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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May 23. 2024

함부로 하는 말

저는 함부로 하는 말을 좋아합니다. 정확히는 남이 나에게 함부로 하는 말을, 생각보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함부로'의 사전적 의미는 '조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입니다. 조심성 없고 생각 없고 배려 없고 예의 없고 참을성 자제력 없고 하여튼 뭐가 없고 부족한 말이죠.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네- 하하... 하고 웃으면서 확실히 거리를 둡니다. 이 때 거리란 마음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지만 나의 어깨와 발자국도 그로부터 최소 10센치는 멀어지는 것 같아요. 그 거리가 좁혀지는 일은 거의 없죠.


그 사람은 그렇게 두고서, 그 말 자체만 생각해 보면 의외로 얻을 게 많아요. 함부로 하는 말은 잘 알지 못하면서 하는 말이죠.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곤란하게 하는 말일 수도 있죠. 상처가 되기도 하구요. 

먼저 잘 알지 못하면서 한 말일 때는, 아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내가 그렇게 보일 면도 있나보다 이런 깨달음이 있어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또는 내가 어떻게 오해받을 수 있는가가 매우 중요한 일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길에서 지나치는 타인들이 나를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은 들어요. 그럼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나의 어떤 면이 그렇게 보이는 걸까? 나는 생판 남에게는 그런 식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어도 상관 없나?

그 다음은, 내가 그 상황에서 그 말로 왜 곤란했나, 왜 상처가 되나 생각해 봅니다. 이게 저에게 더 중요한 점이고 함부로 하는 말의 가장 좋은 점입니다. 저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경우, 듣는다 해도 전혀 타격이 없죠. 저는 키가 160cm이기 때문에, 누가 '그렇게 멀대같이 커서 어따 써!'라고 한다 해도 어이가 없어 웃고 말겠죠. 

하지만 어떤 함부로 하는 말에는 숨이 딱 막히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건 정말로 상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한 사람이 밉지만 나중에는 그 말만 남아 그 말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함부로 한 말에 어떤 통찰력이 있다기보다는 그 말이 찌른 곳에 나의 '찔릴 것'이 있었던 거죠. 그곳이 비어 있었다면 그 말은 헛헛하게 휘적일 뿐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럼 나는 나의 무엇을 찔린 걸까, 그 생각을 해보곤 해요. 생각만 해도 아픈 과정이죠?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또는 혼자서는 절대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하는 말에 고마운 점이 있는 거예요. 며칠 몇 달 괴로워하다 보면 결국 그 말을 고마워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해요. 이 시간 동안 그 말을 한 사람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멀어져 있죠. 그 말에 건드려진 나의 마음만이 나와 함께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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