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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Apr 22. 2023

불안장애 치료기 230421

오늘은 약 기운인지 전반적 체력 저하인지 매우 힘들다. 글도 혼란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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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위염이 도진 것 같다. 1월 위내시경 검사에서 위염과 위궤양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조심하기는커녕 라면 짠 거 매운 거 기름진 거 엄청 먹었으니... 조심하자. 요 며칠 뭘 먹기만 하면 바로 위가 쓰리다. 그러다 조금 지나면 또 통증 비슷한 배고픔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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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상담을 시작했는데 또 지난 일 이야기하니 아직도 울컥하고 울었던 게 가슴이 답답하다. 

어린 시절 집에서 받은 상처가 큰 편인데 30대 후반인데 대체 언제나 나아질까? 전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지치고.     

23년 4월 17일에 방송된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에서 7살 아이가 '내가 태어나서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게 되어서 내가 태어나서 미안하다'라고 하는데 나도 항상 저렇게 생각하면서 자라왔는데... 이게 학대가 아니고 뭔가 싶었는데 다른 애기가 저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엄청 안 됐고 슬프네. 내가 저랬구나 싶기도 하고. 나의 경우 내가 임신되어서 결혼한 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엄마한테 아빠랑 이혼하라고 나는 말했고 엄마가 '너 때문에 산다.' 이런 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나만 아니면 엄마는 아빠랑 이혼했겠구나 생각했었다.     

웃긴 건 언니 오빠도 있고 나에게는 언니 오빠랑 이복형제인 것도 말 안 했으면서 '너네 때문에 산다'고 안 하고 나 때문에 산다고 했던 거. 그 허점을 깨닫지 못한 것도 웃기고. 나는 '나는 괜찮으니까 아빠랑 이혼해라' 라고 했는데... 경제적으로도 엄마 아빠의 능력은 비슷해서 돈 때문에 아빠랑 산 것도 아니고 엄마는 그냥 두 번 이혼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엄마도 재혼이었고 첫 결혼에서 아이가 없었다) 나는 '나만 아니면 엄마는 더 잘 살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가족사를 다 알고 난 시점에는 언니 오빠랑도 떨어져 산지 꽤 된 후라서 언니 오빠에 대한 미움보다도 '친엄마랑 사는 나를 보며 언니 오빠는 친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나 때문에 나 보면서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누가 나를 무조건 싫어할 거라는 느낌을 주게 한 건 언니 오빠가 확실한데. 언니 오빠가 아무리 본인들이 상처가 있었어도 나한테는 잘못한 게 분명한데. 그들도 미성숙한 어린애였을 뿐이었다 할지라도...      

늘 싸우고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 보려고 그리고 심지어 화해시키거나 그들 간의 비밀을 지키려고 애썼던 나... 지금도 눈치를 심하게 보고 내가 맞서 싸우고 내 주장을 강하게 해야 마땅한 갈등상황에서도 늘 차라리 자리를 떠버리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저 애가 진짜 어린 나와 비슷해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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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페나진 4mg짜리 4분의 1, 그러니까 1mg를 19일 밤에 1mg 먹었는데 20일 아침에는 들뜨고 약간 조증?처럼 막 돈 쓰고 싶고(나는 주로 뭘 새로 배우기 시작한다. 다이빙이라든가 춤이라든가 방송대에 등록한다든가) 전에는 '우울증 약 먹어도 기분 좋아지는 건 아니네 기분 그냥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엄~청 나빠지는 것만 막아주는 정도네' 하고 아쉬워했었다. 하지만 약으로 기분 좋은 것은 좋은 느낌은 아니다. 흥분되고 들뜨는 느낌이네. 

하여튼 아침엔 약간 기분이 좋았었는데 아침에 에너지를 끌어다 써서 그런지 점심 지나니 무척 졸렸다. 졸려서 오후 3시부터 자서 8시에 일어나 저녁 먹고 저녁약(페르페나진 1mg 포함) 먹고 잤다. 일어나서 지금 아침 9시 넘었는데도 너무 졸리다.      

