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10년 뒤 지금을 돌아보면 어떨까, 뭘 안 하면 아쉬울까 중심으로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을 고민할 때,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다. 이것도 아닌 면이 있고 저것도 아닌 면이 있다. 그러다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데도 계속 후회되고 마음이 불안하다. 그러다가 결국,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리면 갑자기 몸과 마음이 확 가벼워지는 때가 있다. 손해를 보든, 비이성적이든간에, 그게 결국 내가 진짜로 원하고 나에게 편안한 결정인 것이다. 신체화 증상 덕분인지 나는 이를 몸으로 즉시 느낀다.
고통=노력=고통?
"힘들지 않으면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 노력하면 힘들기 마련이지만, '고통이 없으면 노력한 게 아니다' (그리고 노력하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여겨왔다.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뭔가를 잘해야, 착해야' 이런 식으로 조건적으로만 허용된다는 감각에 절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게 '고통스럽지 않으면 안 돼'의 형태로 고착되었다. 물론 편안한 나 자신 그대로는 절대 충분치 않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고통에 의지해 살아왔다. 고통과 만족을 분리할 수 없었고 고통스러워야 만족했고 당연히 만족스러울수록 고통스러웠다. 집중은 긴장과, 성과는 생존과 직결시켰다. 고통은 나의 뼈대다. 고통이 사라지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더 이상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 다른 뼈대로 바꿔야 할 때다.
긴장 없이도 집중할 수 있다
호흡이 너무 안 돼서 2 주간 기타 수업을 쉬었다. 연휴 동안 호흡 문제가 없다가 오늘 기타 수업받는 중 숨 진짜 안 쉬어졌다. 그리고 글도 조금 썼더니 더 안 쉬어진다. 명상과 요가를 해보겠다. (하지만 또 '명상과 요가로 이겨내야지!' 같은 전투, 다짐 형태가 된다. 웃기다.)
몰입할 때 신경계 긴장을 낮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만 지속할 수 있다. 나는 지속하고 싶다. 글 쓰는 게 재밌고 꼭 쓰고 싶은 글이 많다. MRI 소리 듣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명상도.
벗어나자
오랫동안 email을 주고받아 온 외국인 친구가 있다. 그는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다. 그도 나도, 오랜 우울을 견디고 있다. 우리는 서로 아주 깊고 내밀하고 주로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 왔다. 하지만 얼마 전 나는 갑자기 모든 대화 주제를 끊고,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했으니 앞으로에 대해,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집중해 보고 싶다는 짧은 메일을 보냈다. 그도 뭔가 느꼈는지 비슷한 분위기의 답장을 해 왔다.
우리 둘 다 어떤 상실에 대해 계속 생각했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벗어나고 싶나 보다.
결정
가지고 있던 그림 반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은 걸리겠지.
나는 내가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있는 그대로. '나는 예쁘고 충분하고 똑똑하고 잘났어'가 아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결정했다. 그랬더니 마음과 몸이 아주 가벼워졌다. 나는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