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치료기 251226

by 서한겸

아침 체중 57.2


어느덧 결혼한지 10년이 됐다. 오래됐다.

살림이 전보다는 많이 늘었다.

설거지 청소 등등을 빠르게, 효율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고 결정하는 나라니 결혼 전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요리는 여전히 그냥 익혀 먹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냉장고 안팎의 식재료 관리도 잘 하고.

우리집은 냉장고를 일부러 작은 걸 사서 양가 어머님들이 지금까지도, 10년 내내 잔소리를 하시지만

주기적으로 텅텅 빌 정도로 잘 파먹는다. 아무리 싸도 있는 거 다 먹고 사고 자주 장 보고.


이전과 같은 에세이는 이제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즉각적이고 날것이고 미친듯이 빠르게 전개되고 사방으로 연결되고 날카롭고 거의 늘 아팠으며 나 자신에게 잔인할 정도로 솔직했다. 괴로울수록 재밌고 의미있는 글이 나왔고 글이 잘될수록 더 깊이 고통스러웠다.

아마 계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걸 그만두는 대신 약을 먹고 살아남은 거다.

과민함과 과잉 연상을 그래도 아꼈고 즐겼고 자랑스럽게도 생각했다. 내가 잘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탱할 수 없었고 (실제로 숨이 안 쉬어졌고) 나는 그걸 잃어야 했다. 슬프다. 이젠 받아들이고 애도해야겠다. 내가 좋아했던 감각만 되찾고싶지만, 고통과 쾌감이 같은 길로 흘렀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고통이 쾌감이고 쾌감이 고통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오랫동안 그랬다. 다시 그렇게 할 수도 살 수도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작년부터 소설 쓰기 수업도 듣긴 했지만 이제와서야... 내 글쓰기가 변해야 함을 받아들인다.

그래도 그 병적이고 미친듯한 시기에 책을 세 권 남길 수 있었음에 깊이 감사하고 안도한다.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묻힌 책들이지만 못난 자식도 부모에게는 천금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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