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방울토마토 1kg을 샀다. 하지만 열 개쯤 먹고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계속 신경 쓰이면서 안 먹고 있었다. 오늘 삼계탕을 끓였는데 부엌이 복잡해 방울토마토를 먹어치워야겠다 싶어 떠들어 보았다. 방울토마토 두 개가 곰팡이가 심하게 슬어 그 주변 애들한테도 묻어 있었다.
이것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작고 파란 열매로 시작할 때에 내가 곰팡이가 핀 것도 아닌데 곰팡이 핀 애 옆에 있다가 곰팡이 가루 조금 묻었다고 버려질 줄은 몰랐겠지. 이러려고 익었나. 벌레를 피해 가며 병을 피해 가며 말이다.
줄을 잘못 서서 어떻게 될 줄 모르는 건 방울토마토나 인간이나 매한가지다. 내가 타고난, 내가 될 수 있는 것만 될 것이면서도 꽤 좋은 상황 하에서, 거기다 노력해야만 그나마 모습을 보존하고 성체로 자랄 수라도 있다니. 그런 다음 곰팡이 옆에 놓였다고 버려지고.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책을 읽고 깊이 좌절했다. 초인적인 삶의 의지로 살아남은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의사여서 고비를 넘긴 적도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딱히 쓸모도... 하지만 이 사람 역시 그냥 줄을 섰는데 바로 앞사람까지만 죽을 곳으로 끌려간다거나 하는 랜덤한 줄 서기를 많이 경험했다. 목숨이 걸린. 그런 때에 인간의 목숨이란 방울토마토와 다를 게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곰팡이 묻은 토마토를 골라냈다. 나머지도 당장 음식물쓰레기로 다 쏟아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음식인데 하는 죄책감에 망설였다. 너무 아까운데 그냥 먹기는 불안해서 데쳐서 곰팡이도 멸균(?)시킬 겸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기로 했다. 피곤한 선택이었다.
방울토마토를 씻어 꼭지를 따고 칼로 십자를 낸 후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깐다. 꽤 힘든 과정이다. 껍질을 깐 방울토마토를 식초, 올리고당, 올리브유 등에 재워 몇 시간 뒀다 먹으면 된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맛이 되기는 하지만 정말 손이 많이 간다.
씻으면서 꼭지를 따는데 곰팡이 때문에 예민해져 있던 터라 손끝에 조금만 이상하게 느껴져도 튕겨버렸다. 방울토마토 하나를 잡고 손가락으로 굴리며 약간 쥐어보는 데에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라고 익었을 알맹이를, 약간 딱딱하다, 약간 찌그러졌다, 약간 쭈굴쭈굴한 것 같다 해서 튕겨내 버렸다. 경쾌하고 리듬감 있게. 음쓰(음식물 쓰레기)다 음쓰. 장례식도 없다. 이미 곰팡이 주변에 있던 애들도 싹 버렸는데. 버릴수록 먹을 것도 줄지만 그 대신 노동도 줄기 때문에 더 가차 없이 버렸다. 게다가 잘못된 걸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으니 당당하고도 호쾌하게 버렸다.
각종 공모전에 낸 포트폴리오가 검토되는 시간은 30초 이하일 때도 있다고 한다. 작품을 만들고, 그걸 요구하는 형식에 맞춰 정리하고 편집해서 출력용 파일로 만든다. 그걸 출력해서 클리어 파일, 서류봉투에 넣어서, 방문접수 또는 우편접수.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포트폴리오가 내 거 말고도 한 500개쯤 오겠지. 그리고 사실 금방 봐도 안다. 휘리릭.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조차 없이 튕겨낸대도 탓할 바가 아니다.
많은 경우 사람 또한 유용함을 기준으로 판단된다는 것을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러고도 오래도록 납득은 못하고 있었지만. 친구만 해도 최소한 정서적 유용함이 있어야 만난다.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거나 배울 점이 있다거나 하소연을 할 수 있다거나 재밌다거나 등등. 누구나 자신의 시간, 에너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사람을 취사선택한다. 냉정도 온정도 없다. 그냥 그런 거다. 나의 시간이 무한하다면 그러겠는가. 하지만 아니니까.
갑자기 그간의 억울감과 냉혹했던 경험을 납득하며 방울토마토를 다 씻었다. 상당히 골라냈다. 그다음 이제 십자 칼집을 내려고 하는데 칼이 무뎌 힘을 많이 주니 깊이 잘렸다. 칼을 갈았다. 날이 예리하니 칼집을 살짝 낼 수 있었다. 무디면 더 깊이밖에 못 자르다니 뭔가 준엄한 이치이며 삶에 직접 대입할 수 있는 비유인 것 같았다.
대략 30초 정도씩 데치니 껍질이 잘 벗겨졌다. 껍질을 벗겨낸 방울토마토는 포도알처럼 되었다. 그러고 보면 토마토는 주머니 같은 구조다. 과육 안에 씨 부분을 담고 있다. 귀엽게도. 칼집이 나고 껍질이 벗겨진 방울토마토는 데쳐져서 그런지 약간 더 쫀득해진 것 같았다. 얘네를 그릇에 담고 식초와 올리고당, 올리브유를 넣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었다.
이 모든 방울토마토의 과정 동안 닭이 끓고 있었다. 닭도 장례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닭을 다듬는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징그러운 일에 속했다. 피와 살이… 먹을 걸로만 보이지가 않고 나의 살과 너무 비슷하다.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하면 얻어맞았다. 친구에게 ‘고기를 다듬을 때마다 너무 내 몸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징그럽다’고 했더니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 몸이 고기와 비슷하게 느껴질수록 고기를 먹어서 보충하고 싶어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