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좋아하는작가 탄생기 / 먹고 살려고 #도시농부 /#바질페스토레시피
당신은 생을 길다고 여기는가?
아님 찰나로 여기는가?
나는 가끔 생의 이중성을 몸소 실험하고 사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생은 가까이서 보면, 아주 길고 지루한 하루하루였고, 멀리서 보면 짧은 찰나에 갑자기 정반대로 각도를 틀어 버리는. 그 천둥벌거숭이는 틀어진 각도의 길로, 또 하루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냈다.
[난생처음 시리즈] 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 생의 각도를 틀어버린 한 순간, 그 경험들을 갈무리 한다.
이화동으로 이사 온 지 2년째. (지금은 다른 집에 산다.) 보자마다 탁 트인 테라스가 좋아 덜컥 계약을 해놓고, 이사하고 일주일 후 "집은 좁고, 테라스와 텃밭은 뜨거워서 당최 적응이 안돼!"라며 투덜댔다. 근데 솔직히 낮엔 해가 너무 뜨거웠고, 밤엔 바람에 너무 많고 벌레도 너무 많았다.역시, 삶은 늘 예상처럼 굴러가 주질 않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건 이뿐이 아니다. 나는 곧 그 땡볕으로 스스로 걸어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농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듬성듬성 꽃이 조금씩 있던 화단을 엎고, 상추 치커리 로메인 깻잎 토마토 바질... 수많은 먹거리를 심었다.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고 간단했다. 보.이.스.피.싱.
나는 돌아가신 엄마가 남겨주신 청약통장과 보험을 모두 해지해서 검찰청 앞으로 가 내 손으로 돈을 넘겼다. 1000만 원 정도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쎄함-이 소름 돋듯 덮쳐왔다. 나는 집 문을 열며 경찰서에 바로 신고를 했다. 경찰이 집으로 와서 나를 데려가, 3시간 이상 아주 상세하게 조서를 썼다. 나는 울지는 않았다. 그저 온몸에서 힘이 빠지지 않아. 경련을 몇 번 일으켰을 뿐이었다. 경찰님이 오히려
"검사도 변호사도 당했어요. 작가님 자책 마시고, 주변에 많이 알리세요. 그래야 날아가요."
오빠가 경찰서로 달려와 나를 다시 집까지 데려다 놨다. 별말 없이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는 현금을 다 꺼내 주고 갔다. 그게 내 전재산이 됐다. 한 달... 아니 일주일은 살 수 있을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샐러드를 먹어야 겠다 생각했다.
집 근처 종로꽃시장에 가서, 3개 천원인 모종들을 사 왔다. 동네 주민센터에서 주는 옥상텃밭 재료도 신청해서 받았다. 그리고 씨앗들도 싹을 틔웠다.
나의 대학 전공은 원예학과 생물학이다. 그래서 대학시절 학교 농장에 대한 기억이 좀 있다. 육종학이나 과수학의 실습실이 농장이었다. (여대생들이 하이힐을 신고 밭고랑에 푹푹 빠지며 식물을 돌보고 있는 상상을 하면 된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식물을 좋아한다는 걸.
젊은 시절 큰 병을 앓았던 아버지는 집에서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분이었는데, 아버지의 아침루틴 중 하나가 화분 300개를 살피고 물을 주는 것이었다. 결국, 엄마는 우리 집의 테라스를 유리로 덮어 온실처럼 마련해 주셨다. 아버지는 신문을 보고, 밥을 먹고, 오전 내내 거기에서 식물을 돌보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좋아한 적은 없었다.그런데 스무 살에 처음 안 것이다. 내가 아버지와 같은 취향이라니! 깨닫는 순간 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취향을 믿고 싶지 않아! 마치 '발가락이 닮았다.'같은 충격이랄까.
그게 "식물을 좋아하는" 작가가 된 시작이다.
여튼 그 이후, 내 손으로 심고 가꾸어서 따 먹는 일이 나의 주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싹을 틔운 바질 농사가 어마어마한 풍작이었다. 작년에 키우던 바질 두세 개를 (귀찮아서) 두었더니, 그 씨가 떨어져 봄에 텃밭 전부를 덮었다. (다음 해 봄이 오기 직전 뽑았으니, 씨가 한 백개는 떨어졌겠지)
꼴꼴한 놈들만 골라 모종포트에 옮겨 심어 키웠다.바질 모종이 50개는 되어 버렸다. 친구들에게 분양을 하고 또 하고 또 했는데도, 30개는 남았다.결국 바질이 내 텃밭의 1/3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너무 쑥쑥 자라 1인가구가 감당하기 힘들게 됐다. 2인가구인 절친이 "집에 국산잣도 있고 그라인더도 있어. 가져와"란다. 그래서 나는 #바질페스토 에 도전했다.
300g 정도 바질을 따는데만도, 땀이 뚝뚝 났다. 친구 집에 가면서, 마트에서 레몬을 샀고, 올리브오일 찾다 찾다 없어서 결국 카놀라유로 대체했다. 잣이 부족해서 캐슈너트추가. 그라인더에 한 번에 잘 안 갈려서 밀고 또 밀기. 여러 역경 끝에 결국 완성!
나의 야매 레시피는 의외로 엄청 맛있었다. 혹 대체품들이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라.
바질생잎/ 260g
잣과 캐슈너트/ 130g (잎 양의 30~50% 정도)
카놀라유(올리브오일 대신)/ 260ml
이름 모를 치즈 (파마산대신)/ 약간
레몬즙/ 약간
마늘/ 한 숟가락
후추+소금/ 간 보면서 적당히
다 넣고 그라인더로 간다
소독한 병에 담아 완성한다
방울토마토에 칼집을 내, 살짝 데친다
껍질을 벗긴다
양파 바질잎을 다진다
올리브유 발사믹식초 꿀 레몬즙 소금 후추를 적당량 넣어 버무린다
소독한 병에 어 완성한다
사실, 그렇게나 힘들었던 건 #방울토마토마리네이드 까지 해서 일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도시농부를 하는 것의 커다란 단점을 깨닫는 순간이다. 식물은 (내가 먹는 것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탐스러운 먹거리 재료들을 버릴 수 없으니,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 모종 네 개를 심었을 뿐인데, 벌써 숲을 이루고 있는 방울토마토. 바질 밭을 솎아내면서, 방울토마토를 외면할 수 없던 현실. 고로 도시농부는 키우는 실력 말고도, 요리 실력이 필수다. 그것을 고생 후 깨달았다.
짜리라란!!
빵에 발라 먹으니, 우앗!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진짜진짜진짜진짜 너무나 맛있는 거! 동네방네 "제가 만들었어요" 자랑하고 싶은 맛! 요리 똥손도 할 수 있습니다!
어설픈 도시 농부로 3년을 살았다. 주변의 감사한 마음과 도움을 엄청 많이 받았고, 상추농사를 나눠드리며, 소박하게나마 갚을 줄도 알게 되었다. 예전의 나라면, 절대로 안 할 일이었다. 도움을 받기도 힘들어하고, 이렇게 손부끄러운 것들로 갚는 건 더 힘들었을 거다.
그리고 생활은 "'돈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막연한 긍정에너지가 심겼다.
나의 인생에 긍정을 한 스푼 얹어준 '난생처음 도시농부' (이게 1탄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