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폭력

by 서한겸

내일 매일 오가던 지하철 역 화장실에서 불법 설치된 카메라가 발견된 이후로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신체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었다.


모든 사람이 대소변을 보고 섹스를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듣는다는 게 왜 피해가 되고 범죄가 되는가? 이건 '뺨을 맞으니까 아팠는데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다'는 식의 궁금증이다.


오감 중 촉각 미각 후각 청각과 달리 시각은, 보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그 보이는 대상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캔버스가 삭듯이 풍화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단 1명의 사람도 그것을 보지 않아도 일어날 일이다.


디지털 성폭력으로 전해지는 것은 시각적인 측면만은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화된 청각 또는 언어 역시 일상에서의 시각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몇 명이 봐도, 몇 명이 저장해 놔도 닳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감정은 전달한다. 이게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정점식 통합당 의원의 '이런 영상을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문제냐'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보는 이들에게는 딱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닌 거다. '즐겨지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게 인식이 안 된다.


아 그런데 나도 그런 범죄자를 사람이나 인간으로 여기지 않음에도 여전히 힘들고 상처가 되는 것은 왜인가? 호랑이가 무섭듯 무서울 뿐만 아니라 비인간에게 왜 감정적 상처를 입는가? 금수가 말을 하면 아마 이럴 것이다. 오크나 그런 건가?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사람'에 피해자나 여성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이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고 한 데서 나는 크게 깨달았다. 아. 생생하고 구체적인 놀잇감이구나. 누군가에게는. 그 대상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고 감정적인 문제도 아니다. 감정이 없나? 싶지만 아마 그냥 그 대상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서이다. '그냥 성적인 문제라고. 이해를 못하네.' 하지만 그렇다기엔 상대를 무슨녀로 소비하며 신상을 터는 일이 극도로 많다.


그리고 예술작품. 그래. 네가 화장실 가고 섹스하는 거, 다른 사람들도 알잖아. 그거 좀 보면 어때서? 이 말이 맞다면 모든 공연과 예술이 의미가 없다. '심청가' 무슨 내용인지 알지? 그러면 명창이 심청가를 부르는 것을 보고 들을 필요가 없는 거야? 아니다. 희곡으로 읽는 것이랑 공연을 보고 듣는 것은 다르다. 상상과 실제는 다르다. 대본과 영화가 다르듯이.


하지만 이 구체성이 더 재미있고 신나는 유희가 될 뿐이다. 유구한 누드화 역사와 마찬가지로 오직 여자만 소비되니까 모른다. 예술도 책임이 크다. 아니 그냥 그게 그 자첸가?


디지털 성폭력과 상업적 포르노물의 경계는 아주 가늘다. 보고 즐기는 사람에게는 거의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떤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유출된, 실제 연인 사이가 찍힌 것만 본다고. 진실성이 있다고 했나. 거기 찍힌(보이고 들리고 신상이 털리는) 사람 특히 여자가 어떨지는 전혀 감정 이입이 안 되거나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걸 잘 알겠다.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본능이라고. 또는 이런 것도 없으면 성폭력이 더 늘어날 거라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있기 전에도 인간은 있었으니 본능이라고 할 근거가 없고, 디지털 이미지와 영상 자체도 성폭력이다. 설사 본능이라고 친다 해도 타인의 삶과 목숨까지 해치는 본능은 멸절돼야 한다. 피해자의 삶과 본능이 멸절되는 것이 아니라.


하긴 애초에 피해자를 '타인'이 아닌 몸 덩어리 고깃덩어리로 환원하는 것이 성폭력이다. 딱히 인간으로 여기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짓이다. 게다가 이런 자들이 이런 말을 잘한다.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며? 죽을 일 아니라며? 별 일 아니라며? 죄는 왜 크게 처벌해야 해? 앞뒤 안 맞는다. 이중잣대다.'


'피해자는 일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 게 아니다.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주장하는 바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 주장하는 바에 맞게 피해사실과 가해사실을 축소하려고 하는 사람은 주장이나 미래나 시제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힘들게 일하는데 월 100만 원은 더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할 수 있지? 그런데 100만 원을 더 주지는 않으면서 100만 원에 해당하는 만큼 세금을 더 내라는 말이야 네가 하는 말이.' 이렇게 설명하는 '그럴 수는 없다 세금을 왜 더 내냐'고 화내겠지만,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이런 반응도 나온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잘 쓸 수가 없다. 사람마다 이 단어에 대한 정의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여성의 그나마의 인권이 침해될 때 화를 내는 여자들은 아마도 그 누구보다도 '여자'로 환원되는 것이 싫은 사람들이다. 내가 여자이더라도 여자이기만 한 것은 아닌데 여자로만 환원되는 과정이 대체로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는 남자로 여겨지는 것이 권력이 되기도 해서 이 말을 이해를 잘 못하곤 한다. 그럼 네가 남자야?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집에 간다.


어차피 이 모든 말에 '너 페미야?' 이 한 마디로 대답할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 크게 상관없다. 이 문제에 대해 쓸 말이 너무 많다. 뭘 좀 더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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