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체중 55.9
11/2에 남편이 다친 후 내가 더 아팠다.
토하고 열나고 수시고 가슴에 뜨거운 열기가 오르고 목이 부었다.
가슴통증도 물론이고.
아예 신체화 증상이 정신적 충격과 동시에 일어난다.
집에 있어봐야 오히려 내 병수발이나 들게 할 것 같아서 남편은 출근하도록 했다.
결국 남편은 다치고서 하루도 못 쉰 거다. 정말 미안하다. 다친 건 그 사람인데.
ADHD 증상 중 나를 평생 가장 괴롭히는 건 '내적 안절부절 못하기'이다. 가만히 있어도 전혀 안 쉬어진다.
나는 아프면서도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해서 집안일을 많이 했다. 대청소, 빨래.
그래서 더 병이 났겠지. 쉬어야 낫지. 하지만 나는 원래 못 쉰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뭐 하면서 쉬지?'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
아 머리아파. 그와중에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도 다 읽었다.
정말 재미는 있는데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고 (머서의 의미, 바티 부부가 설정해둔 '공포'는 릭 데카드에게 왜 효과가 있지 않았는지?) 작가 필립 K 딕의 마약 중독도 싫었다. 이런 사례가 '마약이 창조성을 맘껏 펼치게 해준다면, 누군가에게는 허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재로서의 매력 때문인지 '매우 젊은'(10~20대) 여성과 거듭 사랑에 빠지면서, 결혼/동거하고 나면 이혼하고 헤어지고... ㅎㅎ 남자로서는 참 싫네.
하지만 천재임은 분명하다. 대단하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완전히 뭐... 생각도 못하고
주인공 이름마저 까먹어버렸다.
지금이 11월인데다가 7일인 걸 알고 비명을 질렀다.
11월 초반 일주일은 그냥 사고 충격으로 보냈네.
이정도 사고로 이러면 어떻게 살아가겠어.
결국 내과라도 한 번 가봤다. 4년째 다니는 병원.
나: 며칠 전 충겨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 뒤로 열도 나고 토하고 왼팔 다리에 힘도 빠지고… 정신과 증상인 것 같은데 임신 준비중이라서 약은 못 먹을 것 같고 해서 내과로 와봤다.
의사: 임신 준비중이라면, 내과 약도 먹기 어렵다.
나: 심전도라도 찍어보면 어떨까.
의사: 비싼 검사도 아니니 한 번 해보자.
(심전도 검사 진행)
의사: 아무 이상 없다.
나: (멋적음+허탈) 역시 그렇군요.
의사: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몰라도 충격을 받으셨다니 정신과에 한 번 가보시는 게 나을 것 같다.
나: 남편이 눈앞에서 쓰러졌다. 중량 조끼를 입고 무거운 걸 끌고 들고 하다 쓰러졌다.
의사: (한결 표정이 밝아지며) 정황상 미주신경실신으로 보인다. 내가 20년 이상 의사생활 하며 이런저런일을 겪고 이제는 웬만한,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덤덤하다.
여기서 의사 말이 진짜 웃겼다.
"그런데 저도 가족이 다치면 무슨 레지던트 1년차처럼 허둥대더라니까요?"
레지던트 1년차가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레지던트 1년차도 저보다는 아픈사람 많이 보지 않았을까…?
의사: 나도 그런데 얼마나 놀라셨겠나.
나: 머리가 제 발 앞에 떨어졌다니까요? 무슨 죽은 건 줄 알았어요.
의사: 그럴 수 있다. 놀랄 만한 상황이다. 남편은 괜찮나.
나: 치료하고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병원 가래도 안 갔다.
의사: 의식소실이 있었나?
나: 아주 잠깐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 잠시라도 의식소실이 있었으면 대학병원에 가서 상황 설명하고 심장내과, 신경과 검사는 받아보는 게 좋다. 미주신경실신은 심장 아니면 신경 문제고, 의식소실은 잠깐이어도 검사받아보는 게 낫다.
의사가 진단명을 알려주고 설명해주고 병원도 가라고 하고 과도 알려주니 적이 위안이 되었다.
의사: 나도 여러 문제를 겪으며 살아가지만, 자신이 좀 예민하다면 자신을 잘 이해하고 마음을 잘 다스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 알겠습니다…
이토록 자세한 상담을 받고 심전도 검사까지 했는데 병원비는 6,800원. 놀랍다.
보기드물게 친절한 의사라서 감사하고 좋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미주신경실신에 대해 검색해보더니 자기 상황에 맞다고, 병원에 가보겠다 한다.
그래 의사는 전문가니까 의견을 따라야지. 내가 얘기해봤자 난 불안장애 환자 호들갑쟁이일뿐이고?
ㅠㅠ (사실이지..)
그래도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럴 줄 알았지만 몸의 이상은 없고,
남편 증상 이름 알았고 병원도 가겠다 하니
긴장이 풀려 아주 일찍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