상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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