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중학생

by 서한겸

*벌써 아련해진,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다.


70이 넘은 엄마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엄마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행세하는 유지로 타성바지까지 거두어 먹이고 집을 지어 주면서도 딸을 가르칠 생각은 못하는 남자였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러니까 모든 의무를 다 마쳤다 생각할 때까지 중학교 입학을 미뤘다.

왜 그렇게까지? 엄마가 학교에 다니느라 바빴으면 내가 또 서운해했을지도 모르지만 '낳아 주고, 어? 내가 너 굶긴 적 있어? 이만큼 해 줬으면 나 하고 싶은 공부 좀 할 수도 있지! 너는 자식이 돼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정도 이해도 못해주냐!' 하고 소리 질렀다면 '아...' 하고 받아들였을 텐데. 미안해하기보다는 당당한 자세가 훨씬 더 깔끔하고 빨리 납득하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걸리적거리는 할 일(그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는 것이다)을 모두 해치우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제 '다 됐다' 싶을 때가 쉽게 올 리가 없다. 결국 엄마는 중학교에 입학했어야 할 나이로부터 꼬박 60년이 지나 성인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의 불호령과 잡아먹을 듯한 꾸중 속에서 국민학교라도 졸업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던 엄마를 슬픔과 분노 속에서 바라봤었는데 과연 국민학교라도 졸업해 둔 것이 다행이기는 했다. 그 졸업장마저 없었다면 초등학교 과정부터 시작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검정고시가 더 빠르고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엄마가 공부해본지도 너무 오래고 검정고시도 최소한 2년은 걸릴 것 같았다. 성인중학교는 1년에 3학기씩, 2년 만에 6학기로 중학교 3년 과정을 마친다. 검정고시와 비슷하게 걸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 생활. 학교 생활을 해 볼 수 있다.


할머니 장례를 마치고 엄마가 꽤 힘들고 허망해하는 중에 내가 당장 중학교에 입학하라고 마구 떠밀었다. 엄마는 예상 밖으로 순순히 입학했다. 입학식은 굉장했다. 국민학교만 나왔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결국 중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 정확히 말하자면 40-90대의 남녀가 굉장히 혼란스러우면서도 긴장된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었다. 까딱하면 싸움이 날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신입생 중 220여 명이 여성, 40여 명이 남성이었다. 남성은 못 배웠어도 그냥 사는 것일까 중학교 입학을 못한 여성이 더 많았던 것일까.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입학식을 축하하러 온 가족의 구성이었다. 40여 명의 가족은 전원... 그렇다, 완전히 100퍼센트가 딸들이었다. 더러는 꽃을 들고, 더러는 울며 그리고 또 100퍼센트가 엄마를 위해 왔다. 남편도 아들도 아내도 애인도 없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입학식을 마치고 엄마는 줄을 서서 자신의 반으로 이동했다. 줄을 서서 이동하는 것, 어떤 반이 되고 담임 선생님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신선하고 재미있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흥분되고 기대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모두가 최소한 조용하게라도 흥분해 있었다. 14살짜리 중학교 신입생들도 그렇겠지만 이들 만학도 중학생들도 많이 떠들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엄마를 교실 문에 난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았는데 매우 쑥스럽게 억누르고 있었지만 온 얼굴과 목까지 발갛게 흥분해 있었다.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한편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미술부 부장이라는 어르신에게 미술부를 샅샅이 구경해야만 했다. 어머니를 미술부에 가입하도록 하라는 권유도 받았다. 엄마는 나에게 문자를 보내서 사물함 자물쇠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입학식을 마치고 다른 학생들은 열쇠를 사러 가야 하는데 나는 내 딸이 사다 주어서 편하다~며 매우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엄마의 중학교 생활은 듣기에 재밌고 다이내믹했다. 담임에게 반말하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이 막내딸보다 어리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대로 화장실 가는 건 기본이었는데 내가 난색을 표하니 엄마는 '노인네들은 화장실 가게 해 줘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놀랍고도 듣고 보니 당연한 것은 셀프 치맛바람이었다. 어느 정도 경제력은 되는 상황이다 보니 먹고 싶은 간식이나 선생님께 주고 싶은 음식 같은 것을 자신의 돈으로 사서 나눠줘 버리는 것이다.

엄청난 기세로 싸우는 학생들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학교에 가서 앉아있기만 해도 너무너무 재밌다고 했다. '학교 체질인 것 같아!'라며 드라마처럼 기뻐했다. 엄마가 그렇게 유쾌한 모습은 처음 봤다. 그리고 국어 시험을 다 맞았다고 몸을 떨며 기뻐하는 엄마를 보고 거의 울뻔했다.


이렇게 열심히 하더니 6, 7개월 지나자 매우 지치고 실망한 기색이 되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영어와 수학으로 특히 영어는 요즘에는 초등학교에서 상당히 배우고 오기 때문에 중학교 1학년 교과서가 생 기초가 아니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마이너스 개념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는지 (3+(-2)와 같은 문제) 금방 수포자 선언을 해버렸다. 나한테 자꾸 물어보는데 놀랍게도 나는 아직 중학교 수준의 수학은 가르쳐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너무 가르쳐주기가 어렵고 엄마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지쳐서 '아 나는 공부할 때 아무도 안 가르쳐줘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런 말을 한 세 번 하니까 엄마도 드디어 '그 대신 돈 벌어서 너 가르쳤잖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마 혼자서 미안해하고 생각해 본 모양.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그제야 '아 내가 뭔 헛소리를 한 걸까' 하고 모든 것이 납득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열성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수학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을 떨치지 못했다. 마이너스, 그리고 분수, 이런 걸 왜 배워야 하냐고 수학선생님한테 말했더니 선생님이 매우 싫어했다 한다. 당연하지. 나는 올려줘야 할 전셋값 모으는 이야기, 빚 이야기 등으로 설명해 주었다. 실생활에도 필요한 지식이라고 어필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어느 정도 끄덕끄덕 하면서도 도저히 마이너스가 싫고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문과 취향인 듯 글짓기 대회에서 담임(국어) 선생님에게 크게 칭찬받고 다음 글을 위해 흥분해서 개요를 짰다. 개요는 꽤 완결성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주어진 시간 내에 다 쓰지 못했다고 서운해했다. 결과는 장려상이었다. ‘장려상? 아니 우리 엄마가 장려상이라고요? 대상이 아니고요?' 극성 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다. 며칠 지나고 엄마가 장려상이 아니라 동상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둘 다 상관없다며 덤덤한 듯 문자를 보내왔다. 그런데 그게 그게 헛소문이었어서 결국 장려상을 받았다고 했다. '동상 아니고 장려상 주네. 재미없다' 하고 문자가 왔다. 조용히 들뜬 엄마가 짠하고도 귀여웠다. 그래도 방학식 겸 전교생 앞에서 장려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곧이어 상장 사진이 문자로 전송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행복한 게 중요하다, 자신의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모두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특히 내가 원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된 길은 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엄마는 중학교 과정을 너무나 어려워하고 있지만 그래도 참고 졸업해주었으면 싶다. 막상 다녀 보니 너무 어렵고, 별로 의미도 없는 것 같다고 하고 있지만 그래도 60년간 바랐던 일이라면 어떻게든 참고 졸업하도록 잔소리하고 닦달하는 게 나의 의무지 싶다.


*엄마는 60년 만에 드디어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은 취소되었고 엄마는 코로나 시대의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지금은 PDF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여는 방법을 익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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