의사는 언제든 너무 약이 안 맞으면 전화해서 간호사에게 이야기 남겨 놓으면 다시 전화 주겠다고 했었다. 앞의 푸록틴캡슐이나 트라린 때도 졸렸는데 그때는 그냥 일주일 동안 참았었다. 근데 이번에 페르페나진은 훨씬 강력하다. 너무 심하게 졸리다. 계속 자고만 싶고. 또 앞의 두 약(푸록틴캡슐과 트라린)의 졸린 부작용에 대해 의사가 '안 됩니다' 하며 약을 바꾸자고 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일주일 참아 보지 않고 그냥 병원에 전화했다. 간호사에게 자세히 이야기하고 몇 분 뒤 병원(간호사)에서 전화가 와서 의사의 말이 전달되었다.      

병원: 저녁 약 중에 4분의 1쪽짜리 있죠?     

나: 네 주황색이요.     

병원: 네 그거 빼고 먹어보자고 하시네요.     

나: 나머지는 그대로 먹으면 될까요?     

병원: 네     

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분의 1쪽으로 쪼개진 주황색 약이 페르페나진이다. 지금까지 졸렸던 약 세 개, 푸록틴캡슐, 트라린, 페르페나진 모두 약을 아주 약하게 조금 먹었는데도 굉장히 졸리다. 강력한 모양이다. 약이란 게 이런 거구나 무섭기도 하다.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실 때마다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든다. 내 몸에 즉시 영향을 끼치는... 걸 먹는구나.     

내가 많이 먹어본 약은 대표적으로 배탈약(소화제), 감기약, 진통제(생리통, 두통) 정도다. 이 약들도 내 몸에 영향을 끼쳤을 것인데 왠지 뇌에? 영향을 줄 것 같은 이 정신과 약이 더 모르겠는 것 같고 무섭네.      

적어도 이번 주말까지는 아무 생각 말고 푹 쉬려고 했는데. 평소에는 별로 일도 집중 못하고 마음만 풀가동해서 지치고 못 쉬는 타입이다. 의사 선생님도 라면 먹으라고 했으니까(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라면 먹어야지.     



페르페나진은 향정신성약물이었다. 끊으면 금단증상 있을 수 있어서 천천히 줄여야 한다고 한다. 향정신성의약품이라니 정신병자로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다 애초에 인정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의 가기 시작한 거 아닌가. 이걸 자랑스럽게 여겨야지. 아니 자랑스러울 일은 아닌가? 아픈 건 자랑은 아니지만 아픈 걸 인정한 것, 그리고 치료받기로 한 것은 자랑까지는 아니어도 잘한 일이다. 

나는 아픈가? 일을 하는 효율이 떨어지고 제대로 된 돈벌이를 못하는 건 무능한 거지 아픈 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까지 다니는 건 무능 때문은 아니다.     

다만 나의 무능은 마음의 괴로움 때문이기도 한데 마음의 괴로움은 아픈 것인가? 이건 약보다는 상담이 더 적절한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담이 훨씬 비싸다. 앞으로 엄청 수요가 늘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신체화되어 진짜 가슴을 찌르듯 통증이 있고 또 숨이 안 쉬어질 때가 있다. 최근 1년여 동안은 매우 잦았다. 마음은 이전 30년보다 나아졌음에도... 이제 몸으로 옮아간 것인가?      

나는 아프기는 한 것 같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건가 몸이 아픈 건가?      

'정신병자야!'라는 것이 욕처럼 비하처럼 쓰이는데. 그런데 이미 몸이 아픈 '병신'도 옛날 옛적부터 욕으로 쓰이고 있다. 남이 아픈 게 욕할 일인가요... 정신 차려 잔인한 인간들.      

아니 근데 내가 아픈 게 몸이지 정신인가. 뇌가 몸이지 정신이냐고 뇌가 정신이야? 호르몬 등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마음이 안 좋은 거라 해도 결국 몸이 아픈 거지. 뇌가 몸이지 정신인가. 그럼 정신은 어디 있나요 정신이란 무엇인가...      

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근데 내 영혼과 마음이 아픈데 먹는 약으로 치료 중이라고? (상담도 받고 있지만)  하지만 나는 뇌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몸이 아프면 안 됐고 불쌍하고 정신병이면 욕인가. (아니 몸 아픈 사람은 병신(병신이 옛날에는 아픈 몸, 아픈 사람을 뜻했음)이라고 이미 욕으로 쓰이고 있었구나. 아파서 제 기능 못하면 싫어하는 것 당연한가)     

정신은 어디고 마음은 어디에 있나요 몸에 있는 거 아닌가.     


12시쯤부터 또 멀쩡해지고 또 많이 먹는 중.. 이건 무슨.. 내 의지력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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