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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an 17. 2024

다언어자의 속사정

많은 사람들이 영어 공부를 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또한 여러 외국어를 접하면서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 영어와 독일어를 배운 경험을 중심으로 '외국어를 접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고통

언어를 배울 때 내게 느껴지는 고통은, 말하자면 영혼을 태워가며 뇌에서 언어를 짜내는 느낌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껴 본 적이 있을 텐데, 당연히 외국어를 할 때는 이런 경험이 매 순간 반복되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는, 과부하가 오면 머리 스스로가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마치 수명이 깎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예전에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울 때 하루 종일 독일어를 쓰려고 노력했었는데, 늦은 밤이면 더 이상 독일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곤 했다. 굉장히 진을 뺐지만, 그 타이밍에서야 머리에 저장이 되는 건지 다음날이 되면 실력이 눈에 띄게 올라와 있었다. 나를 새로움에 적응시키는 것은 참으로 고된 과정이다.

즐겁게 했던 작문숙제지만, 정말 오래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즐거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참 재미있다. 먼저,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즐거움이 있다. 이때의 외국어는 마치 피아노 연주나 드로잉과 같이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외국어는 쾌감을 준다. 외국인이 나의 뜻을 이해했을 때와, 내가 외국어를 해석하고 이해했을 때 느껴지는 그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을 알게 된다. 독일에서는 헤어지는 인사로 "다음 볼 때까지!"라거나 "좋은 드라이브!"라고 한다. 다른 언어의 색다른 구조를 접하면서, 그 방식을 이해하다 보면 '아,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구나' 하며 시야가 넓어진다.

시덥잖은 얘기부터 중요하거나 깊은 대화까지 그 자체로 즐겁다.


뒤섞임

내가 처음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영어의 문법이 그렇게 방해였다. 이미 영문법을 열심히 단련해 놓은 탓에(?),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구조를 내손으로 하나하나 다시 부수고 새로 조각해야 했다. 영어 조각으로 독일어 퍼즐 맞추기를 하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두 언어가 서로 뒤섞이더니, 영어를 말할 때 독일어 문법으로 문장을 만든다거나, 되려 영어 단어는 기억이 안 나고 독일어만 계속 떠오르기도 했다. 애써 여러 언어를 공부해도 혼란만 오는 게 아닌지 억울하기도 했다. 뇌가 각각의 언어마다 별도의 공간을 주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동시에 켤 수 있는 게 아니라, 가장 자주 쓰는 언어를 등록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독일에서 알바했던 레스토랑.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3개 언어를 써야 했다.


필요성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며 느낀 건데, 세상에 영어를 쓰는 민족이 매우 많다. 자국어가 독립적으로 존재해도 영어를 자유롭게 할 줄 아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자국어보다 영어를 더 자주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짐작컨대 자국 문화만으로 부족한 경우 영미권 문화가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문화가 독립적으로 매우 강하게 발달된 경우라서, 영어가 익숙하지도 않고 필요성도 덩달아 떨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영어는 여전히 만국공용어로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

   아쉽게도 영어를 제외한 여타 다른 언어들의 발전 전망은 썩 좋지 못하다. 영어가 힘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언어들이 힘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모였지만, 사실 우리는 영어로 소통하는게 더 효율적이었다.




사실 언어는 어른이 배우기에 투자 대비 효용이 '크게' 떨어진다. 그리고 다른 학문과 다르게 그 자체로는 전문성도 떨어진다. 언어는 주로 소통이 필요한 상황에서 '수단'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번역 기술은 컴퓨팅과 AI를 거치면서 그 어떤 분야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필요성은 자신의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평생 알 필요 없는 인생도 있고, 알면 도움이 되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언어가 가진 다양성과 아름다움은 인류의 유산으로서 아주 높이 여김 받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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