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먹을 것

by 서한겸

친구가 바질 씨앗을 주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건네기에 화장품인가 하고 열어 보니 물 적신 솜 위로 1센티가 안 되는 뿌리를 낸 바질 씨앗 20여 개가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고맙고 잘 키워 보고 싶었지만 집에 오는 길이 너무 멀었는지 흙에 옮겨 심은 것 중 4개만이 초록색 싹을 틔웠다. 유난히 볼륨감 있고 탐스러운 잎이 튀어나오듯 자랐다. 겨우 4개만 살아남았지만 그만큼도 신기했다. 흙을 어떻게 해서 저런 초록색을 만드는 거야.

신기했으면 조금 더 마음을 쓸 걸. 돌봐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며칠이나 집을 비우고 돌아와서 환기를 하려고 베란다 쪽으로 가다가 바질을 발견했다. 무심하기도 하지 나 자신. 네 개의 바질은 시래기나 우거지와 같이 쪼그라들고 말라붙어 있었다.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아주 정성 들이는 마음으로 물을 주었다. 뒤늦게 조급해졌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으니 뿌리 쪽은 하루에 2번만 적시도록 하고 잎 쪽에는 수시로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 주었다. 사실 말라비틀어져 '잎'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했다. 뒤늦게 안달하며 지켜보는 동안에는 별 차도가 없더니 자고 일어나 다음날 보니 한 개가 꽤 회복해 있었다. 튜브에 바람을 넣은 듯 볼륨감을 되찾고 고개를 조금 들려고 하고 있었다. 초록빛이 돌기 시작하고. 나머지 세 바질에게 미안하지만 하나라도 살아주어서 다행이었다.

그 뒤로는 집을 비울 때면 바질에 물을 충분히 주고 비닐봉지로 화분 전체를 감싸고 공기구멍을 조금 뚫어 간이 온실을 만든다. 3일 후에 돌아와 보니 바질은 싱싱하게 오히려 더 자라 있었다. 20여 개를 흙으로 만들어 버리고 하나 살린 내 바질. 그런데 이 온실이 성공해서 기뻐하고 있던 즈음 바질을 선물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바질들은 잘 지내냐고. 아아... 사실은 잘 지내지 못하고 있어. 하나만 남았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친구는 우리 집까지 여행하기가 바질들에게 무리였나 보다 하며 친절하게 위로해 주더니, 남은 바질은 잘 키워 바질 차로 마셔 보라고 말해 주었다. 이 애를 먹으라고...?


옛날에는 기르던 돼지 소 닭 등을 자연스럽게 잡아먹었겠지. 하지만 이 바질을 먹을 수도 있다 생각했을 때에 느낀 당황스러움은 '내가 애써 키운 걸 어떻게 먹나, 내 애정의 대상을.'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바질에게 어떤 물을 주었지? 저 화분은 건강한 것인가? 흙은 깨끗한가? 오직 그것들로 지금의 바질이 만들어졌을 텐데. 먹어서 내 몸의 일부가 되어도 괜찮을 것들을 바질에게 주어 왔나?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먹어 온 수많은 음식에 대해 별로 알아 본 적 없었다. 쌀이, 밀가루가, 자몽이, 우유가, 소시지가, 파프리카가, 어디서 어떤 흙과 물과 손길과 사료로 자랐을지. 그런데 바질 딱 한 줄기를 키워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깨끗한 물을 줄 걸.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육체적인... 몸이 엮여 있는 감각이었다. 그저 죽지만 말아라 하는 마음으로 뿌린 물로 자란 바질을 '내가 먹을' 줄 알았다면...? 그 물이 내 몸으로 들어올 줄 알았다면 내가 먹는 물을 주었을 걸.


내가 먹을 쌀과 자몽과 가지와 밀이 자랄 흙이 깨끗했으면, 그 땅에 좋은 비가 내렸으면 싶다. 그리고 내가 자주 사다 먹는 냉동 새우는 에콰도르 산이던데. 에콰도르의 바다가 깨끗하길. 소와 돼지가 먹는 사료가 괜찮은 것이길. 내가 모르는 수많은 곳을 위해 원하고 기도하려니 감동적이기도 하고 압도적이기도 했다. 온 지구를 위해 단 하나의 공기청정기를 튼 듯 막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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